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Provence)라는 지명은 기원전 1세기경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될 무렵, ‘속주’라는 의미의 라틴어 ‘프로방키아’(Provicia)에서 유래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ote d’Azur)를 가리키며, 과거에는 이탈리아 북서부 지방까지 포함하던 지역이다. 여기에는 마르세유, 니스, 엑상프로방스, 아비뇽, 칸 등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휴양 도시들을 중심으로 약 50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 곳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경치와 온화한 기후를 가진 휴양지이며, 라벤더와 포도 산지로서 로제 와인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고대 로마제국의 유적과 중세 도시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 이 곳을 배경으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찍기 위해 영화 관계자들이 즐겨 찾고 있다. 프로방스의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 다섯 편을 골라 보았다.

 

<마농의 샘>(1986)

영화의 주인공은 배우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프로방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담은 클래식 영화로, 1920년대 프로방스 농가의 샘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 가족 간 분쟁을 다룬 시대극이다. 이브 몽땅, 제라르 드 빠르디유, 엠마누엘 베아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약 30주 동안이나 촬영을 강행한 덕분에, 두 편의 연작 <Jean de Florette>(마농의 샘), <Manon Des Sources>(마농의 샘 2)에 사계절의 자연을 모두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고 흥행에도 성공하여, 프랑스의 농촌 지역이었던 프로방스가 세계적인 휴양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본국보다 영국에서 더 인정을 받아, 이듬해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포함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 <마농의 샘>(1986) 예고편

 

<마르셀의 추억>(1990)

원작 <마농의 샘>(1952)을 쓴 프랑스 작가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은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남부 프랑스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파리로 부임하여 극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 전원 생활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성장 소설이 <어린 시절의 추억>(Souvenirs d’enfance>(1957)이다. 이브 로베르(Yves Robert) 감독은 원작을 두 작품으로 각색하여, 아버지에 대한 추억 부분은 <마르셀의 여름>(My Father’s Glory)으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마르셀의 추억>(My Mother’s Castle)으로 나누어 제작했다. 시애틀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국내에서는 1997년에 극장 개봉 후 여름방학용 가족 영화로 자주 TV에서 상영하는 작품이다. 프로방스의 ‘씨니으’(Signes)에서 촬영하였다.

영화 <마르셀의 추억>(1990) 마지막 장면

 

<스위밍 풀>(Swimming Pool, 2003)

살인 사건이 연루된 미스터리 영화로 분류되나, 대부분 장면은 프로방스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는 두 여인 ‘사라’(샬롯 램플링)와 ‘줄리’(루디빈 사니에)의 한가로운 일상을 보여주며, 일부 수위가 높은 자극적인 장면들도 등장한다. 영화 <8 femmes>(8명의 여인들, 2002)와 함께 프랑스 영화계의 뉴웨이브 감독 프랑수아 오종(Francois Ozon)의 대표작으로 소개되며, 로튼토마토 83%로 호평을 받았고 개봉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결론이 불분명하여 여러가지 해석과 반론이 뒤따랐으며, 심지어 젊고 자유분방한 ‘줄리’는 중년의 추리소설 작가 ‘사라’의 뒤틀린 욕망을 반영한 상상 속 인물이라는 황당한 설명까지 나오기도 했다. 알랭 들롱 주연의 클래식 영화 <수영장>(La Piscine, 1969)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영화이며, 프로방스의 포도 산지로 유명한 휴양지 류베홍(Luberon)에서 촬영하였다.

영화 <스위밍 풀>(2003) 예고편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 2006)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영화를 소개할 때 제일 먼저 소개되는 로맨틱 코미디로,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콤비였던 감독 리들리 스콧과 배우 러셀 크로우가 다시 손을 잡았다. 당시 15년 동안 프로방스에 별장을 소유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개인적 열망을 담은 작품으로, 이웃에 살던 영국 작가 피터 메일(Peter Mayle)을 졸라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동명 소설을 쓰게 했다. 주요 촬영 장소는 보니유(Bonnieux), 뀨뀨홍(Cucuron), 고호드(Gordes), 아비뇽(Avignon) 기차역, 마르세유 공항으로, 모두 감독의 별장에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후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으며, 흥행 성적 역시 좋지 않아 약 2,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러셀 크로우의 상대역으로는 프랑스의 인기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Marion Cotillard)가 출연하였다.

영화 <A Good Year>(2006)의 메이킹 영상

 

<러브 인 프로방스>(2014)

가족 간, 세대 간 갈등과 화해를 다룬 가족 영화로, 때때로 ‘프로방스 관광 진흥을 위한 프로모션 영상’ 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Avis De Mistral>, 영어로는 <My Summer in Provence>로 개봉하였고, 영화 <레옹>(1994)이 나온 지 30년이 지나 할아버지로 출연한 60대 중반의 장 르노(Jean Reno)를 볼 수 있다. 아비뇽 출신인 여성 감독이자 작가인 로젤리 보쉬(Roselyne Bosch)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극본을 썼고, 그를 유명하게 만든 영화 <라운드 업>(La Rafle, 2010)에 출연했던 장 르노를 캐스팅했다. “여기서는 농담이 일상이에요. 적게 일하고 웃으며 살자는 거죠.”라는 마을 주민의 대사 하나로 이 영화가 말하려는 메시지를 알 수 있다.

영화 <러브 인 프로방스>(2014)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