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날씨도 점점 추워지면 어느덧 올해도 끝나간다는 사실이 와 닿아 마음마저 조급해진다. ‘뭘 했다고 시간이 이렇게 간 거지?’ ‘내년이면 나이가 몇 살인 거지?’하는 슬픈 생각이 잠시 스쳐 간다. 사고 회로를 살짝 돌려보자. 올해엔 사람들을 더 만날 수 있었고, 우리 안에 내재한 회복하는 힘이 이렇게 강력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그 뒤엔 더 큰 기쁨이 기다린다는 믿음을 잃지 않은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음악 신에서도 다시금 생명의 움직임이 움튼 한해였다. 아티스트와 팬들이 다시 공연장에서 만나게 되었고, 여러 음악가들이 컴백하며 들을 거리도 많았던 일 년이었다. 5가지의 키워드로 올해 해외 음악 신에서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보자. 놓친 게 있다면 지금부터 알면 되니까.

 

1. 다시 시작된 함성, 공연과 페스티벌의 재개

투애니원 © Kevin Mazur, 이미지 출처 - Getty

공연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기 전에 올해 각종 페스티벌과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종식을 향해가며 뮤지션들이 투어 일정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초인 4월, 코첼라 페스티벌이 다시 개최되면서 많은 이들이 이런 공연 업계 회복의 움직임을 실감했다. 해리 스타일스, 빌리 아이리쉬, 위켄드가 헤드라이너로 섰고, CL과 2NE1의 재결합 무대를 포함해 비비와 에스파 등 국내 뮤지션들의 무대가 늘어나 국내 팬들에게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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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수많은 공연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잃어버린 2년이 무색하게도 어느덧 어떤 공연을 가야 할 지 고민하게 되었다. 내한 공연만이 아니라 펜타포트 페스티벌과 같은 국내 페스티벌과 국내 뮤지션들의 공연도 계속되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을 처음 찾는 해리 스타일스를 비롯해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뮤지션인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나 시가렛 에프터 섹스 같은 그룹이 연이어 내한할 예정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와 프리마베라가 어마어마한 라인업을 발표했으니, 내년엔 밀린 해외 여행 겸 해외 페스티벌을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프리마베라 사운드 2023 바르셀로나 & 마드리드

 

2. 무려 30여 년 전 음악이 차트 1위가 되는 요즘

케이트 부쉬, 1978년 © Silver Gelatin

과거에 발매된 곡이 어느 날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힘을 얻어 차트 1위를 하는 것. 우리는 여러 역주행 사례들을 목격해왔다. 하지만 케이트 부쉬의 1985년 작 ‘Running Up That Hill’이 발매된 지 37년이 지난 2022년에 차트 1위를 하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놀랍지 않았나 싶다. 역주행에 힘이 실린 건 곡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인 <기묘한 이야기 시즌4>에 삽입되면서다. 주인공 맥스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고 달리는 순간 ‘Running Up That Hill’이 깔리면서 스산하지만 아련하고 숨이 벅차도록 질주하는 듯한 에너지가 폭발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탄생했다.

케이트 부쉬 ‘Running Up That Hill’

곡은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서로 이해하기 어려움에 대해 서로가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트에서 1위를 한 적은 없지만 계속해서 사랑받아온 곡이기도 하다. 드라마로 화제가 된 곡은 틱톡에서 챌린지 곡으로 활용되며 곡을 차트 1위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케이트 부쉬는 이런 상황에 큰 감동을 하였다고 밝히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곡이 1위를 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기묘한 이야기 시즌4> 덕분에 메탈리카의 1986년 작품 ‘Master Of Puppets’역시 아이튠즈 록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HBO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시청한 시리즈인 <유포리아>도 삽입곡들을 차트인시키며 드라마와 소셜미디어의 힘으로 높은 순위를 달성하는 사례가 새로운 트렌드임을 확인시켰다.

 

3. 30초 안에 더 많이 더 빨리,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의 인기

스페드업 사례

사람들은 요즘 짧게는 15초, 길게는 30초 정도 안에 영상에 뭔가를 담는다. 더 빨리 더 많은 걸 담아야만 한다. 음악을 배속하면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춤을 보여줄 수 있다. 그렇게 ‘Sped Up’ 버전이 탄생하게 되었다. 틱톡에서는 원곡 대신에 빨리 감기 한 것 같은 스페드업 버전이 더 많이 쓰인다. 수요가 생긴 까닭에, 음반사에서는 원곡의 스페드업 버전을 정식 발매하기도 한다. 데미 로바토의 ‘Cool For The Summer’, 샘 스미스의 ‘I’m Not The Only One’, 시아의 ‘Unstoppable’이 이런 사례에 속한다. 혹은 팬들이 좋아하는 곡의 스페드 업 버전을 자발적으로 생성해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이제 음악은 음악 자체로 기능하기보다는, 영상 혹은 다른 매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스페드 업 버전 덕분에 원곡의 인기가 높아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니 속단은 어렵지만 말이다.

데미 로바토 ‘Cool For The Summer’ (Sped Up Remix)

 

4. 켄드릭 라마와 비욘세의 5, 6년 만의 정규 앨범

비욘세, 켄드릭 라마와 같은 대형 뮤지션들의 정규 앨범 발매 소식 덕에 흥겨운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마치 장사가 잘되는 집에 가면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활발하게 흘러가는 음악신에서 듣는 음악은 더 맛있게 느껴지는 듯했다. 켄드릭 라마는 ‘DAMN.’이후로 5년 만의 정규 앨범인 <Mr. Morale & The Big Steppers>를 발표했다. 앨범 커버 속 켄드릭 라마는 5년 전과 똑같은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힙합의 본질, 음악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앨범은 켄드릭 라마가 TDE에서 발매하는 마지막 앨범으로 앞으로 그는 데이브 프리와 공동 설립한 창작자 콜렉티브인 pgLang을 통해 시인과 래퍼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비욘세는 6년만의 새 앨범 <Renaissance>를 발매했다. 비욘세는 16곡이 수록된 앨범에서 다양한 댄스 음악을 조명한다. 그는 고립으로부터 탈출해 여행하고 사랑하고 웃을 준비가 됐다고 느껴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댄스 음악을 준비했다고 한다. 샘플링한 흑인 음악에서 그의 선곡 의도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아직 두 앨범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혹은 지난 후라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켄트릭 라마 ‘Rich Spirit’
비욘세 ‘Break My Soul’

 

5. 멈추지 않는 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 © Catherine Powell, 이미지 출처 - Getty Images

이전에 인디포스트에서 코로나 시대의 음악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Folklore> 앨범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후로도 테일러 스위프트는 끊임없이 음악을 발표하고 있는데, 하나는 ‘Taylor’s Version’이 붙은 이전 작품을 재녹음한 버전이고 나머지 하나는 새 앨범 <Midnights>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Fearless’, ‘Love story’와 같은 예전 곡들을 다시 녹음한 이유는 마스터 권리문제 때문이다. 전 음반사가 그의 6개 앨범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적한 음반사를 통해 새 버전을 내고 있는 것. 코로나 팬데믹에 투어를 하지 못하게 되자 앨범을 두 장이나 내고, 자신이 만든 음악에 대한 권리를 남이 가져가니 새로 녹음해버리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보면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보는 것 같다. 내년에는 우리도 어려운 상황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대신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테일러 스위프트 ‘Wildest Dreams’(Taylor’s Version)
테일러 스위프트 ‘Anti-Hero’

 

Writer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신샘이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