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린 시절 흔하게 들어온 이야기 중 하나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이야기다. 선행을 베푼 나무꾼 부부에게 신비한 요정이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 하는 이야기인데, 통상 소원을 잘못 말하여 헛되이 써버리는 다소 황당한 결과로 끝나버리고는 한다.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2019)에서 램프의 요정 형식으로 재현되었지만, 독일이나 영국, 그리고 페르시아의 동화나 민담에서 비슷한 소재들이 조금씩 달리 전해 내려왔다. 최근 OTT에 공개된 영화 <삼천 년의 기다림>(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 2022) 역시 호리병에 갇힌 정령이 등장하여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상업적으로 실패해 디즈니의 <알라딘>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2022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어 6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부커 수상 작가 ‘바이엇’ 원작
귀네스 팰트로가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의 원작 <Possession>(1990)으로 부커상을 받은 영국 소설가 A. S. 바이엇(A. S. Byatt)의 단편 소설 <The Djinn in the Nightingale’s Eye>(1994)을 각색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포함한 단편집은 아가 칸 문학상(Aga Khan Prize for Fiction)을 받았다. 여기에 수록한 다섯 편의 소설은 민담이나 전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야기로, 평론가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진’(Djinn)은 아랍의 오랜 문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정령 또는 요정을 말하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타락천사와 흡사하다. 그렇다고 영화 <알라딘>에 묘사된 ‘지니’(윌 스미스)처럼 파란색이 아니라 투명한 피부에 가까우며, 영화 <삼천 년의 기다림>의 ‘진’(이드리스 엘바)처럼 항아리, 반지나 물병에 들어갈 수 있고, 자신의 크기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민담
초자연적인 존재가 홀연히 착한 사람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민담은 여러 지방에서 유래한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알라딘의 요술 램프>는 아랍의 설화를 집대성한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의 이야기 중 하나이며, 독일 민담에서 유래한 <백설공주>나 영국의 동화 작가 W. W. 제이콥스(Jacobs)의 <The Monkey’s Paw>(1902)에도 세 가지 소원(Three wishes)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민담은 나무꾼 부부가 소시지를 원했다가, 실수로 소시지를 코에 붙이게 되고, 결국 코에서 소시지를 떼게 해달라고 하여 세 번의 기회를 허망하게 놓치게 된다는 내용으로, 헛된 망상을 갖지 말고 현재에 만족하라는 교훈을 준다. 영화 <삼천 년의 기다림>에서 주인공 ‘알리테아’(틸다 스윈튼)는 재물이나 지식을 원하는 대신, 정령 ‘진’과의 해피엔딩을 기원하게 된다.
기립 박수를 받았지만 흥행에 실패한 영화
이 영화는 <매드 맥스>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 밀러(George Miller) 감독이 각본과 제작, 그리고 감독까지 맡았고, 틸다 스윈튼과 이드리스 엘바가 캐스팅되면서 기대를 모았다. 3,000년을 거슬러 올라 고대 이스라엘의 시바 여왕과 솔로몬왕이 등장하고,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술탄 쉴레이만 1세가 등장하는 등 역사 판타지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고루 갖추었다. 정령으로 분한 ‘이드리스 앨바’는 <알라딘>의 윌 스미스와 비교되었고, 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서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어 6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제작비 6,000만 달러의 반도 건지지 못한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 개봉한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2019)은 영화관에서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지만, 이 작품은 2022년 할리우드 최고 실패작 중 하나로 기록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MGM의 부실한 마케팅 전략을 탓하기도 했지만, 이제 VOD와 OTT 시장에서 만회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