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미국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걷히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화되었고, 이와 관련한 금융 상품에 투자했던 많은 회사들이 도산 위기를 맞았다. 2007년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세계 4위권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으로 정점을 맞았고, 2010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경제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자 당시 사태의 내밀한 이야기와 금융 제도에 관한 개선책을 모색하는 서적들이 우후죽순 출판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사실에 기반한 전기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경제나 금융에 관심을 가졌다면 찾아서라도 볼 필요가 있는 영화 네 편을 골라 보았다.

 

<인사이드 잡>(Inside Job, 2010)

이 영화를 만든 찰스 퍼거슨(Charles Ferguson) 감독은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MIT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한 후, 백악관과 애플, 제록스 등 대기업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동료와 함께 ‘Vermeer Technologies’라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여 마이크로소프트에 약 1.3억 달러의 금액에 매각하기도 했다.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꾸준히 영화제를 찾아 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고조되자 이에 대한 취재와 조사를 시작하여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Inside Job>(2010)을 제작했는데, 로튼토마토 98%의 호평을 받고 그해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맷 데이먼 역시 영화의 내용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 예고편

 

<마진 콜>(Margin Call, 2011)

‘마진 콜’은 원래 투자 원금의 손실 발생시 이를 보전한다는 의미의 금융 용어다. JTBC의 <방구석 1열>에 흥미진진하게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영화로, 금융위기 당시 한 투자은행(‘골드만 삭스’로 추정)이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자산을 하루 만에 먼저 처분하는 과정을 스릴있게 그린 금융 스릴러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투자은행가를 아버지로 둔 J.C. 챈더 감독의 데뷔작으로, 로튼토마토 87%의 호평을 받고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케빈 스페이시, 스탠리 투치, 제레미 아이언스, 데미 무어 등 관록파 배우들이 열연을 벌였고, 제작비 350만 달러의 다섯 배가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두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개봉하였으나, 관객수 7,700명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방구석 1열>에서의 영화 소개

 

<Too Big To Fail>(2011)

제목으로 쓰인 문구 ‘Too Big To Fail’(TBTF)은 금융 회사들이 대형화되었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회사의 부실은 경제 시스템의 위기로 연결되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로, 미국의 하원의원 ‘스튜어트 맥키니’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금융위기 당시의 내밀한 상황을 실명으로 묘사한 전기 영화로, 실존 인물과 비슷하게 분장한 배우들이 당시 재무부 장관인 ‘헨리 폴슨’, 투자사 대표 ‘워렌 버펫’, 연방준비은행(FRB) 의장 ‘티모시 가이트너’,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와 대형 금융사들의 CEO 등 당시 금융 주역들을 연기하였다. HBO가 동명의 논픽션 서적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 영화는 에미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하지는 못하였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작가로 유명한 피터 굴드(Peter Gould)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영화에서 금융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장면

 

<빅 쇼트>(The Big Short, 2015)

실존 금융회사 셋을 중심으로 부동산 버블이 어떻게 금융 위기로 이어지는 지를 내밀하게 보여주는 전기 영화로, 금융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루이스의 저서 <The Big Short: Inside the Doomsday Machine>(2010)를 바탕으로 하였다. 크리스천 베일,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 등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하였고, 카메오로 등장하는 배우 ‘마고 로비’, 요리사 ‘앤서니 보데인’, 가수 ‘셀레나 고메즈’ 등 셀럽들이 카메라를 향해 어려운 경제 용어를 직접 설명하기도 한다. 로튼토마토 89%의 호평을 받았으며,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색 부문에서 최종 수상했다. 난해한 내용의 영화지만 이를 흥미진진한 연출이나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소화한 덕에 제작비 5,000만 달러를 훨씬 뛰어넘은 1억 3,0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벌어들였다.

영화 <빅 쇼트>(2015)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