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코웰(Stanley Cowell)은 실력과 경력 면에서 최상급의 재즈 피아니스트였지만,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재즈 팬도 많을 정도로 대중과 멀었던 뮤지션이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재즈 뮤지션의 길을 택하였고, 젊은 시절 늦은 밤까지 담배 연기가 자욱한 클럽에서 매일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 생활이 고달파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을 가르치는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럿거스(Rutgers, 뉴저지 주립대) 음대에 오래 재직했던 교수로, 자신의 이름으로 낸 음반이 30여 장에 이르고 그의 실력을 아는 동료 뮤지션들의 초청을 받아 세션 뮤지션으로 참가한 음반이 40여 장 이상이다. 음악적으로 밀접한 동료였던 찰스 톨리버(Charles Tolliver)와 함께 뮤지션이 주인인 인디 레이블 스트라타-이스트(Strada-East)를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다양한 장르와 포맷의 음악 활동을 통해 지적인 학구파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거나 직업적인 피아니스트라면,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연구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The Stanley Cowell Jazz Trio at Rutgers-Newark>

 

재즈 레전드를 만난 여섯 살 소년

오하이오 톨레도(Toledo) 출신인 그는, 세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여섯 살 무렵 집으로 찾아온 재즈 레전드 아트 테이텀(Art Tatum)을 만난 후 재즈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의 부모는 여관을 운영하면서 재즈 뮤지션들에게 숙소를 무료 제공하였고, 같은 고향 출신인 아트 테이텀과는 가족끼리 잘 아는 사이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하이오의 명문 음악학교 오벌린(Oberlin)에 진학한 그는,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학장이었던 에밀 다넨버그(Emil Danenberg)를 사사한 클래식 피아노 유망주로 성장했다. 그러나 대학 재학 때 재즈 색소포니스트 롤랜드 커크(Roland Kirk)와 함께 연주하여 그의 클래식과 재즈 사이의 방황은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미시건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학위를 마친 20대 중반의 나이에 롤랜드 커크의 소개로 뉴욕으로 입성하여 재즈 뮤지션의 길을 가게 되었다.

데뷔 앨범 <Blues for the Viet Cong>(1969)의 ‘Departure’은 그가 초등학생 시절에 기본 멜로디를 작곡했다고 알려졌다.

 

열정적인 뉴욕 뮤지션 시절

뉴욕 재즈 신에서 그의 실력이 즉흥 연주와 작곡 면에서 모두 출중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많은 뮤지션들의 초빙을 받았다. 맥스 로치, 바비 허처슨, 클리포드 조던, 소니 롤린즈, 스탄 게츠 등의 밴드에서 연주했으며, 당시 그들이 낸 앨범에서 ‘스탠리 코웰’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당시 뉴욕에서 유행 중이던 아방가르드 재즈 뮤지션들과도 자주 어울렸으나 음악 면에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고, 그의 연주는 하드 밥(Hard Bop)의 기본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971년에는 데뷔 시절부터 함께 한 오랜 동료 트럼페터 찰스 톨리버와 함께 뮤지션십(Musicianship)을 강조한 인디 레이블 스트라타-이스트(Strata-East)를 설립하였는데, 포스트-밥과 스피리추얼 재즈 분야에서 성과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에 그는 작곡과 연주 실력을 집약한 30여 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그 중에는 <Brilliant Circles>(1969), <Musa: Ancestral Streams>(1973), <Equipoise>(1978)가 손꼽힌다.

앨범 <Musa: Ancestral Streams>에 수록된 ‘Equipoise’

 

럿거스 대학의 음대교수

1981년을 기점으로 그는 음악 신보다는 대학 캠퍼스에 자주 나타나 음악 교육자의 활동을 늘려 나갔다. 뉴욕시립대(CUNY) Lehman College에서 11년을 보낸 후, 럿거스대(뉴저지주립대)에 채용되어 2013년 은퇴할 때까지 캠퍼스에서 교육자로 지냈다. 나이 마흔에 접어든 그는 재즈 뮤지션의 연주 생활에 지쳐 안정적인 캠퍼스에서 머무르고 싶었던 것. 그는 음악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에 많은 시간을 보내, 클래식 음악과 아프리카 원류의 음악, 그리고 전자 악기와 IT 기술의 접목에 대해 많은 성과를 보였다. 1990년대에는 스티플 체이스(Steeple Chase) 레이블과 인연으로 15장의 음반을 발표하였는데, 언론에서 그를 혁신자(Innovator)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은퇴 후에는 다시 옛 동료들과 다양한 연주 활동에 매진하였으나, 2020년 저혈량 쇼크로 인해 79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앨범 <Live at Maybeck Recital Hall, Volume Five>(1990)의 ‘Autumn Leaves’ 솔로 피아노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