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시절의 R.E.M. 멤버들(1987)

네 사람이 조지아주에서 밴드를 결성했을 때, 모두 조지아대(University of Georgia)에 다니던 학생이었다. 캠퍼스 타운인 애선스(Athens)에서 음악을 매개로 함께 어울리면서 캠퍼스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적당한 밴드 이름을 사전에서 찾다가 R.E.M.(Rapid Eye Movement)로 정했다. 사람이 잠을 자다가 꿈을 꾸면 안구가 재빨리 움직이는 상태를 말하는 의학 용어다. 이들은 대학 캠퍼스의 라디오 방송에서 입소문을 타며 당시 록에서 파생된 ‘얼터너티브 록’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부상했고, 1980년대부터 30여 년 동안 활동하면서 8,5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하였다. 밴드는 2011년 공식 해체하였지만, 현재 스포티파이 월별 리스너가 1,800만에 이를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특히 보컬리스트 마이크 스타이프(Michael Stipe)는 사진을 전공한 아티스트 출신으로, 노래 작사와 약70여 편에 이르는 뮤직비디오 제작을 진두지휘하였다. 서사를 품은 뮤직비디오는 밴드의 인기를 견인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히트곡 다섯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해본다.

 

‘Losing My Religion’(1991)

얼터너티브 록의 최고 명곡으로 손꼽히며, 롤링스톤지 선정 역대 500곡 중 100위권에 오르는 명곡이다. 일곱 번째 앨범 <Out of Time>(1991)의 싱글로 발표되어 당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4위까지 올랐고, 지금까지 스토티파이에서 12억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 중이다. 가사의 의미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으나 작사를 한 마이크 스타이프는 강박적이며 지독한 짝사랑을 다룬 것이라 일축했다. 독특한 영상미로 유명한 영화 <더 셀>의 타셈 싱(Tarsem Singh)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그 해 그래미 최우수 뮤직비디오상을 받았고, MTV 시상식에서는 무려 6관왕에 올랐다. 현재까지 유튜브에서 11억 회 조회수를 올린 인기 영상이다.

 

‘Everybody Hurts’(1992)

여덟 번째 앨범 <Automatic for the People>(1992)에서 나온 싱글로, 빌보드 핫100 차트 29위에 올랐다. 호주,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 톱 10에 올랐으며,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 캠페인에 수시로 활용하였다. 이 곡의 뮤직 비디오는 고속도로의 트래픽 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끝 부분에는 밴드가 겪었던 트래픽 잼의 실제 뉴스 영상을 이어 놓았다. 영국의 명감독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들 제이크 스콧(Jake Scott)의 작품으로, 아카데미 5회 수상의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의 클래식 영화 <8과 1/2>(1963)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Shiny Happy People’(1991)

일곱 번째 앨범 <Out of Time>(1991)에서 두번째 싱글로 발표된 곡으로, 인기 뉴웨이브 밴드 B-52의 케이트 피어슨(Kate Pierson)이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였다.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0위,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6위에 올라, 양국에서 톱 10에 오른 유일한 곡이 되었다. 렘브란트의 ‘I’ll Be There For You’로 교체되기 전까지 시트콤 <프랜즈>(Friends)의 테마곡으로 잠시 쓰였을 정도로 흥겨운 팝 멜로디의 곡으로, 이후 행사나 이벤트의 테마곡으로 자주 채택되었다. 케이트 피어슨 역시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였고, 밴드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오래 했던 케서린 디에크먼(Katherine Dieckmann) 감독의 작품이다.

 

‘It’s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1987)

다섯 번째 앨범 <Document>(1987)에 수록된 곡으로, 두번째로 싱글 발표되어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 69위, 영국 싱글 차트에서 39위에 올랐다. 이 곡은 아포칼립스(인류의 멸망) 환경을 묘사하여 9.11 테러 이후 라디오에 연속으로 나왔고, 코로나 팬데믹이 선언된 2020년에는 아이튠스 다운로드 차트 톱 100에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가 이 노래를 도용하자, 법원의 사용중지 명령을 얻어내 이를 중지시키기도 했다. 조지아 대학의 예술 교수로 마이클 스타이프에게 영향을 주었고 뮤직비디오 작업에도 깊이 관여했던 제임스 허버트(James Herbert) 감독의 작품으로, 10대 스케이트보드 선수였던 노아 레이(Noah Ray)가 출연하였다.

 

‘Man on the Moon’(1992)

여덟 번째 앨범 <Automatic for the People>(1992)의 두번째 싱글로, 빌보드 핫100 차트 30위에 올랐고 밴드의 가장 인기곡 중 하나다. 1984년에 사망한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Andy Kaufman)을 추모한 곡으로, 그의 코미디 소재 중 하나였던 아폴로 음모론이나 프로 레슬링,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풍자한 내용으로 뮤직비디오를 구성하였다. 이 곡과 제목은 후일 앤디 카우프만의 전기 영화 <Man on the Moon>에 그대로 쓰였다. 뮤직비디오에서 멤버 네 명 모두 볼 수 있는데, 카우보이 모자를 쓴 주인공이 마이클 스타이프(보컬), 트럭 운전사가 빌 베리(드럼), 바텐더가 피터 벅(기타), 당구를 치는 손님이 마이크 밀스(베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