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 새로운 흥행공식으로 떠오른 뮤지션 간의 협업, 즉 컬래버레이션(이하 ‘콜라보’)의 추세는 여전하다. 예컨대 그룹 글랜체크의 김준원과 f(x)의 크리스탈, 엑소(EXO)의 찬열과 정기고 등 인디 뮤지션과 대중적 인기를 선도하는 아이돌의 콜라보는 신선한 조합 탓에 이목을 모았다. 나아가 배우, 개그맨 같은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와 뮤지션의 협업도 잦아졌다. 모두 새로운 시도를 통해 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음악이 전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점에서 지금 소개하는 콜라보는 더욱 특별하다. 오롯이 독립적으로 이루어 낸 인디 신의 콜라보는 신선함을 주는 것은 물론, 인디 신 자체에 고무적인 영향을 준다. 음악성을 스스로 증명해온 두 음악가가 조율하고 다듬은 하나의 음악은 정성과 매력이 두 배로 담겼다. 지금 소개하는 다섯 개의 콜라보, 열 개의 팀은 나날이 불어나는 음악의 홍수 속에서 든든한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대놓고 말하자면, 지겨운 인기 차트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좋은 음악’들이란 얘기다.

 

1. 파라솔 X 실리카겔 ‘Space Angel’

파라솔과 실리카겔

지난해 각종 ‘올해의 신인’ 자리를 꿰차며 누구보다 독창적인 행보를 이어온 7인조 밴드 실리카겔. 그리고 절대 무시 못할 내공을 쌓아온 세 명이 뭉쳐 독자적인 사운드를 내뿜고 있는 밴드 파라솔. 각각 사물에 빗대 표현한 이름들이 처음 주었던 이미지처럼, 파라솔과 실리카겔의 조화로운 합창이 쉬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면, 파라솔과 실리카겔의 ‘Space Angel’은 두 팀이 정교하게 나뉘어 졌지만, 그 매력은 몇 배가 됐다. 누가 들어도 파라솔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나른한 목소리와 일렁이는 사운드가 1절을 채우고 나면, 2절은 여지없이 실리카겔만의 찬란한 악기들이 꽉 채운다. 두 팀의 음악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면서도 공평하게 딱 절반씩 버무려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그저 신비롭고 황홀할 따름이다. 파라솔의 지윤해가 제안한 오래된 애니메이션 ‘Space Angel’을 모티프로 삼아 실리카겔의 김민수가 멜로디를 구성했다. 뮤직비디오로 감상하면 두 밴드가 만들어낸 7분짜리 매력은 한층 배가된다.

파라솔 & 실리카겔 'Space Angel'

 

2. 곰PD X 오왠 '흐린'

곰PD와 오왠

곰PD는 2009년 직접 작사, 작곡, 연주, 노래로 완성한 첫 번째 싱글 앨범 ‘내일의 추억’으로 데뷔 후 다수의 곡을 선보인 음악가다. 데뷔 당시에도 이미 홍대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적잖은 활동을 펼쳐온 그는 KBS 라디오 이지형 PD로도 알려져 더욱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16년 데뷔한 오왠(O.WHEN) 역시 빼어난 곡 창작 능력과 매력적인 목소리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신예 싱어송라이터다. 두 사람은 2017년 1월, 첫 번째 콜라보 프로젝트 'Return'을 선보인 지 한 달 만에 ‘흐린’을 발표했다.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과 탄탄한 실력이 공통점인 두 음악가가 만들어낸 믿고 들을 만한 감성 발라드다. 곡의 세련된 멜로디와 구성은 곰PD가, 이별의 감성을 증폭시키는 가사와 허스키한 목소리는 오왠이 각각 사이좋게 맡았다. 조정치의 일렉트릭 기타도 사운드를 보탰다.

곰PD X 오웬 '흐린' MV

 

3. 공기남녀의 공기남 X 어쿠르브의 고닥 '봄이 되어줄게’ (feat.그_냥)

공기남녀와 어쿠루브

봄에 꼭 어울리는 부드러운 멜로디를 전해온 싱어송라이터 듀오라면 공기남녀와 어쿠루브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두 팀의 프로듀서, 공기남녀 공기남과 어쿠루브 고닥의 만남은 더욱 특별하다. 데뷔 전부터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은 의미 있는 콜라보 프로젝트를 약속했고, 2016년 8월 첫 번째 콜라보 음원 ‘투정부리고 싶은데’로 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는 작년에 순차적으로 공개한 세 곡과 함께 새로 선보이는 곡 ‘봄이 되어줄게’를 담은 EP 앨범을 발매했다. 모든 작사, 작곡, 편곡에 공기남과 고닥이 함께 했고, 곡마다 어울리는 객원 보컬들이 활약했다. 특히 이번 객원보컬에는 406호프로젝트, 굿나잇스탠드에 이어 인디 신에서 은근한 인기를 쌓아온 '그_냥'이 참여해 더욱 주목을 모은다. 그동안 달콤한 멜로디를 선물해온 두 프로듀서의 협업은 자연스레 올봄에 듣기 좋은 음악으로 완성됐다.

공기남(공기남녀), 고닥(어쿠루브) '봄이 되어줄게'

 

4. 이성경 X 이루리 '서울살이'

이성경과 이루리

밴드 바이 바이 배드맨(Bye Bye Badman), 서울문(Seoulmoon)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이루리와 뮤지션 이성경의 콜라보 프로젝트. 항간에 배우 이성경의 노래인 줄 알고 들었다가 예상치 못한 좋은 음악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는데, 피아노 연주와 작곡 실력을 겸비한 뮤지션 이성경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올해 2월,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낸 두 곡을 담은 싱글 앨범 <도시의 밤>을 발매했다. 그중 '서울살이'는 서울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공감을 자극하는 노래. 특히 "난 괜찮아요 서울살이는 할 만하네요" 같은 솔직한 가사가 마음에 콕 박힌다. 덤덤하지만 따뜻하게 내뱉는 이루리의 목소리와 이성경의 심플한 피아노 선율은 쓸쓸한 일상에 충분한 위로가 된다. 두 곡으로만 느끼기에는 아쉬운 두 사람의 콜라보가 앞으로 계속되길 바란다.

이성경 X 이루리 '서울살이'

 

5. 오브로젝트 X 스탠딩에그 'Those were the days'

오브로젝트와 <Those were the days> 앨범 자켓

언더와 오버를 넘나들며 인디 음악계의 숨은 강자로 자리매김한 스탠딩에그는 어쿠스틱 감성을 내세운 곡들로 유명하다. '오'씨 형제(Brother)의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오브로젝트는 보컬리스트인 형 오태석과 홍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해온 래퍼인 동생 윤닭(오윤석)이 결성한 친형제 듀오로, 정겨운 보컬과 랩을 결합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팀이 올해 선보인 곡 'Those were the days'는 작년과 재작년 연달아 발표한 '햇살이 아파', '무지개'를 잇는 세 번째 콜라보다. 호소력 짙은 보컬과 개성 있는 랩까지 겸비한 오브로젝트의 매력이 스탠딩에그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만나 한층 두터운 감성을 전한다. 쓸쓸한 기타와 첼로 선율, 멋진 화음이 쌓인 노랫말에는 추운 겨울에 느낀 이별의 그리움이 듬뿍 녹아 있다. 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해온 스탠딩에그가 ‘이름 그대로’ 깜짝 등장하는 라이브 영상을 통해 두 팀의 감성적인 콜라보를 만끽해보자.

오브로젝트 X 스탠딩에그 'Those Were the Days'
 (메인이미지 출처= 해당 앨범 자켓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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