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부터 샤넬의 남성용 향수 ‘블루’(Bleu De Chanel)의 새로운 광고 캠페인에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가 모습을 보였다. 제품 출시 후 12년 동안 홍보 모델을 맡았던 프랑스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Gaspard Ulliel)이 지난해 불의의 스키 사고로 사망한 후, 그가 새로운 홍보대사 역할을 맡은 것이다. 푸른 화면에 등장한 그의 얼굴 뒤로 나오는 배경 음악은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에 나온 ‘Nights in White Satin’이다. 이 곡은 영국 밴드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두 번째 앨범 <Days of Future Passed>(1967)에 수록되었는데, 당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 독특한 콘셉트 음반을 발표하던 추세를 반영하여 ‘The Night’ 섹션에 속한 첫번째 곡으로 소개되었다. 처음 발매 시에는 영국 싱글 차트 19위에 그쳤으나, 4년 후 미국에서 다시 발매되어 빌보드 2위, 캐시박스 1위에 올라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티모시 샬라메: The New Ambassador of Bleu De Chanel(2023)

‘무디 블루스’는 1964년 영국 버밍엄에서 결성된 5인조 밴드다. 싱글 ‘Go Now’로 일찌감치 상업적인 성공을 맛본 후, 이를 이을 만한 후속 히트곡을 찾지 못해 애쓰던 차였다. 뒤늦게 합류하여 밴드의 보컬과 작곡을 맡은 저스틴 헤이워드(Justin Hayward)가 공연을 위해 벨기에에 머무르던 중 이 곡의 기본 멜로디를 완성하였다. 이후 여자친구로부터 선물로 새틴 질감의 하얀색 침대보를 받은 후, 영감을 얻어 이 곡의 제목과 가사를 써내려 갔다. 과거에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사랑에 막연한 대한 기대를 표현한 은유적인 가사의 노래였다. 녹음할 때 런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심포니 연주를 맡아,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바로크 록(Baroque Rock)을 대표하는 곡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곡 후미에 시를 낭송하는 파트까지 포함하면 7분이 넘는 긴 곡이었으나 싱글 발매 시에는 이 부분을 드러냈고, 후일 오케스트라가 함께 무대에 오를 때는 시 낭송 부분을 다시 넣기도 하였다.

Moody Blues ‘Nights in White Satin’(1967)

이 노래는 록 스탠더드로 추앙을 받아 다른 가수나 밴드의 레퍼토리에 자주 오르면서, 1967년에 이어 1972년, 1979년, 2010년까지 모두 네 번이나 영국 싱글 차트에 올랐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한 영화 음악가 조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는 가사를 살짝 비틀고 디스코 장르로 편곡하여 앨범 <Knights in White Satin>(1976)을 발표했고, 자신에게 오스카 영화음악상을 안긴 알란 파커 영화 <Midnight Express>(1978)의 사운드트랙에 수록하였다. 그러자 이듬 해 무디 블루스의 오리지널이 다시 영국 차트에 소환되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14위와 8위에 각각 랭크되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소울 가수 베티 라베트(Betty La Vette)의 앨범 <Interpretations: The British Rock Songbook>에 리메이크되자, 영국 싱글 차트에 또 다시 등장하여 51위에 올랐다. 이 곡을 만들었던 60대의 저스틴 헤이워드는 인터뷰에서 베티 라베트의 리메이크를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후일 밝혔다.

Bettye La Vette ‘Nights in White Satin’(2010)

무디 블루스는 모두 16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7,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레전드 밴드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활동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밴드 역사 50년을 이어 나갔다. 밴드 역사 50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영국과 미국에서 대대적인 공연을 마무리하였고, 2018년에는 마지막이 된 실황 앨범 <Days of Future Passed Live>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최근 원년 멤버들이 연이어 생을 마감하자 완전히 활동을 멈추었으나, 이들의 음악이 샤넬의 새로운 광고 캠페인의 배경 음악으로 방송을 타면서 밴드 이름이 다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한 곡으로 영국 싱글 차트에 다섯 번이나 이름을 올린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지도 모른다. 저스틴 헤이워드는 2022년 영국 음악산업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IBE)를 받았다.

로열 앨버트 홀 무대에 오른 무디 블루스(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