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캔자스시티의 재즈 신에 혜성처럼 나타나 독특한 감성적 연주로 인기를 얻은 레스터 영(Lester Young)의 음악을 후일 쿨 재즈(Cool Jazz)의 원조라고 했다. 당시에는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처럼 선이 굵은 남성적인 연주가 대세였는데, 가늘고 길게 느릿느릿 연주하는 새로운 스타일 선을 보인 것이다. 20대의 젊은 기수 레스터 영에게 어떤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는지 묻자, 그는 서슴지 않고 “Frankie Trumbauer is my man!”이라 답했다. 1920년대 ‘트램’이란 별명으로 코넷을 불던 빅스 바이더백과 함께 빅스 앤 트램(Bix & Tram)이란 이름의 듀오로, 재즈 신의 정상에 섰던 인물이었다. 그가 빅스 바이더벡, 기타리스트 에디 랭과 함께 녹음한 ‘Singin’ the Blues’(1927)은 재즈사의 한 획을 그은 중요한 녹음으로 인정받아 1977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 그리고 2005년에는 국회의사당 도서관에 헌정되었다.

Frankie Trumbauer & His Orchestra ‘Singin’ the Blues’(1927)

프랭키 트럼바워는 음악 가족의 일원이라는 점과 색소폰과 함께 클라리넷도 잘 다루었다는 점에서 레스터 영과 많이 닮았다. 1920년대 세인트 루이스의 댄스 무대에서 명성을 얻은 그는, 1927년 Okeh 레코드의 계약 하에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Singin’ the blues’을 히트시켰다. 당시에 고용했던 빅스 바이더벡(트럼펫)과 에디 랑(기타)과 스몰 콤보를 조직하여 ‘빅스 앤 트램’(Bix & Tram)이란 이름으로 미국 전역을 누볐다. 하지만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빅스 바이더벡이 27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자 해체했고, 1936년에는 트롬보니스트 잭 티가든(Jack Teagarden)의 형제와 함께 ‘Three T’라는 콤보를 조직하기도 했다. 후일 평론가들은 그를 가리켜 레스터 영, 찰리 파커 이전에 있던 최초의 솔로이스트라 불렀는데, 그의 솔로 연주를 대표하는 곡이 바로 그가 작곡한 ‘Trumbology’(1927)이다.

Frankie Trumbauer & His Orchestra ‘Trumbology’(1927)

하지만 대공황의 그늘이 드리우자 그를 찾는 무대는 갈수록 줄었고 뮤지션으로 살기에 수입은 턱없이 부족했다. 원래 비행기 운전에 관심이 많아 조종 기술을 배웠던 그는, 1939년 민간 항공국(Civil Aeronautics Authority)에 취직하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B-25 폭격기의 비행사와 항공 교관으로 일했다. 제대 후에는 다시 뮤지션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비행사 일을 주로 하면서 대부분 수입을 항공 관련 일에서 벌었다. 말년에는 레스터 영이 재즈 스타로 부상한 재즈 도시 캔자스시티에서 살다가, 1956년 55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생은 전기 <Tram: Frankie Trumbauer Story>에서 상세히 묘사되었으며, 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스의 <재즈> 세 번째 에피소드 ‘Our Language’에서 그의 역작 ‘Trumbology’를 192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Frankie Trumbauer & His Orchestra ‘Ostrich Walk’(1927)

마일스 데이비스의 쿨 재즈를 이야기할 때, 그보다 오래 전에 레스터 영이란 인물이 있었고 그보다 더 오래된 1920년대에 프랭키 트럼바워란 인물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빅스 바이더벡과 잭 티가든과 함께 콤보를 이룬 동료였으나, 음악 신에서 점점 사라져 일찍 파일럿의 길을 걸으며 그들보다 존재가 희미한 뮤지션으로 남았다. 그의 대표곡 ‘Singin’ the Blues’가 1977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서 다시 희미해진 이름을 되살렸으며, 최근에는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화제의 오스카 수상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에 그의 대표곡 ‘Ostrich Walk’과 ‘There’ll Will Come a Time’이 수록되면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이었음을 다시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