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영화 공개 당시 소개하기도 했던(링크) <화이트 타이거>(The White Tiger)는 통상의 인도 영화와는 다른 주제 의식과 표현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을 떠났고 미국 컬럼비아대와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공부한 소설가 아라빈드 아디가(Aravind Adiga)의 맨부커 수상 원작을 바탕으로, 그의 컬럼비아대 학우였던 이란계 미국 감독 라민 버라니(Ramin Bahrani)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인도 영화라 말하기는 어렵다. 감독은 인도의 고질적인 계층간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많이 알려진 인기 배우를 배제하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발굴해 주연으로 캐스팅하였다. 최하층 계급 출신의 한 남자 눈을 통해 바라본 카스트 제도의 실상을 고발하여, <기생충>의 인도판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본국보다는 미국에서 호평을 받아 2021년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올랐으며, 로튼토마토 역시 91%의 신선도 지수로 좋은 평가를 내렸다.

영화 <화이트 타이거> 예고편

 

영화 <기생충>의 인도판

<화이트 타이거>는 인도의 상류층과 하류층을 대비시켜 카스트 제도의 병폐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영화 <기생충>과 비교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인도 영화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여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통속적인 결말을 담고 있으나, 이 영화는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극빈층의 갑갑한 일상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희망이 없는 계층 구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인도에서 개봉되지 않고 바로 미국에서 상영되었으며, 2021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어 64개국에서 영화 톱에 올랐고 첫 달에 2,700만이 시청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각색상 후보에 올랐다.

넷플릭스 <Watch This Before You See The White Tiger?>
* 아래 영화 일부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왜 <화이트 타이거>인가?

영화 앞 부분에 나오는 닭장 장면은 인도의 뿌리깊은 계층 구조를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닭장 속의 닭은 다른 닭이 죽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곧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을 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인도의 하층민 생활에 만족하고 노예 상태에 안주하는 피지배 계층을 빗댄 것이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학교 교사가 똑똑한 그를 가리켜 한 세대에 하나 나오는 화이트 타이거에 비유하는데, 그는 성인이 되어 동물원 철창 안에서 서성거리는 화이트 타이거를 보면서 점차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게 된다. 하지만 그 역시 살인을 저지르고 수배자의 신분에서 옛 주인 ‘아쇽’의 이름을 쓴다는 점에서, ‘철창 안의 화이트 타이거’가 상징하는 계층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한편 인도의 관객들은 닭장 장면이 하층민을 지나치게 굴욕적으로 비하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주인공이 동물원에서 철창 속의 화이트 타이거를 처음 보는 장면

 

인도의 현실을 꿰뚫은 대사

인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수천 종류의 카스트가 명멸했지만, 지금은 단 두 종류만 남게 되었다고 영화는 전한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진 계층과 굶어서 배고픈 계층 두 가지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카스트의 신분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여전히 신분에 따라 특정 카스트가 몰려 사는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결핵으로 일찍 사망하자 주인공에게 학업을 포기하게 하고 찻집에서 일하게 만드는 이는 친할머니라는 점 또한 곤궁한 가족의 비극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배경이 2007년에서 2010년 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의 배경과 대사들이 인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인도에서 빈곤층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두가지다. 범죄 아니면 정치” 이는 결국 주인공이 택한 길이 되었다.

영화 속 대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