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이 대세였던 영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록 음악의 하위 장르가 등장했다. 이들은 클래식 음악의 심포니와 현대적인 전자 악기를 동시에 수용하여 표현 양식이 풍부하고 복잡했고, 가사는 시적이고 심오했다. 한 곡의 길이는 5분을 넘어 20분에 이를 정도로 길었고, 앨범에는 독특한 주제 의식이 담겨 표지 또한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 무대보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콘셉트 앨범 형식으로 출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지낸 이 음악을 아트 록(Art Rock)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 짧게는 프로그 록(Prog Rock)이라 불렀다.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와 장르 역사를 대표하는 곡 넷을 꼽아 보았다.

 

킹 크림슨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1969)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로버트 플립(Robert Fripp)을 중심으로 1968년에 결성된 밴드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데뷔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의 타이틀곡이다. 이듬해 탈퇴하여 하드록 밴드 포리너(Foreigner)를 결성한 원년 멤버 ‘이언 맥도널드’가 작곡했는데, 네 개 파트로 나눠지는 10분 길이의 곡이다. 싱글로도 출반되어 빌보드 80위에 올랐고, 앨범으로는 영국에서 5위, 미국에서 28위에 올랐다. 가사를 쓴 초기 멤버 ‘피터 신필드’의 친구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배리 고드버(Barry Godber)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피해망상을 묘사하여 그렸다는 앨범 커버 역시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는 앨범이 나온 이듬 해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그의 유일한 회화 작품으로 남았다. 이 곡을 작곡한 이언 맥도널드는 올해 2월 암으로 75년의 생을 마감했다.

 

예스 ‘Roundabout’(1971)

1968년에 결성된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Yes)의 네 번째 정규 앨범 <Fragile>(1971)에 수록된 곡으로, 영국 북부에 순회 공연을 다니며 수많은 회전교차로(Roundabout)를 지나치면서 영감을 받고 존 앤더슨(보컬)과 스티브 호우(기타)가 함께 작곡했다. 새롭게 밴드에 합류한 릭 웨이크맨(Rick Wakeman)의 화려한 키보드 솔로를 들을 수 있다. 오리지널 곡은 8분 30초의 긴 곡이나 미국에서는 짧은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13위에 올랐고, 앨범은 판매량 200만 장을 넘긴 더블 플래티넘 음반이 되었다. 영화 <스쿨 오브 록>(2003)에서 잭 블랙이 학생들에게 추천한 곡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제까지 3,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예스는 얼마 전 스물두 번째 앨범 <The Quest>(2021)을 내고 여전히 활동 중이다.

 

에머슨, 레이크 & 파머 ‘C’est la Vie’(1977)

키보드 연주자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과 킹 크림슨의 베이시스트 그렉 레이크 그리고 드러머 칼 파머가 1970년 런던에서 결성하여, 이제까지 약 4,8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가 되었다. 1978년 이후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한 트리오는 밴드 결성 40주년을 기념하여 2010년에 다시 모여 공연을 하기도 했으나, 2016년에 키스 에머슨은 스스로, 그렉 레이크는 병으로 생을 마감하여 이제 칼 파머 혼자 남았다. 전성기를 지나 발매한 여섯 번째 앨범 <Works Volume 1>(1977)에 수록된 발라드 ‘C’est la Vie’는 그렉 레이크가 프랑스를 회고하며 만든 곡으로, 원래 킹 크림슨에 있을 때 발표하려 했으나 로버트 플립이 거부한 바 있다.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91위에 그쳤지만, 서정적인 멜로디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곡이다.

 

핑크 플로이드 ‘Shine on your Crazy Diamond’(1975)

1965년 시드 배럿을 중심으로 런던에서 결성된 사이키델릭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이제까지 2억 5,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여 비틀스, 레드 제플린에 이어 세 번째에 위치한 슈퍼 밴드다. 마약과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시드 배럿을 대신하여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가 새로 영입되고, 시간이 지나며 실험성이 강한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음악적 방향을 전환하였다. 아홉 번째 정규 앨범 <Wish You Were Here>(1975)에 수록한 ‘Shine on Your Crazy Diamond’는 시드 배럿의 천재성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13분 32초에 이르는 긴 곡이다. 후일 이 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시드 배럿은 “Too old!”라고 저평가했다는 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