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 중 하나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페데리코 펠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루키노 비스콘티, 세르지오 레오네 등 이탈리아 감독들을 제외하고 영화사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이탈리아 영화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고모라>(2008)의 마테오 가로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루카 구아다니노, <행복한 라짜로>(2018)의 알리체 로르와커, <마틴 에덴>(2019)의 피에트로 마르첼로 등 여전히 많은 이탈리아 감독들이 활동 중이다. 2022년의 관객들에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을 묻는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파올로 소렌티노라고 답할 거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최신작 <신의 손>(2021) 뿐만 아니라 <일 디보>(2008), <그레이트 뷰티>(2013), <유스>(2015) 등 그의 작품은 발표 때마다 일관된 호평을 받기보다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작품은 명확해지는 걸 오히려 경계하는 듯 영화 전반에 파편적인 이미지가 산재한다. 제목에 아름다움과 젊음을 내걸고 그와 전혀 다른 역설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과잉된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확실한 건 극단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이미지 덕분에 그의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인상은 ‘아름다움’이라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려내는 인생은 대부분 공허하고 권태롭다. 화려한 포장 뒤에 보여진 공허함은 더 큰 감흥을 일으킨다. 과잉과 역설로 빚어낸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는, 2010년 이후 발표된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를 살펴보자.

<유스> 촬영 중인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가운데), 이미지 출처 – ‘imdb

 

<아버지를 위한 노래>

과거에 세계적인 락스타였던 ‘샤이엔’(숀 펜)은 아일랜드에서 아내 ‘제인’(프란시스 맥도맨드)과 함께 은둔 생활 중이다. 붉은 립스틱에 긴 파마머리를 고수한 채 늘 작은 카트를 끌고 다니는 샤이엔은 30년 동안 왕래가 없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오랜만에 미국으로 돌아간 샤이엔은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과거에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었던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나치 전범을 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샤이엔은 아버지가 쫓던 나치 전범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첫 영어 영화인 <아버지를 위한 노래>(2011)의 원제는 ‘This Must Be the Place’로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뮤지션인 토킹 헤즈의 리더 데이빗 번에게 영화 음악을 맡겼고, 데이빗 번은 직접 영화에 출연까지 한다. 고스족을 연상시키는 샤이엔의 모습은 밴드 더 큐어의 보컬 로버트 스미스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하는 등, 70~80년대 락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발견의 즐거움이 큰 작품이다.

<아버지를 위한 노래> 트레일러

샤이엔은 15살에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단정 지은 채 30년이 지나 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한다. 그는 과거의 모습에 묶여있고, 때로는 몸만 어른인 아이처럼 보인다. 나이 든 자신의 민낯 대신 락스타였던 시절의 화장과 의상을 고수하고,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 사람처럼 카트를 끌고 다닌다.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샤이엔은 여전히 아이에 머물러 있고, 아버지의 죽음 뒤에야 제대로 된 화해를 위한 시도가 시작된다.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지혜란, 삶에 발생하는 비극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게 아닐까. 락스타였던 시절의 투어가 영원한 젊음을 과시하기 위한 일정이라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시작된 여행은 나이 든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여정처럼 느껴진다.

 

<그레이트 뷰티>

잡지사에서 인터뷰어로 일하고 있는 ‘젭’(토니 세르빌로)은 40년 전에 쓴 소설 한 권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으며, 로마에서 열리는 각종 파티에 빠지지 않고 초대되는 유명인사다. 수많은 파티 사이에서도 젭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작스럽게 첫사랑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젭은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그레이트 뷰티>(2013)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으로, 파올로 소렌티노가 강조하는 형식미가 가장 도드라진 영화다. 젭을 연기한 토니 세르빌로는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배우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데뷔작 <엑스트라 맨>(2001)부터 <사랑의 결과>(2004), <일 디보>(2008), <그때 그들>(2018), <신의 손>(2021)까지 대부분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레이트 뷰티> 트레일러

<그레이트 뷰티>는 여러모로 역설적인 작품이다. 젭은 화려함으로 가득한 파티 속에서 권태와 공허함을 느끼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지만 정작 자신이 찾는 아름다움에는 닿지 못한다. 젭은 어린 시절 동경했던 로마에서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침실 천장을 바라보며 고향의 바다를 상상하고, 기린을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사 친구에게 자신도 사라지게 해달라며 로마를 떠나는 삶을 꿈꾼다. 아름다움은 찰나다. 과거에 고향 바다에서 첫사랑과 함께했던 날들이나 로마에서 본 무수히 많은 예술도 순간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이란, 사라지는 것을 끝없이 목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유스>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유명한 ‘프레드’(마이클 케인)는 은퇴 후 딸 ‘레나’(레이첼 와이즈)와 함께 스위스 알프스의 고급 리조트에 머문다. 프레드의 친구인 영화감독 ‘믹’(하비 케이틀)도 같은 리조트에 머물면서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영국 여왕은 특사를 보내 프레드에게 지휘를 요청하지만 프레드는 거절하고, 믹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작가들과 머리를 맞댄다.

<유스>(2015)는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두 번째 영어 영화로, 주제곡인 ‘심플 송’을 조수미가 직접 부르고 영화에 출연까지 하며 화제가 되었다. <그레이트 뷰티>(2013)가 아름다움이 사라진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영화라면, <유스>는 젊은 시절을 보내고 노년에 이른 프레드와 믹이 삶의 이유를 찾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프레드와 믹은 서로의 소변량을 안부로 물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삶의 의미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스> 트레일러

믹은 함께 작업 중인 젊은 시나리오 작가에게 산 위의 망원경을 보라고 하며 말한다. ‘젊을 때는 모든 게 가까워 보이지, 미래니까’. 망원경을 반대로 돌려서 보라고 한 뒤 이어서 말한다. ‘늙어서는 모든 게 멀리 있어 보이지, 과거니까’.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를 떠나서, 미래는 늘 가까워 보이고 과거는 멀게 느껴진다. 붙잡을 수 없는 과거는 하루만 지나도 저 멀리 가버리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미래는 성큼성큼 금세 가까이 온다. 그렇게 과거에 대한 후회는 커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금세 나를 지나 과거로 바뀐다. 과거를 바라보고 미래에 휩쓸려서 눈을 뜨면, 또 한 살 지나 더 먼 곳에 와있다.

 

<신의 손>

198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는 마라도나가 나폴리 축구단에 입단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들떠있다. ‘파비에토’(필리포 스코티)는 주로 혼자 지내는 걸 즐기는 소년이다.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파비에토는 어느 날 가족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이로 인해 파비에토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넷플릭스와 협업한 <신의 손>(2021)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주연 배우 필리포 스코티가 신인배우상에 해당하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다. <유스>(2015)에는 직접적으로 명시는 안 되지만 누가 봐도 마라도나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고, 나폴리 출신인 파올로 소렌티노에게 마라도나는 고향을 상징하는 인물인 만큼 특별할 수밖에 없다. 제목인 ‘신의 손’도 마라도나가 손으로 골을 넣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인용했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인물로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와 마틴 스콜세지, 밴드 토킹 헤즈, 축구선수 마라도나를 언급한 적이 있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작품 대부분에서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향력이 느껴지고, <일 디보>(2008)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버지를 위한 노래>(2011)는 토킹 헤즈의 데이빗 번이 음악을 맡고 직접 출연도 했으며, <신의 손>은 마라도나에 대한 소식이 나폴리를 가득 채우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감독의 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신의 손> 트레일러 

멀리서 바라보면 파비에토의 삶은 모자람이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지만 부모님에게는 갈등이 존재하고, 파비에토의 마음은 또래보다는 이모를 향해 있다. 파비에토가 나폴리에서 느끼는 모든 기쁘고 슬픈 순간에는 마라도나가 함께한다. 마라도나와 열광하던 파비에토는 비극적인 일을 겪은 이후, 영화에 눈을 돌린다. 안정감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축구와 함께했다면, 온전히 혼자 삶을 마주해야 되는 순간에 파비에토가 선택한 건 영화다. 매 순간 폭발적인 축구 경기와 달리, 영화는 삶의 가장 밑바닥을 마주하게 만든다. 파올로 소렌티노가 화려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로 공허한 삶을 담아내는 건, 아이러니한 삶의 본질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일 거다. 파올로 소렌티노가 <신의 손>으로 보여준 유년기의 맨얼굴은 슬픔을 머금고 애써 웃는 표정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 통과의례처럼 배우게 되는 그 표정을 본다. 스크린에서, 거울에서.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