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Esquire) 잡지사에서 일하던 그래픽 디자이너 레이드 마일스(Reid Miles)가 신생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Blue Note)에 합류한 건 1955년이었다. 당시 12인치(약 30센티) LP음반이 일반화되자, 앨범 디자인이 그만큼 앨범 판매량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약 17년 동안 블루노트의 앨범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뮤지션 사진 일색이던 앨범 디자인의 세계를 바꿔 놓았다. 앨범 자켓에 문자를 이용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도입하고, 앤디 워홀 같은 신예 아티스트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적용하여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그가 블루노트에서 맡은 500여 편의 앨범 디자인 중, 수직 막대를 연속 배열한 디자인, 알파벳을 변형하여 늘어놓은 디자인, 느낌표 같은 기호를 연속 배치한 디자인은 그의 독창성을 상징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프레디 허버드의 <Hub-Tone>에 적용한 수직 막대 디자인은, 여기서 영감을 받거나 패러디한 앨범들이 계속 생겨나 하나의 계보를 이룰 정도였다.

 

Freddie Hubbard <Hub-Tones>(1963)

1960년대 들어 프레디 허버드는 색소폰의 웨인 쇼터와 함께 재즈 메신저스의 하드 밥(Hard Bop) 전성 시대를 이끈 트럼펫 거장이었다. 그가 블루노트에서 남긴 다섯 번째 앨범 <Hub-Tones>이 명반으로 꼽히는 데는, 레이드 마일스가 남긴 아트 디자인 역시 중요한 요인이었다. 흰색 바탕에 아홉 개의 검은 사면체 막대가 서 있고, 밑으로 살짝 떨어진 여섯 번째 막대의 아래쪽에 블루노트의 공동 창업자 프란시스 울프가 찍은 프레디 허버드의 연주 사진을 붉은 톤으로 담았다. 이 독창적인 디자인은 블루노트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앨범 <Hub-Tones>의 첫 트랙 ‘You’re My Everything’

 

Horace Parlan <Speakin’ My Piece>(1960)

찰스 밍거스의 밴드에서 연주하던 하드밥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팔란은 1960년대 초 블루노트에서 여섯 장의 음반을 남겼으며, 이후에는 덴마크로 이주하여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인해 오른쪽 손가락 일부가 마비되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독창적으로 개발한 왼손 주법으로 유명하다. 그의 연주 영상에서 오른손의 셋째, 넷째 그리고 다섯째 손가락이 뻣뻣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앨범의 커버에는 일곱 개의 흩뜨려진 막대를 배열하였는데, 시기적으로 <Hub-Tones>보다 먼저 나왔지만 동일한 계열로 분류된다. 후대의 래퍼 그룹 US3의 이름에 영감을 준 두 번째 앨범 <Us Three>(1960)의 불규칙적인 숫자 디자인 역시 유명하다.

Horace Parlan ‘Speakin’ My Piece’

 

Don Wilkerson <Shoutin’>(1963)

레이 찰스의 백밴드에서 활동하던 색소포니스트 돈 윌커슨을 캐논볼 애덜레이가 스튜디오로 불러들였으며, 1960년대 초반 블루노트에서 단 세 장의 소울 재즈 음반을 남겼다. 그 후에는 더는 밴드리더로 활동하지 않고, 세션 연주자로 남았다. 세 장의 블루노트 음반 중 마지막 <Shoutin’>의 앨범 커버는 <Hub-Tone>의 막대 디자인을 같은 콘셉트로 확장하여, 26개의 길이가 상이한 막대를 왼편에 쏠려서 배치하고 그의 붉은 단일 색조의 사진을 담았다. 여섯 곡의 레퍼토리 중 네 곡은 그의 오리지널이며, 블루노트의 스타 기타리스트 그랜트 그린이 함께 하였다.

앨범 <Shoutin’>에 수록된 ‘Movin’ Out’

 

Bob Dylan <Shadows in the Night>(2015)

레이드 마일스의 검은 막대 디자인 콘셉트가 50여년 만에 부활했다. 당시 70대 중반에 이른 밥 딜런의 서른여섯 번째 앨범으로, 프랑크라 시나트라가 1960년대에 부른 팝 발라드 10곡을 리메이크하였다. 이 앨범은 호평 속에 영국 앨범차트와 미국 포크와 록 앨범 부문에서 각각 톱에 올랐고, 그래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1960년대 초반의 시대상을 그리기 위해, 앨범 <Hub-Tones>의 아홉 개의 막대 디자인 콘셉트를 차용하였다. 앨범 뒷면에는 밥 딜런과 마스크를 쓴 여인이 정장 차림으로 나이트클럽에 앉아있는 사진을 담았는데, 1966년에 프랭크 시나트라와 미아 패로우가 참석한 흑백 무도회(Black and White Ball)을 패러디한 것이다.

<Shadows in the Night>의 ‘I’m A Fool to Wan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