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록 밴드의 세계에 여성이 처음 모습을 보인 때는 1960년대다. 메이저 음반사들은 로컬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 밴드를 발굴하여, 음반을 내고 상업화를 시도하였다. 사상 최초로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라 할 수 있는 골디 앤 진저브레드(Goldie and the Gingerbreads)와 플레저 시커(The Pleasure Seekers)가 기대를 모았으나,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록이 다양하게 분화한 1970년대에 접어들자, 영국의 걸스쿨(Girlschool)과 미국의 런어웨이즈(The Runaways)가 등장하여 여성 밴드의 시대를 열었고, 고고스와 뱅글스는 히트곡을 터뜨리며 빌보드 차트의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여성 멤버로 구성된 올-걸-밴드의 레전드 다섯과 그들의 대표 곡을 알아보았다.

 

런어웨이즈 ‘Cherry Bomb’(1975)

최초로 명성을 얻은 로스앤젤레스 출신 5인조 걸 밴드로, 본토인 미국보다 일본, 유럽, 남미에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1975년 데뷔 당시 18세의 보컬리스트 체리 커리(Cherie Currie)의 선정적 의상에 대한 혹평이 뒤따르며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가 탈퇴한 후에도 리타 포드, 조앤 제트를 중심으로 걸-밴드의 명성을 계속 이어 나갔다. 하지만 음악의 방향이나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 이견을 보이면서, 여섯 장의 음반을 남기고 1979년에 공식 해체되었다. 당시 주력 멤버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수나 로커로 활동하고 있으며, 때때로 밴드의 재결합 여부는 세간의 관심사가 되었다. 체리 커리가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자전적 영화 <The Runaways>(2010)이 제작되었는데, ‘다코타 패닝’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체리 커리’와 ‘조앤 제트’의 애증 관계를 연기하였다.

런어웨이즈의 체리 커리를 상징하는 히트곡 ‘Cherry Bomb’

 

걸스쿨 ‘C’mon Let’s Go’(1981)

미국에 런어웨이즈가 있었다면, 영국에는 원조 걸 밴드 걸스쿨(Girlschool)이 있었다. 1978년 영국에서 결성된 4인조 록 밴드로, 고등학생 시절의 학교 밴드 ‘페인티드 레이디’(Painted Lady)를 모태로 하여, 40여년 동안 큰 동요나 내분 없이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70년대 중반부터 영국에서 유행이 시작된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 운동의 일원으로 열혈 팬들의 인정을 받아, 모터헤드, 아이언 메이든 등의 남성 NWOBHM 밴드들과 함께 공연 투어를 다녔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활동성이 현저히 줄고 음반도 자주 내지 않았으나, 이미 ‘바미 아미’(The Barmy Army)라는 극성 팬 클럽이 공연장마다 쫓아다니는 컬트 밴드가 되어 있었다. 선정성이나 차별적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실력파 밴드로, 후대의 걸 밴드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앨범 <Hit and Run(1981)에 수록한 ‘C’mon Let’s Go’

 

고고스 ‘We Got the Beat’(1981)

고고스(The Go-Go’s)는 1978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된 5인조 뉴웨이브 밴드로, 최초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여성 밴드였다. 지역 펑크 커뮤니티의 여성 멤버들이 결성하였는데, 데뷔 앨범 <Beauty and the Beast>(1982)가 작곡과 연주 모두 여성이 맡은 앨범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 톱에 오른 기념비적인 음반이 되었다. 두 번째 싱글 ‘We Got the Beat’은 빌보드 2위에 올라 그들의 최고 히트곡이 되었고, 이 앨범은 200만 장 이상 판매하였다.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낸 후 1985년 밴드는 해체되었고, 리드 보컬을 맡았던 벨린다 칼라일(Belinda Carlisle)은 성공적인 솔로 가수로 전향하였다. 2001년에 원년 멤버들이 다시 모여 17년 만에 정규 앨범을 냈으나, 앨범 차트에서 57위에 그쳐 세월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들은 수시로 다시 모여 공연을 벌이고 있으며, 여전히 가장 성공적인 여성 밴드로 남았다.

고고스 ‘We Got the Beat’ 라이브 영상

 

뱅글스 ‘Walk Like an Egyptian’(1986)

뱅글스(The Bangles)는 1981년에 마찬가지로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한 4인조 팝 밴드로, 두 번째 앨범 <Different Light>(1986)에 수록한 ‘Manic Monday’와 ‘Walk Like an Egyptian’가 각각 빌보드 2위와 톱에 오르며 고고스의 뒤를 잇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Manic Monday’는 이들을 눈여겨본 프린스(Prince)가 만들어준 곡이다. 세 번째 앨범 <Everything>(1988)도 ‘In Your Room’과 ‘Eternal Flame’이 연속적으로 히트했으나, 네 명 모두 보컬을 나누어 맡고 있는데도 언론이 수잔나 호프스(Susanna Hoffs)를 단독 리드 싱어라 부르는데 대한 멤버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분란이 생겨 이듬해 해체하였다. 1998년에 재결합하여 두 장의 앨범을 더 냈으며, 수시로 모여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수잔나 홉스는 밴드 인기의 핵심이었으며, 지금까지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뱅글스 ‘Walk Like an Egyptian’

 

도나스 ‘Who Invited You’(2002)

도나스(The Donnas)는 1993년 캘리포니아의 팔로 알토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런어웨이즈와 걸스쿨의 영향을 받아 결성한 4인조 록 밴드다. 졸업하자마자 데뷔 음반을 발표하고 펑크 신에서 컬트 팬들의 추종을 받았으며, 2001년부터 메이저 레이블인 애틀랜틱(Atlantic)과 계약하면서 앨범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상업적인 성공의 길을 열었다. 레이블의 적극적인 마케팅에 따라, 그들의 음악은 할리우드 영화와 TV 드라마, 그리고 게임 음악으로 자주 채택되어 그들의 인기를 견인하였다. 최근까지 7장의 음반을 발표하였으며, 발목 수술 후 은퇴하고 학교로 돌아간 드러머 ‘토리 카스텔러노’ 외에는 원년의 멤버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앨범 <Spend the Night>(2002)에 수록한 ‘Take It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