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4년, 3월 15일은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황제가 되지 못하고 자신의 측근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휘두른 칼에 쓰러진 날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판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격돌이 불가피하다. 이번 대선 역시 서로를 향한 공세가 과열 양상을 보인다. 검증이라는 명목으로 후보자와 그의 가족까지 낱낱이 까발리는 보도가 난무한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해 끊임없는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고, 인기에 병합한 포퓰리즘 시책이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다. 진영논리에 따라 정파를 넘나드는 철새들이 출몰하는 현상도 이 시기에 찾아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정치 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이런 변화무쌍한 정치권의 생리는 영화가 다뤄온 주된 소재이기도 하다.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가 상대 후보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칼날 같은 수사로 민심을 선동하는 양상은 영화가 다루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겉으로는 매끈한 미소와 달콤한 언변으로 대중을 사로잡지만, 뒤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권모술수를 쓰는 정치인에 관한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프로스트 vs 닉슨>(2008)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잘생긴 얼굴과 유려한 언변으로 대표된다. 이런 이미지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번듯한 대통령 캐릭터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그에 반해 미국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작품도 종종 나왔는데, 가령 올리버 스톤의 <닉슨>이 그런 경우였다.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던 ‘닉슨’ 역을 맡아 무너져 내리는 정부와 그의 인생을 촘촘하게 써 내려갔다. 이처럼 리처드 닉슨은 미국 현대 정치에서 보기 드문 악당 캐릭터로 여겨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에 어쩔 수 없이 하야한 생활인 닉슨의 마지막 모습을 좇는다는 점에서 그간 할리우드에서 보아온 미국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권력의 정상을 맛봤던 인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닉슨이 사임한 지 3년 후인 1977년 풋내기 영국 언론인 데이빗 프로스트는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게 될 닉슨과의 인터뷰를 기획한다. 프로스트는 한때 뉴욕에서 정통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를 꿈꿨지만, 점점 더 정통 앵커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짙은 쌍꺼풀에 화려한 의상을 즐기는 그를 불러주는 방송국은 없었다. 프로스트는 지역 케이블 방송에 간간이 출연하며 탈출 예술가를 묶어 강물에 빠뜨리는 과정을 중계하고, 노란색 타이를 매고 눈썹을 찡긋거리며 농담을 던지는 자신의 모습에 염증이 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자신의 퇴임 방송으로 4억 명의 군중을 TV 앞에 모이게 한 대통령 닉슨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닉슨은 불명예한 사건으로 메인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는 백악관 인근에서 닉슨을 캘리포니아로 데려가기 위해 착륙한 공군 1호기를 비췄고, 닉슨은 계단을 오르며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승리의 V자 표시를 보냈다. 그 순간 프로스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사람과 방송을 하면 나도 다시 뉴욕으로 갈 수 있겠구나.

당시 닉슨은 지지율이 바닥을 쳤지만, 충분히 재기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상당한 외교적인 성취를 이뤄냈고, 미국 경제 전반도 안정 궤도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청문회에서 백악관 지하실에 불법 도청한 테이프가 보관되어 있음이 밝혀졌음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의회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탄핵 소추를 가결했지만, 부통령 포드가 소송을 중지시키면서 구사일생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고, 닉슨은 변호사 비용을 대느라 분주했다. 닉슨은 당장 시급한 돈줄을 뚫기 위해 지역 치과의사 모임에 가서 굴욕적인 대우를 감내하며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정맥 수술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만질만질했던 얼굴도 홀아비처럼 폭삭 늙어버렸고, 자신을 먹잇감으로 삼던 여론도 이제 재탕 삼탕에 지쳤는지 닉슨을 다루는 기사를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풋내기 언론인 프로스트가 닉슨에게 거액의 인터뷰 제안을 해온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사자에게 기껏해야 동물원에서 바나나나 까먹던 원숭이가 결투를 신청한 꼴이었다. 닉슨은 만만해 보이는 연예인 프로스트를 제물 삼아 정계 복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렇게 1977년 5월, 4일간의 TV 대담이 시작됐다. 이 흥미로운 대결의 승자는 역사에 기록되었듯이 프로스트다. 닉슨은 두 번 다시 정계로 돌아올 수 없었다. “불법이라도 대통령이 하면 그건 불법이 아니다.”라는 되돌릴 수 없는 실언은 위키피디아에 새겨졌다. 무엇보다 프로스트와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패배자의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에 먹칠했다. 클로즈업과 정적, 자신의 끝을 직감한 인간의 표정을 집요하게 비추는 화면은 명백한 패배의 여파였다.

영화를 보면 마치 데자뷔처럼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1960년 닉슨이 처음으로 대통령에 출마했을 당시 상대는 애송이 존 F. 케네디였다. 닉슨에게 케네디는 햇병아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TV 토론회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뒤엎어졌다. 짙은 금발에 귀족적인 외모를 지닌 케네디는 온화한 화법으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날 선 표정을 드러낸 닉슨을 제압했다. 언성 한 번 높이지 않고 수줍은 미소로 거둔 승리였다. 대중은 케네디에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광채를 봤고, 닉슨은 다음 대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스트는 닉슨에게 두 번째 패배를 안겨준 제2의 케네디였던 셈이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닉슨이 케네디를 회상하는 장면을 공들여 묘사한다. 수사에 능한 배테랑 정치인은 왜 풋내기를 감당할 수 없었는가. 프로스트가 닉슨에게 안겨준 패배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흔한 명제와 함께, 예측 불가능한 정치의 오묘함을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닉슨은 프로스트와의 대담이 끝난 뒤에 지미 카터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수로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한다. 자서전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정치적 복권은 요원했다. 닉슨은 죽을 때까지 재야에서 정치이론서를 8권이나 더 책을 집필했지만 미미한 흔적을 남겼을 뿐이었다. 1984년 타임지는 그의 작가로서의 활동에 관해 이런 논평을 남겼다. "닉슨은 여전히 아이디어와 전략, 그리고 야심 찬 목표들로 넘쳐나고, 적이건 친구건 가리지 않고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1994년 숨을 거둘 때까지 이 미국 37대 대통령은 정력적으로 자신을 피력했다. 비록 정계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바이스>(2018)

영화의 시작은 우리가 다 아는 9월 11일이다. 정부 관료들은 긴박한 상황을 보고하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남자는 '조지 부시'가 아니라 이인자 '딕 체니'다. 영화 <바이스>가 이 시점을 영화의 시작으로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 대신 특별 재량권으로 군 통수권자 노릇을 했던 딕 체니의 권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바이스>는 '딕 체니'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대학을 중퇴하고 설비공으로 일하다가 기업 총수가 되었고, 정치인으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여 정부의 이인자 노릇을 했던 딕 체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어난 전략을 구사했던 인물로 통한다. 특히, 그가 멘토로 모셨던 도널드 럼즈펠드와의 관계 그리고 정치 인생에 변곡점이었던 조지 부시와의 만남은 인류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거대한 몸을 뒤뚱거리면서도 약삭빠른 판단으로 상대를 회유해내는 딕 체니를 모사해낸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가 영화의 압권이다.

애덤 매케이는 미스터리한 인물 딕 체니를 그려내기 위해 위트 넘치는 연출을 선보인다. 퇴근하고 집에서 쉬다가 자기 전에 욕실에서 이를 닦다가 거울을 보던 ‘딕 체니’는 버석거리는 이물감을 느낀다.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지냈으나 오랫동안 재야에 있었던 체니는 ‘조지 부시’의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레즈비언인 딸이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대선 출마를 고사했던 체니에겐 마뜩잖은 제의였다. 편안하게 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골프나 치며 살 수 있는데, 굳이 또 그 뻘밭에 들어갈 리 없었다. 게다가 당선도 불분명한 텍사스 촌놈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라니. 하지만 조지 부시를 만나고 돌아온 후로 체니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선 체니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얼굴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아인슈타인은 "이성적 사고는 충실한 종(從)이지만, 본능적인 마음은 신성한 천부(天賦)"라고 했다. 체니는 이를 고루고루 닦으면서 자신의 삶이 중대 기로에 서 있음을 직감한다. 혀의 잔여물을 꼼꼼히 쓸어내고 가글을 하면서 예감은 더 확고해진다. 영화는 무심하게 거울 앞에 선 체니의 표정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기류가 묘하게 뒤틀렸던 지점이 바로 체니의 욕실임을 상기한다. 체니가 정치 생활 말년에 처한 상황을 되새겨 볼 때 이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무척 섬뜩하다.

 

<킹메이커>(2022)

뜻은 컸으나 당내에 기반이 없어서 번번이 낙선 중이던 ‘김운범’에게 ‘서창대’라는 무명의 전략가가 찾아온다. 때는 1961년,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두 사람의 만남은 어색하고 낯설었다.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고 입바른 말을 하는 김운범은 고약한 수를 써서라도 세상을 바꿔보자는 서창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그리스 살던 아리스토텔레스란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소이다. 정의가 바로 사회의 질서다” 허름하고 어두운 옷에 뿔테 안경을 낀 서창대는 이에 응수하듯 대꾸한다. “플라톤은 ‘정당한 목적에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했었죠.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입니다” 이처럼 <킹메이커>는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은 같지만, 방법론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은 평생 양지에서 활약할 김운범과 음지에서 나올 수 없는 서창대의 운명을 단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관객에게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올바르다고 믿는 목적을 위해선 올바르지 않은 수단도 정당한가? 정당할 수 있다면 그 선은 어디까지인가?

1960~70년대 야당 국회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전략가였던 엄창록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작한 이야기인 <킹메이커>는 요제프 괴벨스, 마오쩌둥의 심리 전술에 버금가는 전술이 펼쳐졌던 71년 대한민국 7대 대선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물론 영화적 재미와 상상력에 기초해서 창작된 픽션이지만,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재창작해 그간 지반이 약했던 한국 정치 영화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냈다.

영화의 주인공 서창대는 학벌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데다 외모까지 볼품없었지만, 선거 전략의 귀재였다. 옳고 곧았으나 선거에서는 번번이 낙선하던 무명의 김운범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서창대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조작, 협잡, 이간질에 폭력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창대는 상대의 악행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김운범의 눈 밖에 난다. 특히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온 당내 라이벌 김영호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르면서 두 사람 사이에 서서히 균열이 나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김영호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김운범은 치열한 선거전 끝에 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지만, 이 과정에서 서창대가 벌인 음모와 배신을 묵인하면서 찜찜한 승리를 거둔다.

김운범은 서창대를 끝까지 자신의 오른팔로 키워보려고 했지만, 음지에서 속임수와 조작으로 정치를 배워왔던 서창대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도외시하자 울며 겨자 먹기로 놓아버린다. 두 사람이 독대하는 장면에서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에 불과하더라도 쇼가 필요하다는 서창대에게 김운범은 이런 말을 한다. “‘어떻게’ 이기는지가 아니고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법이요.” 김운범의 한결같은 고집에 답답했던 서창대는 그간 한 번도 내비친 적 없었던 섭섭함을 토로한다. “선생님을 그 자리에 올린 게 바로 접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갈라지고 돌연 여당의 전략가로 영입된 서창대는 김운범의 맞은편에 서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선거 전략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때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선거전략을 도입하여 선거판을 호남과 영남의 대결로 재편한다. <킹메이커>는 미시적으로 보면 두 인간의 신념이 마찰하면서 벌어진 비극처럼 보이지만, 그 여파는 여전히 현재 우리가 치르는 20대 대선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1960년대를 다루고 있음에서 세련되고 스피디하다. 컷 수를 최소화하여 몰입도를 놓치지 않고, 8mm 필름으로 촬영한 장면들은 향수를 자아내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본격적으로 양장을 입기 시작했던 시기라는 것을 십분 이용한 의상 선택이 돋보인다. 기럭지가 남다른 배우들의 슈트 핏과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옥스퍼드 구두를 신고 목포 거리를 분주히 걸어 다니는 배우들은 마치 방금 웨스트민스터 궁에서 나온 차림으로 해장국을 떠먹는다.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보내지 않을 편지>가 있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