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못하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악어, ‘라일’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동화작가 버나드 와버(Bernard Waber)가 1962년에 출간한 그림 동화 <The House on East 88th Street> 부터다. 프림스 가족이 맨해튼 88번가에 있는 오랜 건물로 이사를 와서, 다락방에 살던 악어 라일과 친해지고 가족처럼 지낸다는 유쾌한 이야기다. 무서운 이미지의 악어 캐릭터가 의외로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자 후속 작품 <Lyle, Lyle, Crocodile>(1965)이 바로 출간되었고, HBO에서는 이를 스토리북 뮤지컬 <Lye Lyle Crocodile: The Musical>(1987)로 제작하였다. 이제 60주년을 맞은 2022년에는 실사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극장 수입 1억 달러를 넘어서는 흥행작으로 거듭났다.

영화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2022) 예고편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캐릭터는 라일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숀 멘데스(Shawn Mendes)와 반려동물 가게에서 어린 라일을 데려다 키운 마법사 ‘발렌티’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이다. 캐나다 출신의 인기 팝 스타 숀 멘데스는 2019년 내한공연에서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상당하다. 가수가 되기 전에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는 그가,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영화 <장난감이 살아있다>(Metegol, 2013)에 이어 두 번째로 성우 연기에 나섰다. 물론 악어 라일이 노래와 춤은 잘 하지만 말은 못하기에 대사는 전혀 없지만,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 듀오 벤제이 파섹(Benj Pasek)과 저스틴 폴(Justin Paul)이 만든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여덟 곡을 노래했다.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던 <Lyle, Lyle, Crocodile>(2013)

그동안 굵직한 성인 연기나 악역 캐릭터로 필모그래피를 쌓은 하비에르 바르뎀이 어린이 대상의 가족 영화에 나와서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는 사실도 특이할 만하다. 그는 과거에도 폭력을 혐오한다고 여러 번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아내 페넬로페 크루즈 사이에 낳은 아들 둘과 딸이 10대로 성장하자 폭력적인 역할 대신 온화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는 과거의 바람둥이나 악역 이미지를 털어내고, 카이젤 수염과 형형색색 재미난 의상으로 갈아입고 쇼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는 엉뚱한 마술사로 변신하여 코믹한 춤과 좌충우돌 연기를 선보였다.

HBO에서 제작한 스토리북 뮤지컬 <Lyle, Lyle, Crocodile: The Musical>(1987)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한차례 연기한 후에 2022년 11월에 개봉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나 박스오피스 성적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제작비 5,000만 달러의 2배인 1억 달러를 넘어섰고 이제 디지털 상영으로 넘어와 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중국 시장에서 상영 허가를 받아 올해 4월 극장 개봉에 들어갔다고 하니, 박스오피스 성적은 앞으로 더욱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올해 1월에 개봉하여 5만 4,000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 악어가 주인공이다 보니, 마지막 엔딩을 장식하는 피날레 송은 엘튼 존의 ‘Crocodile Rock’(1972)이 유일하고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