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전성기 시절에 녹음한 음반에는 간혹 낯설고 엉뚱한 뮤지션 이름들이 앨범 표지에 보이곤 한다. 이는 십중팔구 누군가 이름이 알려진 뮤지션이 당시 소속사와의 계약에 위배되거나 참여 사실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하여 가명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후일 재즈 평론가나 열광적인 팬들은 이를 추적하여 사실을 밝혀 내기도 하지만, 마스터 테이프에 쓰여진 가명 하나로 이 사실을 확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성기 시절 재즈 스타들이 썼던 수많은 가명들 중 대표적인 사례 다섯에 대해 알아보았다.

 

Charlie Parker as Charlie Chan

1953년 5월 15일 톱스타 재즈 뮤지션 다섯 명이 토론토의 매시 홀(Massey Hall)에 모여 단 한차례 연주로 역사적인 실황 앨범 <Jazz at Massey Hall>을 남겼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가 콤보를 이뤄 함께 연주한 유일한 날이며, 파커와 길레스피가 협연한 마지막 날이었다. 하지만 찰리 파커는 계약 상의 이유로 자신의 본명을 쓰지 못하고 ‘찰리 챈’(Charlie Chan)이라는 가명을 써야 했다. 찰리 챈은 당시 영화에서 인기있던 탐정 이름이기도 했고, 여자 친구 찬 리차드슨(Chan Richardson)에서 착안했을 수도 있다. 콤보의 이름 역시 별도로 짓지 않고 더 퀸텟(The Quintet)이라는 일반 용어를 사용했다. ‘찰리 챈’이라는 이름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Collector’s Item>(1956)에 수록된 1953년 세션에 다시 한번 더 등장했다.

The Quintet <Jazz at Massey Hall>(1953)

 

Dizzy Gillespie as John Birks

활달한 성격의 디지 길레스피는 1945년부터 1946년 사이에 수많은 레코딩 세션에 참가하였는데, 여러 종류의 가명을 쓰거나 조금씩 차이나는 스펠링을 사용되기도 했다. 처음 Slim Gaillard의 앨범 <Bel-Tone>(1945)에서는 ‘John Berks’를, 앨범 <Jazz At The Philharmonic>(1946)에서는 ‘John Birks’를, 그리고 Wilbert Baranco의 <Black and White>(1946)에서는 ‘John Burk’라 썼다. ‘John Birks’라는 가명을 어디서 차용하였는지, 스펠링 차이를 둔 것은 의도적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 외에도 Gabriel, Hen Gates, Izzy Goldberg, John Kildare 등 다양한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후일 <Birks Works>(1957)이란 앨범을 내면서 ‘John Birks’가 자신의 가명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였다.

Dizzy Gillespie ‘Birks Works’(1957)

 

Fats Navarro as Slim Romero

스물여섯의 한창 나이에 결핵으로 생을 마감한 천재 트럼펫 연주자 팻츠 나바로는, 짧은 현역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독창적인 솔로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십대 후반에 유랑 뮤지션 생활을 하던 그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1946년부터 1948년까지 뉴욕에 정착하여 수많은 레코딩 세션에 참가하였는데,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계약상 이유로 인해 ‘슬림 로메로’(Slim Romero)라는 엉뚱한 가명을 썼다. 그의 연주는 클리포드 브라운이나 리 모건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가 사망한 후 15명의 동료 트럼펫 연주자들이 그의 장례식에 모여 그의 시그니처 송인 ‘Nostalgia’를 함께 연주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Fats Navarro ‘Nostalgia’

 

Eric Dolphy as George Lane

존 콜트레인이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마지막으로 출반한 앨범 <Ole Coltrane>(1961)에는 에릭 돌피가 조지 레인(George Lane)이라는 가명으로 플루트와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였다. 당시 프레스티지 레코드와 계약이 되어있던 그가 계약위반 사실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생 레이블 임펄스(Impulse!)로 이적하기 직전이던 존 콜트레인은 스페인과 아프리카 색이 짙은 포스트 모던 명반 <Ole Coltrane>으로 애틀랜틱과의 계약 상 마지막 음반을 채웠다. 첫 트랙의 18분이 넘는 ‘Ole’은 스페인 민요 ‘El Vito’에서 영감을 받은 곡으로, 존 콜트레인인의 소프라노 색소폰과 에릭 돌피의 플루트 솔로를 함께 들을 수 있는 명곡이다.

에릭 돌피의 플루트 솔로를 들을 수 있는 ‘Ole’

 

Cannonball Adderley as Buckshot La Funke

당시 25세의 젊은 트럼펫 연주자 루이 스미스(Louis Smith)의 데뷔 앨범 <Here Comes Louis Smith>(1958)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생소한 알토 색소폰 연주자 이름이 나온다. 이 앨범을 녹음하고 출반하기로 했던 트랜지션(Transition) 레이블이 출반하기도 전에 파산하면서 마스터 테이프를 모두 인수한 블루노트가 대신 출반하였다. 당시 라이너 노트를 쓴 재즈 평론가 레오나드 페더는 신비스러운 이름의 알토 색소폰 연주자는 당시 루이 스미스와 함께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캐논볼 애덜리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이름은 후일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가져다 ‘벅샷 르 퐁크’(Buckshot LeFonque)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으로 바꾸어 쓰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앨범 <Here Comes Louis Smith>에 수록된 ‘A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