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최고조를 이루었던 미국의 인권 운동은 흑인 대중들의 의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는 록 음악이 퇴조한 후 대중음악의 대세로 자리잡은 힙합에도 서서히 영향을 가져왔다. 랩이 처음 나왔을 때 래퍼들은 주로 물질주의와 갱스터 세계를 주요 소재로 삼았으나, 1980년대 들어오면 정치적인 행동, 사회적인 변혁 등 의식화 메시지를 담은 앨범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음악을 통하여 사회적 불평등, 경찰의 폭력성, 고착화된 빈곤과 인종차별의 부당성을 알리고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했고, 이를 컨셔스 랩(Conscious Rap) 또는 폴리티컬 힙합(Political Hip Hop)이라 불렀다. 이를 대표하는 앨범과 대표곡 넷을 꼽아 보았다.

 

Public Enemy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1988)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활동하던 래퍼 Chuck D와 Flavor Flav가 결성한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두 번째 앨범이다.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극찬을 받았다. 리드 래퍼 Chuck D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아티스트로, 그가 다니던 뉴욕 아델피 대학(Adelphi University)에서 Flavor Flav를 처음 만났다. 첫 앨범의 성공 후 두 번째 앨범 작업 당시에는, 마빈 게이의 명반 <What’s Going On>(1971)의 사회적 영향에 필적하는 앨범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 앨범은 ‘컨셔스 랩’ 운동을 널리 알리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에 47주간 머물렀으며, 지금도 역대 앨범 500선 상위권에 꾸준히 오르는 힙합 명반으로 남았다. 이 앨범 발매 직후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의 영화 <Do the Right Thing>(1989)에 수록한 ‘Fight the Power’는 가장 유명한 곡으로 남았다.

영화 <Do the Right Thing>에 수록된 ‘Fight the Power’

 

A Tribe Called Quest <The Low End Theory>(1991)

1985년 뉴욕 퀸즈에서 자란 친구 사이인 큐팁스(Q-Tips)와 파이프 독(Phife Dawg)을 중심으로 모인 4인조 힙합 그룹으로, 두 번째 앨범 <The Low End Theory>가 1990년대 재즈 힙합 시대를 여는 명반으로 극찬을 받았다. 이들은 예술적이고 지적인 랩 음악을 지향해, 같은 동네 출신의 델 라 소울(De La soul)과 함께, 갱스터 랩에 대응하는 얼터너티브 힙합(Alternative Hip Hop)의 대표주자로 꼽혔다. 앨범에서 이들의 랩은 사회적 관계, 데이트 폭력, 힙합 업계, 소비지상주의 등 여러 가지 주제를 적절히 다루었다는 평이 따른다. 2000년대 들어 한 동안 앨범을 발표하지 않은 이들은 <We Got It from Here..>(2016)을 녹음한 후 파이프 독이 당뇨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하여, 마지막 고별 음반이 되고 말았다.

앨범 <The Low End Theory>에 수록된 ‘Can I Kick It?’

 

Nas <Illmatic>(1994)

뉴욕 퀸스브리지의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난 나스(Nas)가 랩의 서사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며 스무 살에 발표한 데뷔 앨범이다. 표지에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겨 있다. 자신이 흑인 동네에서 직접 겪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마약, 폭력, 인종차별 등 가난한 흑인사회의 암울한 환경을 랩에 담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으로 자주 거론되며, 평론가들은 그의 작사 실력이 굉장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스는 제이 지(Jay Z)와 함께 동부 힙합 신을 대표하며 서로 디스하는 경쟁 관계였으나, 2005년에 가서야 화해를 이루었다. 이 음반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열다섯 장의 앨범을 냈으나, 데뷔 음반만 못하여 극심한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기도 하였다.

앨범 <Illmatic>에 수록한 ‘N.Y. State of Mind’

 

Kendrick Lamar <To Pimp a Butterfly>(2015)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 퍼렐 윌리엄스, 썬더캣(Thundercat), 빌랄(Bilal) 등 흑인 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여 ‘힙합으로 표현된 흑인 음악의 정수’라는 극찬을 받은 앨범이다. 어릴 때부터 힙합 실력으로 주목받은 켄드릭 라마를 발탁한 인물은 닥터 드레(Dr. Dre)로, 그에게 여러 뮤지션들을 연결하여 주면서 실력을 발휘하도록 하였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두 번째 앨범 <good kid, m.A.A.d city>(2012) 이후 아프리카를 두루 여행하면서 영감을 받아, 다음 앨범 <To Pimp a Butterfly>에서 사회, 문화, 종교, 인권 등에 관한 다양한 메시지를 담았다. 이 앨범은 메타크리틱 96점으로 대표되는 찬사와 함께 상업적으로도 110만 장 이상 판매하였고, 그래미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5관왕을 안아 2015년 최고의 앨범이 되었다.

앨범 <To Pimp a Butterfly>의 ‘Alright’은 그래미 최고 랩송 부문에서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