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9월 16일 전성기의 인기를 누리던 록 스타 마크 볼란(Marc Bolan)이 런던 인근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불과 서른이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을까 봐 운전도 배우지 않았지만, 그에게 내려진 가혹한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록 밴드 티.렉스(T. Rex)의 리더이자 싱어 및 기타리스트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어릴 시절의 튀는 행동과 옷차림을 그대로 무대로 옮겨와 1970년대 초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글램 록(Glam Rock)을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이었다. 이제 그가 사라진지 4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그의 음악을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들을 수 있고, 그가 사망한 장소는 록의 성지처럼 보존되어 있는 데다가, 이름을 검색하면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다. 마크 볼란이 과연 어떤 인물이고, 그의 음악은 어땠는지 알아보았다.

BBC <Top of the Pops>에 출연한 T. Rex의 ‘Get It On’(1971). 이때를 글램 록이 시작된 시점으로 본다.

 

글램 록의 효시가 된 패션 아이콘

1970년대 록 스타들이 무대에서 짙은 화장을 하거나 유별난 의상을 입고 때로는 반짝거리는 장식을 몸이나 악기에 붙이기도 하였는데, 이를 글램 록(Glam Rock)이라 했다. 1971년 3월, 영국 BBC의 음악 쇼 “Top of the Pops”에 출연한 마크 볼란이 얼굴에 반짝거리는 마크를 붙이고 광택이 있는 새틴 옷을 입었는데, 평론가들은 이 때를 글램 록의 효시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팝 스타가 될 것이라 굳게 믿었고, 화려한 옷을 입거나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소위 무대 체질이었다. 1960년대 중반 영국에서 유행하던 모드(Mod) 서브컬처를 추종하던 그는, 티.렉스의 두 번째 앨범 <Electric Warrior>(1971)을 내면서 과거의 포크 록 스타일을 버리고 과감하고 화려한 글램 스타일로 변신하여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를 따라서 데이비드 보위,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 스윗(Sweet), 록시 뮤직(Roxy Music) 등 글램 록 문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앨범 <Electric Warrior>에 수록된 ‘Hot Love’

 

데이비드 보위의 절친이자 경쟁자

마크 볼란은 데이비드 보위와 닮은 점이 많았다. 두 사람 모두 1947년생으로 같은 나이였고, 모드(Mod) 족으로 후일 히피(Hippie) 문화를 추종했고,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와 일했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으며, 상대는 자신들을 누를 정도로 강한 성격의 여성이었다. 두 사람 모두 무명이던 17세에 같은 매니저를 공유하면서 처음 만나 절친이 되었다. 마크 볼란이 듀오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를 결성하여 먼저 뜨자 데이비드 보위가 그를 부러워했고, 보위가 ‘Space Oddity’로 뒤따르자 볼란이 시기했다. 두 사람은 글램 록을 대표하던 스타로 부상하여 서로를 격려하면서 상대의 인기를 시샘하기도 했다. 프로듀서 비스콘티는 “볼란이 데이비드를 라이벌로 생각한 만큼, 보위는 볼란을 경쟁으로 생각지 않았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기도 했다. 볼란이 갑자기 사망한 뒤, 보위는 제대로 상속을 받지 못했던 볼란의 가족을 평생 보살펴 주었다.

마크 볼란의 TV 쇼에 함께 출연한 데이비드 보위(1977)

 

40여 년 동안 이어지는 추모 열기

최초의 아이돌 스타라 할 수 있는 마크 볼란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런던 인근에 있는 사고 현장에는 그의 흉상과 팬들이 보낸 꽃과 선물들이 자리잡았고, 그의 시신을 화장한 곳에는 그를 기린 현판이 자리잡았다. 이제 그 장소는 마크 볼란의 록 성지(Marc Bolan’s Rock Shrine)라 부르면서 런던시가 관광 명소로 등재하였다. 사후에도 수많은 볼란매니아(Bolanmania)들이 생겨났으며, 그가 만든 히트곡은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곡이나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끊임없이 소환되었다. 그가 만든 히트곡들은 다른 아티스트에 의해 재생되어 수시로 영국 음악차트에 다시 등장하여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브릿 어워드(1999)에서 플라시보와 데이비드 보위가 부른 ‘20th Century Boy’

2000년에는 그의 히트곡에서 영감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20세기 소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폭되었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를 따르는 추모 커뮤니티가 수없이 등장한다. 2020년에는 그의 영향을 받은 여러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컴필레이션 앨범 <Angelheaded Hipster: The Music of Marc Bolan and T. Rex>을 냈고, 그 해 티.렉스 멤버들 모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