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HBO 사에서 방영 중인 정치 풍자극 <Veep>의 5시즌(2016)을 위한 광고 이미지. 버락 오바마의 2008년 포스터는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는데, 원작자인 셰퍼드 페어리는 이러한 활용을 모두 반긴다는 입장이다

‘장미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4월 말이다. 선거 공보가 속속 유권자들의 집에 도착하고, 거리에는 후보들의 포스터가 게시되었다. TV와 온라인 매체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광고를 방영하고, 대선 후보 토론회는 연일 새로운 이슈를 쏟아내며 화제를 모은다. 광고와 포스터, 공보 책자의 만듦새는 물론 대선주자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에도 관심이 뜨겁다. 바야흐로 이미지의 시대,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그들의 공약만큼이나 멋진 대통령이길 바란다. 더 나은 이미지로 더 많은 지지를 얻길 바라는 것은 물론이다.

2012년 18대 대선이나 작년의 총선을 거치며 각종 유세가 눈에 익은 유권자들에겐 각 당이 주력하는 이미지가 얼핏 큰 차이 없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후보들은 여전히 이미지 홍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한국선거방송에서 제작한 홍보용 영상에도 “이미지만 보고 투표하지 말라”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로 그 힘이 세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후보들의 선거 포스터는 홍보의 정점이다. 웃음을 띠고 정면을 바라보며 시선을 맞추는 얼굴 중심의 사진(문재인, 홍준표, 유승민)은 안정감과 신뢰감을 중시하는 보수 유권자층을 공략한다. 역동적인 스틸 사진(안철수, 심상정) 속에서 먼 곳을 향해 던지는 후보자의 눈길은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주요 후보들의 포스터

각 후보의 면면을 들여다보자. 2012년 당시로는 파격적인 스틸 사진을 메인 포스터로 사용해, 다소 소박하게 보였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올해 전문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깔끔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다시 나섰다. 새누리당의 당 색이었던 빨강을 평소에도 자주 착용하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포스터에서도 선명한 빨강으로 자신의 보수적 색깔을 굳건히 하고, 눈에 띄기 쉽게 만들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재킷 없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포스터에 등장했다. ‘보수의 새 희망’, ‘능력’ 같은 문구에 맞춘 차림이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메시지로 등장한 유일한 여성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야외에서 촬영한 스틸 사진을 사용했다. ‘촛불의 힘’, ‘정권교체’ 등을 외치는 현장 중심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활용하고,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배지를 달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보여준 이미지 전략은 유력 대권 주자치고는 파격적이었다. 안철수 후보의 텍스트 중심 TV 광고는 많은 사람에게 현대 미술가 듀오 장영혜중공업(장영혜, Marc Voge)을 떠올리게 하였다. ‘광고 천재’로 세간에 알려진 광고 전문가 이제석(1982~)의 자문을 받았다는 포스터는 좌우를 반전한 스틸 사진으로, 당명보다 후보의 이미지를 앞세워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선거 시즌, 이런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혹은 조마조마한) 일이거니와, 유권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달콤한 약속들, 후보들이 서로를 향해 벌이는 네거티브와 그들을 비교하는 즐거움은 그야말로 ‘깨알 같다’. 이와 함께 역대 정치인들과 과거의 선거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선거 기간을 즐기는 유권자들의 놀이이자, 현재의 전략과 정치적 상황을 과거로부터 되짚어 보는 일이다. 촌스럽거나, 재미있거나, 어이없는 벽보 이미지를 수집하고 공유하는가 하면, 섬뜩하거나 효과적인 정치 선전물들을 보며 새삼스레 이미지의 위력에 감탄하는 것이다.

Election poster(선거 포스터), 1932. ⓒ US Holocaust Memorial Museum/photo by Heinrich Hoffmann

이미지의 힘을 잘 사용한 역대 정치인을 꼽자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역시 독일의 총통이었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떠오른다. 대규모 학살과 전쟁으로 귀결되었던 나치의 주요 구호는 ‘나의 민족, 나의 지도자, 나의 제국(Mein Volk, Mein Fuehrer, Mein Reich)’. 이와 유사한 의미의 ‘나, 너 그리고 우리’라는 구호도 자주 사용되었다. 무성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히틀러는 자신의 동작과 표정 같은 비언어적 표현들마저 연극배우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자신의 대외용 이미지를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1932년 독일 총선의 강력한 후보자로 부상한 히틀러의 선거 포스터는 그의 이미지 정치를 잘 보여주는 예다. 어두운색 옷과 배경으로 얼굴을 부각하고, 자신의 이름 한 단어만으로 극단적인 흑백의 강렬한 이미지를 대중의 뇌리에 똑똑히 인식시켰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급부상한 이 신예는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37%에 이르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1933년 본격적인 나치 정권이 집권하면서 히틀러식의 정치 선전은 정점에 오른다. 나치 선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1902~2003)의 정권 찬양 영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1935)도 이즈음 만들어졌다. 영화는 1934년의 당 대회를 영화화한 것이다. 나치 전당대회는 고도로 양식화되고, 제의의 형식을 빌려 대중의 의식을 손쉽게 고취했다. 물론 그 중심에 역사상 최악의 선동가, 히틀러가 높은 연단 위에 자리했다.

<LABOUR ISN’T WORKING>(Saatchi & Saatchi, 1979)

1990년대 현대 미술계의 ‘YBA(Young British Artists)’ 붐을 주도한 영국의 거물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는 잘 알려졌듯 광고업자다. 찰스와 모리스 사치 형제가 20대의 젊은 나이로 1970년 설립한 광고회사 사치 앤드 사치(Saatchi & Saatchi)는 당시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의 정치 포스터를 제작하며 주목을 받았다. 1979년 보수당이 내건 포스터, <노동당은 일하지 않는다 (LABOUR ISN’T WORKING)>는 실업 사무소 앞에 늘어선 구직자들의 긴 줄을 보여주는 사진과 노동당이 정작 노동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은 간단한 메시지로 노동당을 비난했다. 당시 노동당 집권 영국의 높은 실업률을 아프게 꼬집은 것이다. 포스터 하단에는 “영국에는 보수당이 낫습니다(Britain’s Better Off With The Conservatives)”라고 기재했다. 정당의 대표적 얼굴 없이 현실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이미지와 심플한 두 줄의 메시지가 강력한 네거티브 전략을 수행한다.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은 1979, 83, 87년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명료한 이미지, 시선을 끄는 타이포그래피가 결합한 디자인 스타일은 사치 앤드 사치가 다수의 보수당 포스터에 일관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 정치계에서 전문 광고 대행사를 고용한 최초의 정당인이었다.

<HOPE>(Shepard Fairey, 2008)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연임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1961~)가 2008년 첫 선거 캠페인의 일환으로 내놓은 <HOPE(희망)> 포스터는 젊고 혁신적인 후보의 이미지를 널리 각인시켰다. 스트리트 브랜드 오베이(OBEY, 1989~)의 창립자이자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1970~)가 제작한 이 포스터는 미국 국기의 기조 색인 청, 적, 백을 활용하되 세련된 낮은 채도의 청색, 진한 적색, 베이지로 만들어졌다. 멀리 바라보며 사색하는 듯 진중한 오바마의 얼굴 아래에는 후보의 이름과 정당, 문장 형식의 메시지 대신, 진보적 후보인 오바마가 지향하는 가치들인 ‘희망’, ‘변화(change)’, ‘진보(progress)’ 같은 짧은 단어들을 굵게 강조했다. 그에 반해 당시 맞수였던 공화당의 존 매케인(John McCain, 1936~) 캠프에서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선보였다. 미국 대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조기와 인물(특히 매케인은 중산층 백인 정치인의 전형적인 이력과 이미지를 가졌다)의 조화로 만들어졌지만, 오바마의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에 비하면 구시대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사실상 선거인단 간선제라는 독특한 제도에 유세전이 활발한 미국 대선에서 이미지만 들어간 후보의 포스터는 캠프 배너와 뉴스보다는 그 역할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러나 <HOPE> 포스터는 젊은이들이 침대 옆에 붙이고 싶은 바로 그 모습이었고, 지지층 너머의 유권자들에게도 오바마의 정치적 지향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2011년 8월 29일, 2012년 대선 출마의 공식 행보를 바이크와 함께 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Ivan Sekretarev/REUTERS

KGB(소비에트 연방 정보기관) 출신의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1952~)에게 사실상 선거 유세는 거의 필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3, 4대 대통령을 연임한 후 5대에는 자신의 후계자를 대통령으로 앉히고 자신은 총리직으로 정권을 유지했고, 2012년 대선으로 대통령 자리에 다시 오른 지금도 향후 연임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푸틴의 공격적인 대내외 행보가 러시아 외부에서는 위험하고 독재적인 것으로 비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 그의 지지율은 무려 80%를 넘나든다고 한다. 물론 악명 높은 러시아의 언론탄압과 인권유린의 심각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카리스마적 이미지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비밀 첩보 기관 요원 출신이라는 배경을 갖고 각종 무술에 능한 대통령, 맨손으로(!) 산짐승을 때려잡으며 공식 외교 행사에서 독일과 일본의 대표를 거대한 개로 위협하는 배짱을 가진 그의 캐릭터는, 푸틴의 2012년 대선 구호 ‘위대한 러시아로 함께!(To Great Russia, Together!)’와 완벽하게 부합한다. 그는 함께 하자고 권하기보다 따라오라고 말하는 지도자상을 꾸준히 구축해왔다. 2012년 대선 출마 선언과 함께 그가 내보낸 이미지는 거대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모습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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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tchi & Saatchi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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