뉴욕시 Le Moyne College에 있는 에릭 돌피 동상

에릭 돌피(Eric Dolphy, 1928~1964) 하면 가장 먼저 ‘재즈 이노베이터’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알토 색소폰, 플루트, 베이스 클라리넷, 피콜로 같은 다양한 악기를 마스터했고, 긴 인터벌 후의 격정적인 속주, 불규칙한 멜로디 구사, 마치 사람 또는 동물의 소리를 악기로 표현하는 듯한 독특한 스타일을 가졌다. 비밥을 뛰어넘었지만 아방가르드로는 가지 않은, 경계선에 선 인물로 평가받는다.

평범한 연주자였던 그는, 1959년 무렵 독자적인 스타일을 지닌 거물로 혜성처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평론가의 호평이 이어진 솔로 연주 ‘Tenderly’를 들어보자. 그의 독창적인 즉흥연주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다.

<Far Cry>(1962)에 수록한 'Tenderly'

그가 사망하기 2개월 전 노르웨이의 한 TV 스튜디오에서 절친 찰스 밍거스(베이스)와 협연한 영상은 유명하다. 약 4분 이상의 롱테이크로 베이스 클라리넷을 솔로 연주하는 염소수염의 에릭 돌피를 볼 수 있다. 머릿속에서 마구 분출하는 멜로디를 악기로 쏟아내는 듯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인다.

Charlie Mingus feat. Eric Dolphy 'Take the "A" Train'(Norway 1964)

1964년 파리에 머물던 약혼녀와 함께 유럽 거주를 꿈꾸던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당뇨병으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져 갑자기 사망한다. 공식적으로는 호텔에서 당뇨병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인슐린 주사를 놓았으나, 인슐린 쇼크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 주장한 내용은 다르다. 무대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사가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즉, 흑인 재즈 뮤지션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작용하여 의사가 마약 과용으로 잘못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본인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냐는 것이다. 그는 마약, 술은 전혀 하지 않았고 항상 바쁜 일 중독자였다. 악기도 10여 개를 마스터했고 불과 5~6년에 걸친 전성기 동안 수많은 레코딩과 라이브, 작곡 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으니 본인이 중증 당뇨병 환자인 줄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짧은 현역 활동 중 많은 명반과 라이브를 남겼지만, 특히 뉴욕의 재즈클럽 ‘파이브 스팟’에서의 격정적인 알토 색소폰 연주가 많은 팬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중 ‘Fire Waltz’를 들어보자.

Eric Dolphy & Booker Little 'Fire Wal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