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교 무대가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해를 넘겼으며, 동북아시아도 언제든 국지전이 일어날 수 있는 긴장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에도 <나이트 에이전트>에 이어 새 정치 미스터리 드라마 <외교관>(The Diplomat, 2023)이 연속 높은 순위를 점유하고 있다. 로튼토마토 93%의 평점으로,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넷플릭스의 성과를 견인할 대표 드라마로 예견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 드라마 답게 미국의 대통령, 국무장관, 주영 미국대사, 영국 총리 등 워싱턴 DC와 런던의 요직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욱 복잡해진 유럽의 정치와 외교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 <외교관>(2023) 예고편

 

작가에서 프로듀서로, 데보라 칸

드라마 <외교관>은 넷플릭스와 다년 계약을 맺은 작가 겸 프로듀서 데보라 칸(Debora Cahn)의 첫 작품이다. 그는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후 1999년 계약직 작가로 드라마계에 발을 들였다. 정치 드라마 <웨스트 윙>(West Wing)과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의 전문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인기 스파이 드라마 <홈랜드>의 마지막 두 시즌(2018~2020)에서는 책임 프로듀서를 맡아 성공적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웨스트 윙> 시절부터 그와 함께 일을 시작한 지니 하우(Jinny Howe)가 넷플릭스의 드라마 개발 담당 임원으로 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루키 시절의 동료를 불러들인 것이다. 두 사람의 여성 프로듀서가 힘을 합친 드라마 <외교관>은 여성 영국대사, 여성 비서실장, 여성 CIA 런던 지사장 등 여성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드라마 <외교관> 중 영국대사와 남편의 육탄전 장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일까?

어떤 기자는 이 드라마를 백악관을 중심으로 정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웨스트 윙>(1999~2006)의 현재판이라고 했다. <외교관>의 주 무대는 미국의 백악관 대신, 런던에 있는 미국 대사관과 대사관저(윈필드 하우스)이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더욱 복잡해진 유럽 외교의 현실을 담은 정치 비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얼마만큼 외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현장에서 일하던 직업 외교관은 결코 영국 대사로 임명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중론이다. 이 자리는 워싱턴DC와 런던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자리로, 이제까지 미국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정가 거물이거나 여당 인사 또는 대통령 캠프의 요직을 맡은 인물이 낙점되던 자리였다. 영국 항공모함을 폭파함으로써 특정 세력이 정치적 이득을 노린다는 가정 또한 현실성에 관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런던 나인엘름스(Nine Elms)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런던의 미국 대사관저로 쓰이는 윈필드 하우스(Winfield House)

 

<외교관>의 모델, 리처드 홀브룩

<외교관>의 작가 팀은 조지 패커(George Packer)의 저서 <Our Man>(2019)의 내용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이 책은 미국 외교관인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의 일대기를 기록한 전기로, 그래서인지 <외교관>에서 주인공 케이트 와일러(Keri Russell)의 남편인 할 와일러(Rufus Sewell)가 실존 인물인 ‘리처드 홀브룩’을 모델로 하였다고 추정한다. 그는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독일 대사를 지냈으며, 사라예보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지역의 특별 대사로 임명되어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 협상을 성공으로 이끈 입지전적인 외교관이다. 그 역시 드라마의 ‘할’처럼 국무장관이 되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캠프에서 일하였으나 결국 현실화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2010년 지병으로 사망한 후 HBO는 <The Diplomat>(외교관, 2015)이란 같은 제목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차량 폭탄테러와 함께 끝난 <외교관>의 시즌 1은 다음 시즌의 향방을 예고하고 있다. 배경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의 ‘The Great Gig in the Sky’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