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창 봄이지만 한편에서는 벌써부터 강력한 올해의 음반 후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화제의 앨범,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250(이오공)의 <뽕>에 대한 얘기다. ‘뽕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단 한 번도 주류 문화로 인정받은 적 없었던 장르를 당당히 정규앨범의 콘셉트로, 그것도 긴 제작 기간을 거친 진지한 작업물로 내놓은 그와 그의 앨범을 두고 호평이 쏟아지는 중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19회 진행한 한국대중음악상의 경우 팝이나 록, 포크 음반이 아닌 음악이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것은 두번째 달 <2nd Moon>(2006)과 가리온 <Garion 2>(2011), 이센스 <The Anecdote>(2016)뿐이다.) 해외 반응도 이에 부응한다. 영국의 <와이어>(The Wire)와 <DJ Mag>이 앨범을 리뷰한 데 이어 속속 매체들의 보도와 리뷰가 이어지고 있다. 아티스트 백현진이 참여한 ‘뱅버스’의 뮤직비디오는 ‘보스턴 국제 영화제’, ‘스웨덴 국제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으며, ‘한국 힙합 어워즈 2022’ 올해의 뮤직비디오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각자 취향과 관점은 다를 수 있으나 여러 호평이나 이와 같은 기대에 관한 공감대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뽕>이 우리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한 축이면서 동시에 소외되었던 뽕짝을 진지하고 미학적으로 다루면서, 보편성과 의외성, 그만의 의의를 동시에 갖추었다는 사실이 그 근거다. 오랫동안 좋은 사운드를, 이번 앨범을 제작하며 ‘뽕짝’의 근원을 탐구해온 250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잘 어루만진 사운드와 스토리텔링이 공존한다. 신중현, 양인자, 오승원, 이정식, 나운도, 이박사 등 대중음악사의 상징적인 이름과 손길이 작업에 깃들어 있기도 하다. 250을 만나 앨범 작업기, 그에 관한 생각을 자세히 들어봤다.

앨범 <뽕> 커버

 

Q 싱글 ‘이창’ 이후로 4년이라는 긴 제작 기간을 거쳐 탄생한 앨범이에요. 그 시간 동안 주로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해요.

가장 고민한 건 이전까지 제가 좋다고 생각했던 외국의 사운드, 텍스처와 한국에 오래 있어온 사운드를 어떻게 잘 섞을지에 대한 문제였어요. 제가 ‘뽕짝’이라는 음악을 의식적으로 듣기 한참 전에는 그건 그냥 스치는 음악이었어요. 그러니까 뽕짝을 대충은 알지만 태어나서 맨 처음 들은 뽕짝 음악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거죠. “누구 앨범이 나왔대.”라고 해서 레코드점으로 달려가서 사고, 설레면서 들었던 경험의 음악은 제게 없었죠. 어렸을 때 어디 큰 행사장에서, 어디 휴게소에서 그냥 들렸고 그게 누적돼서 왠지 모르게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첫 번째로 그 기억들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의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운드’의 요건을 잘 유지해야 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미디 파일을 불러와서 그냥 패치만 바꾸듯 이걸 가지고 저걸로 ‘뿅’ 하고 바꿔버리는 작업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이 작업을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운드가 멋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제게 있어 ‘뽕짝’은 사운드가 멋있는 음악이었기 때문에 <뽕>이라는 앨범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두 마리 토끼를 대놓고 잡아야 하는 미션이 제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제일 힘든 미션이었어요. 하나의 큰 프로젝트로 봤을 때 기존의 뽕짝의 그림을 해치지 않으면서 좋은 사운드를 유지하는 것. 음악으로 봤을 때는 마치 ‘한량’ 같다고 해야 할까요? 슬픔을 느끼게 하는 요소와 사람을 춤추게 하고 즐겁게 만드는 요소가 같이 섞여야 했어요.

구체적인 사운드 배합에 있어서도 열심히 싸우는 과정을 거쳤죠. 제가 ‘하우스’ ‘테크노’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냥 그 사운드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이상했죠. 또 저는 뽕짝에 쓰이는 특유의 오래된 악기에서 나오는 사운드들 중에 굉장히 좋아하는 게 많았거든요. 그래서 옛날 것과 요즘 것을 어떻게 조율할지, 여기서도 그 비율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지가 중요했어요. 한편으로 다른 데서 가져오는 건 있는 그대로 원료가 되는 거니까 이 원료를 이 앨범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할 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요. 그래서 지금 돌이켜 보면 고민과 고민과 고민이 연속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Q 개인적으로 앨범 <뽕>에 특별히 만족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러 반응 중에 “앨범의 사운드가 좋다.”라는 말이 있는 게 참 다행이에요. 그리고 이 앨범이 결국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 분류된 것도 천만다행이었고요. 아마도 듣는 사람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음악을 들을 텐데(요즘은 특히 그렇죠. 누구는 에어팟으로, 누구는 장비를 좀 갖춰 놓은 상태에서), 그들이 어쨌든 공통적으로 다른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들리는 게 있고, 좋게 느끼는 무언가 있으니까 그렇게 느끼실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 성취감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사실 사운드에 관해 깊이 고민 안 하고, 만약 그냥 악보만 그려서 내는 식이었으면 앨범을 훨씬 빨리 냈을 거잖아요. 그런데 전 ‘바라보고’ 같은 곡만 해도 정말 죽을 것처럼 고민을 많이 했고, 고민만이 아니라 믹싱 자체를 10번 정도 엎을 정도였거든요. ‘쿵’ 하고 소리가 튀어나옴과 동시에 클랩이 좀 더 ‘찰싹찰싹’ 해야 하고, 하이햇이 나왔을 때 베이스에 묻히지 않게 위상을 바꾸든 어디를 깎아내든 이런 고민들을 엄청 많이 했거든요. 결과적으로 듣는 분들이, 특히 자기 취향이 아닌 분들이 그런 말씀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거 내 취향은 아니다. 그런데 잘 만든 건 알겠다. 완성도가 높은 걸 알겠다.” “사운드는 좋네.” 이런 얘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유튜브 <뽕을 찾아서> 1화

 

 

Q 제작 과정을 유튜브 영상 <뽕을 찾아서>를 통해 꾸준히 공개해 왔잖아요. 앨범 작업을 시작할 때 아무래도 일종의 프로젝트로서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을까요?

사실 <뽕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진지하게 붙인 건 아니었고, 처음에는 <뽕> 앨범 만드는 과정을 찍자고 해서 “제목은 ‘뽕을 찾아서’로 해요.”라고 했었죠. 그 말이 일단 재밌으니까요. 당시에는 이 다큐가 실제 특별한 의미나 내용이 담길 거라고 사실 생각을 안 했었어요. 그냥 어디 가서 빈둥빈둥 놀고, 헤매고 다니다가 딱 1편처럼 사고 싶었던 걸 사지고 못하고 결국 집에 와서 마우스질만 하고 있는. 정말 그냥 그렇게 5편 정도 만들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김수일 선생님 만나고, 현장에서 그 소리를 직접 녹음하면서 ‘아, 지금 내가 그 옛날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1991~) 같은 걸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거죠. 당시 녹음도 굉장히 허접한 마이크로 하고 있었고, 환경 자체도 헐렁한 분위기였는데, 그분은 마이크를 쥐고서 그냥저냥 하는 게 아니라 너무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시는 거예요. 노래를 받는 그 순간 저도 엄청 긴장되기 시작하면서 ‘다큐의 의미가 지금 생기고 있구나.’라고 처음 느꼈어요.

 

‘모든 것이 꿈이었네’

 

 

Q 비스츠앤네이티브스는 평소에도 앨범에 별다른 소개 문구를 잘 넣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뽕>에는 “모든 것이 꿈이었네” 한 줄이 적혀 있고, 이 문구는 곧바로 1번 트랙 제목이자 가사로 이어져요. <뽕을 찾아서> 4화 당시 김수일씨를 만나러 가서 녹음했던 노래의 가사잖아요.

녹음 당시 “모든 것이 꿈이었네.”라는 가사를 처음 딱 듣는 순간 너무 놀랐어요. 이를테면 가수 이박사는 전성기가 분명 있잖아요. 전성기 이후에 힘든 일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고 다시 전성기가 왔다가 힘든 일을 또 겪고. 이러한 (부침 같은) 게 있는데 반대로 김수일씨는 전성기의 이박사와 함께 일본 무도관까지 같이 갔던 사람인데 막상 단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는 거죠. 제대로 된 조명 한 번 받은 적 없는 사람이 해외에 가서 몇만 명을 앞에 두고 혼자 키보드 해 오던 대로 연주하고, 여기에 맞춰서 이박사가 노래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이 분이 조금 더 대단하다고도 생각이 드는 거죠. 단지 리허설을 열심히 준비해서 짜인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이박사의 생각을 전부 읽고 있는 것처럼 이거 다음에는 이거, 지금 이 사람이 이걸 부르니까 나는 이걸 이렇게. 그런 식으로 연주를 하는 거죠. 당시 플로피 디스크를 꽂아 로딩하는 악기로, 그걸 갈아 끼우며 연주를 해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동시에 반주도 하면서 그렇게 티키타카 하듯 서로 어시스트하는 모습이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음악을 했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지만 결국 그냥 모든 게 다 꿈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저도 마음에 뭔가 쾅하고 와닿더라고요.

촬영을 마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각자 가만히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영상 감독님이 갑자기 “모든 것이 꿈이었대.” 그러는 거예요. 그때 다들 동시에 “그렇죠?” “들었죠?” “맞죠.” “맞죠.” 그러는 거예요. (말만 안 하고 있을 뿐) 전부 거기에 꽂혀 있었던 거예요. 그때 이게 이 앨범의 키워드처럼 탁 꽂혔어요. “모든 것이 꿈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그냥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설사 어떻게 딱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저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말로 뭐든지 마무리할 수도, 시작할 수도 있는 그런 말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트랙리스트를 짤 때도 제 의견이 그거였어요. '모든 것이 꿈이었네'가 무조건 첫 번째 아니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거였어요. 절대 트랙리스트 중간에 들어가면 안 되는 노래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첫 번째 트랙이 된 거죠.

(김수일씨가) 마지막에 노래를 부르시면서 쑥스럽게 “내가 가수가 아니니까.”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또 너무 뭉클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노래 부를 때 정말 가수처럼 진지하게 부르셨거든요. 그런데도 가수가 아니라고 이야기한 건 일종의 선언이기도 한 거죠. “내가 가수는 아니다.” 사실 저도 가수가 아니고 하니까 김수일 선생님한테 꽂혔던 것도 그런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박사 앨범 중에 <서울 깜빡이>(1996)라는 앨범을 제일 좋아하는데 이 앨범에 너무 멋있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예를 들면 노래로 ‘소쩍궁 소쩍궁’ 하는 소리를 내면 뒤에서 ‘뾱뾱뾱’ 하면서 마치 실제 소쩍새가 우는 것 같은 효과로 연주를 하세요. 제게는 그런 부분이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건 그 자체로 EDM이기도 하고, 힙합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특정한 사운드 하나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서 그 음악의 감성을 키우는 효과가 있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측면에서 김수일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 악기도 혹시 아직 있는지 여쭈었더니 마침 그 악기를 가지고 오셔서 40년 전 YMCA 디스크를 꺼내 그걸 로딩해서 연주하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봤을 때 뭔가 막연하게 음악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관점이 조금 바뀌었어요. 어린 시절에, 고등학교 때 우연히 들었던 그 뽕짝 음악을, 마침 그 사람이 실제 같은 악기로 그 소리를 내는 장면을 눈앞에서 확인하면서 당시 시간과 지금 이 시간이 악기를 통해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거죠. 그래서 저도 이 앨범을 통해 그 시간과 이 시간이 연결되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그때 생각했어요.

 

유튜브 <뽕을 찾아서> 4화

 

 

Q 이번 앨범 최초 작업 당시, 처음에는 뽕짝 앨범으로 기획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어요. 작업 전과 지금, 뽕짝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처음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은 그저 사운드에 있어서 어떤 실험적인 부분들이 있었을 뿐이에요. 예를 들면 사랑 이야기에서 갑자기 신스 사운드가 쾅 튀어나온다든지 하는 그런 아이디어. 맨 처음에는 완전히 그런 방향으로만 가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앨범 타이틀을 ‘뽕’으로 합시다.’라는 얘기가 나오고부터는 음악적 형식을 ‘뽕짝’이라는 형식 안에 어느 정도 가둬놓고, ‘여기까지만 뽕짝을 만들고, 그다음에 내 마음대로 가야지.’ 했어요. 뽕짝을 일종의 외부 소스처럼 사용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만 하다 보니까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하나 털듯이 만들었던 게 이박사님 목소리를 샘플을 썼던 ‘Spring’이라는 곡이었어요. 이 곡은 일종의 ‘이렇게는 안 할 거야.’ 같은 곡이었거든요. 적어도 이 앨범으로 ‘뽕'을 만들 거면 ‘이박사’는 일단 아웃. 왜냐하면 너무 많이 하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재밌게 도전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일단 나부터 뽕짝음악을 그냥 ‘뽕짝음악’, 즉 ‘안 듣고, 하지도 않을 거지만, 그냥 사운드 소스로 가져다 쓰는 것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고속도로 뽕짝’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외의 것들, 정말 예전 음악들, 특히 ‘칸초네’(canzone)든 뭐든 프랑스 음악이나 이탈리아 음악은 우리가 거창하게 애수가 있는 음악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들었을 때 우리의 뽕짝과 정서적으로는 차이가 없는 것 같은 거죠. 다만 그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누적된 게 있으니까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근사하게 편곡할 수가 있고, 연주될 수 있는 부분이 차이일 뿐 궁극적으로 이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서 사람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감성 자체에 있어서는 다를 게 없다고 느꼈어요. 그냥 키보드 한 대로 할 뿐이죠.

슬플 때 우울해하면서 감상에 젖어드는 그런 고상한 환경이 아니라, 좀 더 뭔가를 끄집어 내고 싶은, 뭔가 하나라도 더 꿈틀거리는 게 있는 그런 상황에서 김수일씨 같은 사람이 튀어나오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뽕짝이라는 게 이제는 뭐랄까요. 물론 맨 처음에 ‘뽕’이라는 타이틀을 덥석 하겠다고 한 것도 저는 제가 촌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최대한 깊숙히 가면, 나는 어차피 유치하고 촌스러운 인간이니까 상관없어. 그냥 그쪽으로 갈래.’라고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한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은 뽕짝 앨범이 하나의 컨셉츄얼한 앨범이 아니라, 250이라는 음악을 하는 사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정서를 보여주면서 시작하는 하나의 앨범, 저라는 사람의 개인 커리어의 인트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앨범 자체가 하나의 ‘모든 것이 꿈이었네’ 같은 앨범일 수도 있고요.

 

 

Q 타 뮤지션 곡 작업 외에 공식 솔로 작업으로 오래 전 <One Night Stand>라는 앨범을 낸 적이 있어요.

<One Night Stand>(2014)는 회사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혼자 활동할 때 만들었던 일종의 믹스테잎 정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인디 뮤지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냥 방구석 뮤지션의 믹스 테이프, 데모 테이프, 아니면 포트폴리오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앨범은 회사에 들어온 후 정식으로 내는 진짜 저의 정식 첫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발매한 음반의 경우 두 가지 마스터링 버전이 있어요. 다프트 펑크의 앨범을 마스터링한 프랑스 ‘CHAB’의 정식 마스터링 버전은 사운드가 선명하게 들리는 반면, 류이치 사카모토나 허비 행콕의 마스터링을 담당했던 ‘코테츠 토루’의 버전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질감이에요.

사실 코테츠 토루씨의 마스터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다 내가 만든 음악이지만 완전 남의 음악을 듣듯이 들을 수가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사운드가 극단적인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프랑스판은 제가 하고자 했던 혹은 가고자 했던 방향에서 모든 방향으로 한끗씩 더 간 듯한 느낌이었어요. 테두리를 5cm씩 더해서 쫙 늘리는 거죠. 덕분에 뭐든 훨씬더 와이드하고 모든 게 튀어나오게, 깨끗하게 들리게 한 느낌이었거든요. 코테츠 토루씨는 뭐랄까요. 마치 한 사람의 예술가 같았어요. 나의 음악은 재료이고, 나의 음악을 재료로 자기 예술을 해버렸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완전히 감상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듣게 되더라고요.

 

‘뱅버스’ 뮤직비디오

 

 

Q 처음에는 이박사의 목소리를 제쳐두고 앨범을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받아들인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앨범에 반영한 뽕짝의 측면이나 요소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뱅버스’ 같은 곡은 맨 처음에 bpm이 155였어요. 그러다가 이박사님이 “(곡의 템포를) 160bpm으로 확 당겨버리니까 사람들이 아주 뒤집어지더라.”라는 얘기를 하셨던 게 계속 기억이 나서, 마지막 마스터링을 맡기기 전에 정말 고민을 많이 하다가 160bpm으로 좀 더 빠르게 가자고 결심했죠. 분명 뽕짝이고 같은 달리는 노래인데 155와 160의 차이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어차피 애초에 빠른 영역이지만 155는 빠르면서도 좀 더 그루브가 느껴지는 속도감이라면, 160은 춤을 춰도 멋있게 춤을 출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계속 그 템포에 몰두하게 되는. ‘뽕짝에서 절제하는 건 좀 안 맞는 것 같다. 이거 160으로 당기자.’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에는 이 템포를 당긴 게 가장 큰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창’도 그렇고, ‘사랑이야기’도 그렇고, 이박사라는 분은 자기 목소리가 곧 장르인 몇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분이 가진 목소리의 재능만으로는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일단 이박사가 노래를 부르면 그게 누구 노래인지 무슨 노래인지 모두가 알게 되어버리죠. 갑자기 공감대가 확 생기면서 ‘이박사구나. 그럼 이거 그거겠네.’라고 동시에 설명이 다 되어 버려요. 그래서 ‘사랑이야기’라는 곡도 사운드만 놓고 봤을 때 사랑 이야기일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그냥 이박사님이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 때문에 그냥 사랑 이야기인 거거든요. 그런 존재감이 있죠.

나운도씨도 처음에는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렇게 됐죠. ‘이창’에서의 신스 사운드나 사운드 디자인 모두 나운도씨를 염두에 둔 거였어요. 다만 나운도씨는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니까 전자 오르간을 온몸으로 연주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마우스질만 하는 사람이니까요. 정박에 팍팍 꽂히되, 모듈레이션을 변형해서, 16분음 혹은 8분음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그 소리가 어느 속도로 울리느냐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 오르내리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디자인을 했죠. 이런 식으로 그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순수하게 사운드에 있어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Q 언급한 이탈리아 칸초네나 프랑스 음악은 유럽 사교문화의 음악이 미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트로트와 뽕짝처럼 변형되어 과거 그것을 즐긴 세대에게 일상의 것으로 체화된 측면이 있잖아요. 비슷한 맥락에서 <뽕을 찾아서> 3화 장면이 떠올라요. 해변에서 EDM 파티 같은 행사를 하는데 정말 아무런 격식 없이 사람들이 어울려요. 클럽에서 하는 EDM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일종의 K-EDM이라고 불리는 내부의 변형된 문화와 외부의 천대가 과거 뽕짝에 대한 시선과 일부 겹쳐 보이기도 해요.

하우스나 테크노를 다루는 클럽은 기본적으로 멋쟁이들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멋쟁이들이기도 하고, 자신들도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죠. 멋있게 옷을 입거나 혹은 너무 멋있으면 쿨하지 못하니 대충 입고 가서, 멋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멋있게 춤을 추는 거죠. 사실 딥하우스는 웬만해서는 사람이 멋있게 춤을 추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딥하우스에 춤추고 있으면 뭘 해도 있어 보여요. 말하자면 정리가 되어 있는 음악인 거죠. 그러니 정리가 되어 있는 장소에서 정리가 된 이들이 즐기는, 좀 나쁘게 얘기하면 물갈이가 돼있는 거라 생각해요.

말씀하신 ‘합천 바캉스 축제’ 같은 경우 영상을 보면 무대에는 비키니 입은 여성 댄서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고, 해변에는 엄마와 아빠가 애를 안고 춤을 추고 있고, 누군가는 이유없이 사방에 물을 뿌리고 있고, 누군가는 저분 라면 좀 주라고 상황에 관계없이 아무렇게나 얘기하고, 조금 더 큰 애들도 막춤을 추고. 이런 게 뒤섞여 있잖아요. 말하자면 엉망인 거죠. 따지고 보면 이곳에 같이 모여 있을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 뭉텅이로 모여 있는 그림. 그런 그림이 조금 더 한국적인 것 같아요. 한국이라는 도시가, 여기 이 서울 동네만 해도 그렇잖아요. 고층 빌딩 옆에 1층짜리 세탁소 건물이, 그 옆에 허름한 아파트가 맥락 없이 섞여 있어요. 해외 유명한 도시들을 보면 떠오르는 정리된 이미지와 맥락이 있잖아요. 에펠탑으로부터 방사형으로 고만고만한 건물이 쫙 깔려 있는 모습이나, 이탈리아 어느 해변에 흰 건문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처럼요. 그런데 서울은 그런 게 없거든요. 이렇게 뭉텅이로 모여 있는 그림이 조금 더 한국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도 그냥 ‘아니 왜 슬픈 코드에 이런 건 왜 들어가 있어?’ ‘그런데 베이스는 또 이거야?’ ‘이건 이거야?’ 아무렇게나 비벼놓은 비빔밥 같은데 한 숟가락 먹으면 맛은 또 납득이 가고. 그런 게 한국적인 무언가가 아닌가 싶었어요.

 

<뽕을 찾아서> 3화
싱글 ‘뱅버스’ 커버

 

 

Q 처음 앨범 구상 시 ‘고속도로 뽕짝’만 들었다고 했어요. 실제로 뽕짝이라는 게 길 위에서 많은 역사가 만들어지고,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뱅버스’가 그런 날것의 뽕짝 분위기를 가장 잘 살린 곡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작업 중 그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bpm 외에 또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상상을 하거든요. 이 음악의 이야기를요. 어릴 때 힙합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런 거였어요. 1990년대 힙합은 킥, 스네어, 베이스, 하이햇 위의 피아노 소스. 이런 게 전부 다른 곳에서 오는 음악이었어요. DJ들이 디깅을 해서 샘플링을 따로따로 하니까. 그래서 음악을 들었을 때 소리들이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느껴지는 이질감이랑 또 그것들이 하나로 묶여 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도 함께 있었어요. 게다가 영어를 하나도 못하니까 래퍼가 무슨 말 하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거기서 느껴지는 상상도 있었어요. ‘이런 사운드에 이런 목소리로 얘기하는 걸 보니 아마 이런 얘기겠지.’라고 상상하는 거죠.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노래를 들을 때도 당시에는 ‘End Of The Road’랑 ‘I'll Make Love To You’가 그렇게 다른 노래인지 몰랐거든요. 노래는 거의 똑같은데 가사는 다르잖아요.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들을 좋아했었어요. 저는 학교와 집이 멀어서 통학을 1시간 정도 했었데 제게 음악이라는 것은 학교를 가고 오는 길에 듣는 거였어요. 혼자서 외로운 시간에 듣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떠올리고 많은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첫 번째로 상상할 수 있는 소리를 원했어요.

‘뱅버스’의 경우 클럽과 고속버스는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그냥 클럽이니까요. 이동 클럽이잖아요. 그 클럽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어떤 사람은 너무 슬퍼서 춤을 못 추고, 계속 꿀꿀해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놀러 오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여자나 남자를 꼬시러 온 사람도 있고. 이런 엉망진창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가서 도착한 곳은 전곡 노래자랑 하는 곳이라 누군가 “딩동댕동” 하고 “전국~” 하면 모두가 “노래자랑~!”이라고 외치면서 갑자기 화합이 되는 순간을 생각했어요. 그런 식으로 뭔가 엉망진창이면서, 어영부영하는 그림을 조화롭게 할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칼 소리 같은 것도 넣고, 클락션 소리 같은 것도 넣고요.

 

‘이창’ 뮤직비디오

 

 

Q 선공개 싱글 ‘이창’ 전후에 있었던 구체적인 작업 상황이 궁금해요.

‘이창’ 이전에 2년 정도 만들었던 앨범은 당시의 분위기, 그러니까 클럽에 많이 들리는 EDM 풍의 음악이었어요. 앞에 음악적인 모티프가 있고, 이후에 브레이크다운이 있다가, 빌드업이 있고, 뒤이어 드랍이 나오는. 확실한 형식이 있는 음악에 가까웠는데 그렇게 작업하다가 ‘이창’을 만들 때는 ‘지금은 이런 것보다 뽕짝의 멜로디가 좀 더 중요한 음악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그 전까지는 사운드 소스를 따서 EDM처럼 만들고, 뽕짝 흉내만 내는 음악을 만들다가 이제는 ‘내가 연주자는 아니지만 멜로디를 짜서 멜로디를 집어넣자.’ 대신에 ‘모듈레이션이 왔다갔다 하면서 변형되는 소리로 인해 느껴지는 몽환적인 감정이 얼마나 잘 표현될 수 있는지 보자.’라고 정말 순수하게 실험하면서 만들게 됐죠. 이 곡을 회사에 보낼 때 ‘만일 이 노래가 까이거나 이게 아니다 싶으면 나는 뽕짝은 포기해야겠다. 지금까지 만든 건 사운드 클라우드에나 올리고, 디제잉 할 때나 좀 틀고, 다른 콘셉트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회사에서 ‘이거다. 이걸 중심으로 가자.’라고 해서 그 전에 있던 노래 거의 다 치우고 ‘이창’과 ‘주세요’ 두 곡만 남긴 채 앨범이 새로 짜이게 된 거죠.

 

 

Q ‘주세요’의 경우 아무래도 초반부에 있었던 두 곡 중 하나라서 그런지 진정한 하이브리드 트랙 같은 인상이 느껴져요. 다만 그 이상으로 제목의 여운이 독특한 느낌을 줘요.

사실 제목이 큰 의미는 없어요. 원래 앞부분에 오르간 파트만 있었어요. 이 파트만 만들고 2년 정도를 ‘완성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냥 버리고 다른 노래에 이 부분을 넣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희 집앞 버스 정류장에 버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표시해 주는 신호판 있잖아요. 그 신호판에 밤만 되면 ‘주세요’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아마도 “무엇이 어떠하니까 어떻게 해주세요.”라는 문구였을 텐데 에러가 나버린 거예요. 그런데 에러가 난 상태로 ‘주세요’라고 세 글자가 써 있는 걸 보고 있는 동안 그 말 자체에 뭔가 확 꽂히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이 곡을 ‘저런 느낌으로 가자’ 싶어서 뒷부분을 그렇게 만들고, 제목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주세요’

 

 

Q 제목 얘기를 하나만 더 묻고 싶어요. ‘주세요’처럼 특정 순간에 감각적으로 꽂히는 제목이나 스토리텔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같은 곡은 어떤가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 제목과 관련이 있나요?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하고, 말 자체가 멋있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클럽이라는 공간에서 상상되는 한 장면을 연결시켰어요. 그중에 사람들과 방방 뛰고, 화려하고 이런 분위기보다는 새벽 4시 반쯤 아무도 없는 클럽에 저 혼자 안 나가고 마지막 노래를 들으면서 끝까지 버티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처럼 썰렁하고 휑한 느낌 있잖아요. 그 순간 설령 사람이 많더라도,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함께 춤을 추는 건 아니잖아요. 이 앨범의 정서 자체가 혼자 춤추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휑하고 썰렁한 느낌,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섬뜩하면서도 썰렁하거든요. 그런 휑한 기분을 주고 싶었어요.

 

 

Q ‘바라보고’ 같은 경우 가야금 사운드를 어떻게 쓰게 됐나요?

나운도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 건반의 신스 사운드 이야기를 하셨어요. 한국의 어떤 분이 당시 뽕짝 음악계에서 많이 썼던 야마하 어떤 악기에 가야금 소리를 디자인해서 패치를 만들어서 배포를 한 분이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대구에 계시다는 분인 것 같아요. 그 양반이 큰일 하신 거라면서, 뽕짝 연주하는 사람들이 서로 앞다투어서 그 패치를 구해서 썼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야금 소리를 넣어 보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왜냐하면 현재 가야금 소리 다음에 필터가 엄청 걸리 뒤에서 쏘는 신스 사운드가 나오는데 그 앞에 어떤 악기를 채워야 될지 고민이 계속 있었거든요. 선생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로 가야금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선생님께도 “선생님, 가야금으로 중간에 연주를 부탁드립니다.” 말씀을 드렸고, 선생님께서 연주를 해주셔서 받게 되었어요.

 

싱글 ‘춤을 추어요’ 커버

 

 

Q 사운드 클라우드에 먼저 공개한 ‘춤을 추어요’ 같은 경우 기타리스트 이중산씨의 참여가 화제가 됐어요.

‘춤을 추어요’는 원래 신해철씨의 기일에 맞춰 발표하고 싶었어요. 거기 사용된 드럼의 경우 넥스트의 ‘인형의 기사’(1992) 파트를 잘라서 썼고, 나운도씨께서 노래를 부르셨는데, 노래를 2절까지 다 부르신 것도 아니어서 가사도 알게 모르게 '인형의 기사' 샘플을 살짝 넣었거든요. 예를 들면 “함께 춤을 추어요” 나오기 전에 ‘인형의 기사’의 “이제는~” 하는 부분을 살짝 집어넣어서 “이제는 함께 춤을 추어요”처럼 들리게 하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샘플 원곡의 가사랑 리메이크 곡의 가사를 연결해서 슬쩍 집어넣는 식으로 노래를 만들고, 신해철씨 기일에 사운드 클라우드에 공개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듣고 회사에서 “너무 좋다. 좀 더 해보자. 빌드업 해보자.”라고 하시더라고요.

기타 솔로의 경우 제가 그냥 미디 기타로 연주했어요. 오히려 허접한 미디 기타가 나오는 것 또한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여기까지 노래가 나왔으니 실제 기타로 바꾸자고 되었고요. 마지막에도 원래 후렴이 한 번 나오고 기타 솔로가 엄청 나올 것처럼 하다가 그냥 페이드아웃으로 끝내버리는 식을 계획했는데, 이러지 말고 좀 더 길게 끌자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죠. 그래서 다른 기타리스트분에게 부탁해서 녹음을 받되, 애매하게 끌지 말고 아예 3~4분씩 기타 솔로를 미친 듯이 길게 가버리자고 결정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기타리스트를 누구로 할까 하는데, 제가 본 유튜브 영상 중 <EBS 스페이스 공감> 한상원씨 편에 이중산 선생님이 나온 영상이 있었어요. (링크) 제가 당시 그 영상 보고 너무 놀랐었거든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연주다. 무슨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re)처럼 깔끔한 연주가 아니라 그냥 광인의 연주처럼 보였어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연주를 하시니까. 좋은 연주냐 나쁜 연주냐 이런 건 모르겠고 연주하는 저 사람이 ‘지금 기타와 완전히 한 몸이 되어서, 기타로서 뭔가를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찾아가서 부탁을 드렸죠. 녹음하실 때도 “선생님, 기타 솔로 한 3분 치셔야 하는데요.” 하니까 그냥 “알았다.”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Q 이중산씨처럼 ‘모든 것이 꿈이었네’와 ‘휘날레’ 속 오승원씨의 보컬 섭외 역시 개인적인 기억으로부터 끄집어내신 걸까요?

오승원씨는... 이 앨범의 화자라고 할까요? 화자 같은 걸 생각했을 때 작업 초기부터 그런 게 있었어요. 어렸을 때 학교 갔다가 집에 왔을 때 부모님이 일을 하시니까 집에 아무도 없고 4시에서 5시 반 사이 그 시간은 정말 혼자 있는 시간이었거든요. 그런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섭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TV를 트는데, 우리 어렸을 때 TV는 지금이랑 너무 달랐어요.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있고, TV도 있고, 뭣도 있고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도구 자체가 TV 하나뿐이니까 모든 게 현실 세계와 TV 세계 두 개로 나뉘었거든요. 그래서 TV를 틀고 있는데, 불 꺼진 집에서 혼자 TV를 보는 쓸쓸한 마음 같은 게 들더라고요. 당시에는 초등학생이라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TV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이별을 배우고, 세상에 대한 사랑과 환상 같은 걸 안고 ‘세상은 저렇구나.’라는 걸 느꼈던 어렸을 때의 느낌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음악을 만드는 단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생각했을 때) 제 어린 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슬픔과 어떤 감정을 느꼈던 순간은 <아기공룡 둘리>를 봤을 때더라고요. 둘리의 주제가를 들었을 때. 만화책 둘리는 그렇게 우울하지 않아요. 김수정씨의 원작 만화는 명랑만화고, 때로는 야한 얘기도 있고, 그냥 웃긴 만화인데, 애니메이션으로는 왠지 너무나도 슬픈 거죠. 화면이 너무 예쁘기도 했지만, 오승원씨의 목소리 자체가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세상 목소리가 아닌 것 처럼 비현실적이고, 몽롱하게 저 멀리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목소리에요. 가사의 내용부터 “너희 눈 앞에 있는 이 귀여운 아이는 엄마를 잃고 헤매는 아이야.”라고 시작을 해버리니 딱히 에피소드가 슬프지 않아도 그냥 슬픈 정서가 묻어나는 거죠. 그래서 그 슬픔을 곧장 느끼게 했던 소리, 오승원씨의 목소리를 찾았어요.

오승원씨 아드님이 음악을 하거든요. 오승원씨가 아드님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른 영상을 봤는데 “요리 보고~” 한마디만 해도 사람들이 “우와” 이러는 거예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소리만 들어도 뭔가가 연결이 되는 거겠죠. 마치 제가 김수일 선생님 악기가 '밤밤밤' 하는 순간 쾅 하는 기분을 느끼듯이요. ‘그 소리다. 그때의 그 소리가 지금 내가 연결한 이어폰의 허접한 스피커를 통해 나에게 들리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 음악이 실재하는 느낌. 아마도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물론 둘리 주제가 부른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았지만 아직도 목소리가 똑같을 줄은 몰랐을 테죠. 그리고 그걸 눈앞에서 목격하는 순간 모두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우와~ 신난다~”가 아니라 그냥 “우와...”인 거죠. 너무 똑같고 그대로니까. 무언가 그대로일 때 오히려 다른 무언가 확 밀려오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사이에 어른이 되어버렸고, 확 커버렸으니까요. 그래서 댓글들을 보니까 다들 슬퍼하고 있었어요. 저도 슬프더라고요. ‘어쩜 목소리가 이렇게 그대로야?’ ‘노래 너무 잘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덧 이렇게 커버렸구나.’ 다 그런 이야기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찾아뵈었을 때가 이미 2018년쯤이었으니까 혹시 목소리가 어떨지 몰라서 ‘이 분이 여전히 그런 감상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다면, 만약 아직도 그 동화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계신다면 난 이걸 해야겠다.’ ‘어떻게든 써야겠다.’ 생각했어요.

 

‘휘날레’

 

 

Q <뽕을 찾아서> 영상을 보면 250님이 멘트를 하며 시작하잖아요. “안녕하세요. 댄스음악을 하는 250입니다.”라고요. 슬픔의 정서가 있는 댄스 음악이라는 게 이 앨범과 뽕짝 음악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아까 전 함께 얘기한 만국 공용의 글로벌 포인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는 다프트 펑크(Daft Punk) 노래 중에서 뭘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Something About Us’(2001)라고 답하거든요. 고민이 없어요. 왜냐하면 슬픔의 함량이 가장 높은 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진짜 슬퍼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사랑 고백일 수도 있죠. 그런데 약간 튜닝이 걸려있는 남자 목소리의 상태로 봤을 때, 사랑에 성공한 사람 같지는 않단 말이에요. 뭔가 느낌이? (웃음) 뭔가 지질하게 ‘나 너밖에 없어.’ 이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앨범 전체에서도 정말 좋은 감성과 사운드라고 생각을 해요.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욕심이 많은 노래죠. 기타도 들어가고, 신스 솔로도 들어가고요. 이러한 슬픔의 함량이, 제 생각에는 한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거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린 데이(Green Day)의 노래로 치면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2004)를 정말 좋아해요. 그린 데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노래는 정말 좋더라고요. 평소 펑크를 하던 팀이 그 바이브를 유지하면서도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얘기하니까 너무 확 와닿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그런 노래를 부를 때 더 크게 느껴지는 슬픔이죠. 항상 슬픈 노래만 부르는 사람이 부르는 슬픈 노래는 저는 잘 못 듣겠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라디오헤드(Radiohead) 별로 안 좋아해요. (웃음) 너무 우울해서 톰 요크(Thom Yorke)를 잘 못 듣겠더라고요. 이런 함량의 조절이나 배합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알기 아는 것 같아요. 아포가토 같은 것 있잖아요. 아이스크림에 카라멜마끼아또나 라떼를 뿌리면 별 맛 안 나겠죠. 그런데 에스프레소를 뿌리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처럼 만국 공용의 함량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하우스 같은 음악이 제게 안 끌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Q 첫 곡이나 마지막 곡의 경우만 빼고, 트랙 배치를 회사에서 같이 조율해 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초반 부분의 연주곡 구간이 좀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좀 있었거든요. 그런데 특별히 그런 얘기가 없는 걸로 봐서는 저는 그것 하나가 불안했기 때문에 그 외에는 다 만족하고 있어요.

 

Q 앞으로 계속 이어갈 공연에서의 셋 리스트는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요?

앨범 순서 대로는 안 하려고 하고 있어요. 사실 음악을 트는 것에 있어서 한 시간짜리 셋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짜놓고 트는 건 일단 기억력도 딸리지만 힘들기도 하고요. 지금은 주로 이런 식이에요. ‘이 노래와 저 노래를 연결하니까 재밌네?’ ‘이걸 듣다가 이게 나왔을 때, 이런 부분 때문에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겠다.’ 하우스 셋이나 테크노 셋의 경우, 그쪽에서의 좋은 디제잉이라는 건 노래가 정말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이질감 없이 쫙 연결되는 그런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전 그런 걸 잘 못 듣겠거든요. 한 시간 동안 비슷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요. 오히려 저는 디제잉으로 치면 포 컬러 잭(Four Color Zack) 같은 사람들, 턴테이블로 그냥 재미있게 “1, 2, 3, 4, 5, 6, 7” 한 다음에 “10~” 약간 이런 식으로 연결하고 하는 걸 재미있어 하는 쪽이라서 이런 루틴 같은 것만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Q 기존에 전자음악과 힙합을 작곡, 프로듀싱을 해오신 것, 아이돌과 협업하기도 했던 것을 비롯해 이번에는 뽕짝을 콘셉트로 앨범을 만들었어요. 앞으로도 협업이나 자신의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 계속 경계를 넓혀갈 기대를 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음악의 장르라는 건 누군가의 편의에 의해서 구분이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음악을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모두가 ‘다 음악일 뿐이야.’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게 일반적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카테고리가 있어야 자신이 선호하는 음악을 선정하거나 고를 수가 있는 거니까요. 지금은 정말로 ‘음악 감상’이 취미인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음악을 틀어놓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사람들이 다 감상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멜론 TOP100만 틀 수는 없잖아요. 멜론 TOP100만 틀면 장르도 사운드도 왔다갔다 하니까. 그래서 때로는, 어떤 일관된 무언가를 듣고 싶을 때에는, 어느 정도 구분이 필요하죠. 그런데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 저도 사실 가끔은 그런 게 있어요. 이를테면 음악을 만들다가 ‘내 앨범에 쓰면 좋을 것 같은 소스가 나왔네. 그러니 이건 지금 쓰지 말자.’라는 생각을 원래는 했어요. 그냥 저장만 해놓고 ‘나중에 생각하자.’ ‘나중에 하자.’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번 앨범을 계기로 저도 이제 ‘앨범이 있는 사람’이 됐으니까, 제가 대충 어떤 식의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릴 수 있게 된 하나의 계기가 생겼잖아요.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막 섞어도, 듣는 분들이 ‘쟤는 원래 저런 놈이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좀 더 속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고요.

 

‘로얄 블루’ 뮤직비디오

 

 

Q 앞으로 자유로운 작업을 많이 하실 수 있겠지만, 다음에도 이번처럼 뽕짝이라든지 뽕의 색깔이 좀 짙게 들어간 페이스의 음악이 한 번 더 나올 수 있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먼 훗날이 될까요? 아니면 가까운 미래가 될 수도 있을까요?

그것조차 지금은 열어놓고 있어요. 다음 앨범에 대한 구상을 할 때 했던 것을 똑같이 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이 무슨 안티 체제가 되듯이 정반대로만 가는 것은 더 허접한 것 같아요. 마치 이런 앨범을 낸 적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구는 것도 이상하고요. 이 앨범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나 할 줄 알게 된 테크닉적인 부분들도 있고, 그런 부분들은 내 재산이기 때문에 그건 그냥 가져가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해서 이런 것들에 너무 꽂혀서 '재탕해야 돼.' 이러면 더 망할 건 확실히 뻔한거고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해왔던 대로, 어차피 제가 믿는 구석은... 저는 아무도 안 들어도 음악을 만들 거거든요. 지난 10년 동안 아무도 듣지 않을 때도 혼자서 깡소주를 마시면서라도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에 '일단은 내 마음대로 가자'가 저의 핵심이에요.

 

 

Q 그런데도 ‘250’이라는 아티스트가 댄스 음악 또는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로서 ‘그래도 이런 것들은 원칙적으로 지켜졌으면 좋겠다’ 또는 ‘이런 것들이 내 정체성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요?

아, 사운드가 좋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어떤 뮤지션을 좋아하든 그랬어요. 힙합 프로듀서 중에는 팀벌랜드(Timbaland)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의 사운드가 항상 좋았거든요. 항상 독특하게... 실제 사람 목소리를 섞어가며 쓰는 방식이 좋았어요. 사운드가 좋으면 그 사람의 음악은 들을 가치가 생기는 것만이 아니라 가격도 더 비싸진다고 할까요? 들어볼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거죠. 왜냐하면 음악이 맞든 안 맞든 내 귀가 즐겁기 때문에. 저한테는 이 <뽕>이라는 앨범이 사운드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앨범이에요. 심지어 마스터링도 두 번이나 받았잖아요. 믹스를 한 번에 끝낸 노래는 한 곡도 없어요. 최소 다섯 번 이상은 새로 다 엎어가면서 만들었거든요. 처음 얘기했듯 피드백이 마음에 들었던 건 '이 앨범, 사운드는 좋네'였기 때문에, 아이돌 곡이나 다른 작업을 했을 때 '여기에서는 사운드 별로인데.'라는 말을 듣는 건 싫을 것 같아요.

 

 

Q <뽕>으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처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에서 음악을 틀든 연주를 하든 하고 싶어요. 내가 음악을 통해 소리를 내고 있고,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볼 때 어떤 기분일지 느껴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는 혼자 열심히 춤을 추면서 만들었으니까요. (코로나19 때문에) 아마 당장은 힘들고, 좀 시간이 지나야 사람들끼리 모여서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분들도 그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서 자기만의 춤을 췄을 거란 말이죠. 이게 ‘강남 스타일’도 아니고 정해진 춤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각자 이 앨범을 들으면서 각자 추던 춤들을, 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 좋겠다.’ 그 순간을 계속 상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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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병욱
사진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장소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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