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 아미시, 이미지 출처 – 링크

1693년, 유럽에서 야코프 아만(Jakob Ammann)이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재침례파 계열 신도들을 이끌고 넘어왔다. 이후 신도들은 스스로를 ‘아미시’(Amish)라 부르며 미국에 정착한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한 삶의 방식을 지키며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하며 살아가며 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 주를 기반으로 뻗어 나간다.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분파가 나오기도 하며 미국을 넘어 캐나다, 남미 등지에도 정착하기에 이른다. 느린 삶을 간직한 체 현대로 넘어온 아미시 공동체는 높은 인구 증가율을 보이며 자신들의 터전을 한껏 확장하고 있다.

 

순례자의 삶

아미시 학교, 이미지 출처 – 링크

종교적 이유로 시작됐고 유지되는 공동체인 만큼 교회와 성경 등 기독교적인 문화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다만 현재의 기독교와 꽤 다른 자신들만의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데, 이 종교적 가르침을 가장 잘 대표하는 개념으로는 ‘Hochmut’와 ‘Gelassenheit’가 있다. Hochmut는 아미시로 살면서 거부하고 피해야만 하는 ‘오만’ 혹은 ‘자만심이다. Galassenheit는 아미시로서 성취하고자 하는 ‘평온’을 뜻한다. 이 두 개념들을 통해 아미시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의 뜻을 따른다는 목표를 가지며 개인주의와 반대되는 공동체 중심의 생활을 실천하라 배운다. 이러한 종교적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한 그들의 삶은 단순한 생활 방식과 현대 기술에 대한 거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개인으로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대가족을 형성해 가족들과 나누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고 육체노동에 높은 가치를 몸을 편하게 하는 현대의 기술들, 특히 기계 사용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다. 특히 과거에는 기계 사용에 대해 철저히 거부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현대 기술의 사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들도 생겨났다. 다만 완전히 현대 문명을 받아들인다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에 접목시켜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사용하는 마차에 방향지시등을 사용한다거나 임산부들에게 병원에서 제왕절개를 받는 것을 허락하는 식이다. 다만 이는 지역과 공동체 별로 다르며 아직도 완전히 현대 문명을 거부한 체 사는 아미시들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아미시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수확물의 일부를 외부에 판매하기도 하는데 품질이 좋은 유기농 작물로 명성이 자자하다.

 

미국 사회가 보는 아미시

아미시를 놀리는 심슨, 이미지 출처 – ‘The Simpsons’

미국이 기독교 국가인 만큼 아미시를 바라보는 미국 미디어와 대중의 시선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조금 이상한 백인 농부들 정도의 이미지로 대중들이 생각하며 사실 거주 지역 근처에 사는 게 아니면 마주칠 일도 없다. 미디어에서도 아미시를 조금 희화된 모습으로 코믹스럽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전기를 쓰지 않아 기계를 보고 놀라거나 알고 보면 속세에 찌들어 있거나 하는 식이다. 물론 진지하게 아미시 공동체를 다룬 미디어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TBS에서 방영하는 <Breaking Amish>와 <Return to Amish>는 아미시 청년들에 관한 리얼리티 티비 쇼로 전자는 아미시 공동체를 떠나 세상을 경험하는 아미시 청년들을, 후자는 세상을 경험한 후 다시 아미시 공동체로 돌아온 사람들의 적응을 담고 있다. 각본 논란 등 뒷말이 많은 티비 쇼이지만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아미시 공동체에서도 외부와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일부 공동체들은 조합을 만들어 아미시가 아닌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나무 오두막 대여, 목장 체험과 같은 친환경적인 관광 상품을 주로 판매하며 에어비앤비 같은 자유여행 플랫폼의 발전과 함께 아미시 공동체의 관광 사업도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일부 공동체는 필수적으로 청년들이 공동체를 떠나 일정 기간 현대 문명을 체험하도록 하는 등 아미시 공동체는 외부 세계에 조금씩 스스로를 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미시 공동체의 명암

버려진 아미시 마차, 이미지 출처 – ‘Ashley Gilbertson for The New York Times’, 링크

아미시 공동체를 언뜻 보면 마치 지상 낙원처럼 보일 수 있다. 도시의 바쁜 일상과 어딜 가도 넘쳐나는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다면 소박하고 느린 공동체를 중시하는 아미시의 삶이 더욱 가치 있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어느 곳이든 명암은 존재한다. 외부와의 접점이 적어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아미시 공동체에서 도망친 사람들의 폭로로 내부의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근친상간, 강간 등의 성범죄가 심각하다. 종교적인 생활을 중시하는 공동체이기에 다소 놀라울 수도 있지만 이들이 17세기 유럽의 문화를 따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또 폐쇄적인 공동체인 만큼 웬만한 범죄 행위나 사건이 발생해도 내부에서 조용히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경찰이 개입되는 경우도 적고 정확한 실상 파악도 힘들다. 수사가 진행되고 법원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아미시라는 특수성으로 약한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담과 이브가 살고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이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는 법이다.

 

Writer

낯선 음악들과 한정판 굿즈 모으는 걸 좋아합니다. 물론 글 쓰는 것도 정말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