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향으로 <슬픈, 씬>(2015), <족구왕>(2013), <서울유람>(2012), <이공계 소년>(2010)

영화 <족구왕>(2013)에서 주인공 만섭은 ‘왜 그렇게까지 족구를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재밌잖아요." 이 천진무구한 대답은 우문기 감독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와도 닿아 있을 것이다. 그는 미대에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같은 여러 영상디자인 작업을 하다 영화의 매력에 빠졌고, 졸업 후 영화를 더 잘 만들고 싶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했다. 남 눈치보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김태곤, 권오광, 이요섭 감독 같은 동기들과 ‘광화문시네마’라는 영화사도 만들었다. 미대 4학년때는 평소 좋아하던 그룹 페퍼톤스의 뮤직비디오 연출자 모집에 자신의 작업물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해 감독으로 뽑히기도 했다. 앞으로도 장르에 구분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고 싶다는 우문기 감독. 그는 이렇듯 만섭처럼 우직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산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울 수만은 없는 법. 생각처럼 쉽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툭툭 튀어나와 고되고 지칠 무렵이면, 감독은 거의 ‘노가다’ 수준으로 공들여 기록한 작품들을 찾아보며 위로와 영감을 얻는다.

Woo Moon Gi says,

“‘창작의 고통’이란 녀석은 예술가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힌다. 안 그래도 아무 생각이 안 나는데 머리를 멍하게 만들고, 괜스레 컴퓨터를 켜 녹색 창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도록 한 뒤 아무것도 검색되는 것이 없음에 절망감을 느끼게 하고, 다 때려치우고 밖으로 나가서 시원한 맥주나 들이키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그중 최악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아무 의미 없는 노가다라고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보게 되는 ‘노가다’의 예술이 있다. 과연 진정한 예술은 창작의 고통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탄생하는 것인가 보다.”

 

1. Shugo Tokumaru ‘Katachi’

일본 1인 밴드 토쿠마루 슈고(Shugo Tokumaru)의 ‘katachi’ 뮤직비디오.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어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1초에 6장 정도의 사진으로 만든 3분가량의 영상이니, 1,0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단순히 사진을 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진마다 종이를 오려 만든 다양한 형태의 인형들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노가다’이다.

 

2. Wintergatan ‘Marble Machine’

스웨덴 밴드 Wintergatan이 만든 라이브 연주 기계(?). 밴드 스스로 수년에 걸쳐 제작한 이 마블 머신은 2,000개의 구슬이 떨어지면서 드럼, 실로폰, 베이스 등을 연주한다. 이 복잡한 기계를 만들기 위해 이들이 했을 수년간의 ‘노가다’(이에 관한 제작 다큐멘터리도 있다)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어쨌든 정말 아름다운 ‘노가다’이다.

 

3. OK Go ‘This Too Shall Pass’

그야말로 ‘노가다’의 제왕 OK GO의 ‘This too shall pass’ 뮤직비디오. 골드버그 장치, 쉽게 말해 각종 잡동사니로 도미노를 하는 ‘노가다’의 완전체다.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성, 그리고 한번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극악의 난이도 때문에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영상. 아티스트들이 쓰러진 도미노를 세우며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되새겼을 이 노래의 제목은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우문기 감독은?
1983년생. 홍익대 영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다. <상황극 A: 언덕위의 그집>(2007)을 시작으로 다수의 단편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제작, 연출했다. 첫 장편영화 <족구왕>(2013)으로 ‘제16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제15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독립영화 감독상 및 ‘제20회 춘사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Film <상황극 A: 언덕위의 그집>(2007), <냉탕과 열탕 사이>(2008), <세상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2009), <이공계소년>(2010), <서울유람>(2012), <몽구스피킹>(2012), <슬픈 씬>(2015), <컬투쇼>(2016)
M/V 페퍼톤스 3집 수록곡 ‘핑퐁’ 및 5집 <HIGH-FIVE> 뮤직 비디오 총괄 디렉터
Others <2km 주유소>(2004) 조감독, <에어리언 블루스>(2008) 주연, <1999, 면회>(2012) 미술감독, <만신>(2013) 스토리보드

▼우문기 감독이 디렉팅한 PEPPERTONES ‘굿모닝 샌드위치맨’ (M/V)

▶단편 <서울유람> 무료보기
▶우문기 감독의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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