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실존했던 배우의 삶을 다룬 영화를 볼 때면 이 말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 각종 매체를 통해 보는 배우의 삶은 늘 빛난다. 내내 아름다울 것 같은 그들의 삶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을 거다. 책임져야 할 영화의 러닝타임에 비해 삶은 훨씬 길고, 탁월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에게도 삶을 이끄는 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배우 입장에서 실제 존재했던 선배 배우를 연기하는 건 묘한 기분일 거다. 완전히 창작된 인물이 아닌, 실제 세상에 존재하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을 연기하는 일이니까. 실존했던 배우와 비교당할 위험이 많기에, 잘해봐야 본전인 도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미셸 윌리엄스, 데인 드한, 르네 젤위거 등 많은 배우가 기꺼이 자신보다 앞서 연기해 온 배우의 삶을 연기하기로 결심한다. 찰리 채플린,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주디 갈란드 등 시대를 풍미한 배우를 연기한 배우들에게, 실제 배우를 완벽하게 재연했다는 말과 자신만의 매력으로 재해석했다는 평 중 무엇이 더 기분 좋은 말이 될까? 실존했던 배우와 연기하는 배우가 모두 빛나는, 실존했던 배우의 삶을 다룬 영화들을 살펴보자.

 

<채플린>

배우이자 감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찰리 채플린’(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자서전 편집을 담당하는 ‘조지 헤이든’(안소니 홉킨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찰리 채플린은 어릴 적 정신 이상에 시달리는 어머니(제랄린 채플린)와 헤어지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서 무대에서 코미디 연기를 시작한다. 영화로 무대를 옮기면서 찰리 채플린은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배우이자 감독으로 크게 인정받는다. 그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지만, 계속된 결혼과 이별 등 그의 삶은 불안하다.

<시티 라이트>(1931) 속 찰리 채플린, 이미지 출처 – imdb

찰리 채플린은 굳이 무성영화로 제한하지 않고 영화사 전체로 봐도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감독이다. 심지어 그는 <키드>(1921), <시티 라이트>(1931) 등 자기 작품의 음악까지 맡을 만큼 다재다능하다. 그의 영화를 본 적 없는 이들조차도 콧수염, 중절모, 프록코트로 상징되는 그의 모습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그는 영화계 최고의 아이콘이다.

<채플린>(1992)에서 찰리 채플린을 연기한 배우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아이언맨>(2008) 이후로 마블 스튜디오의 상징적인 존재로 전 세계를 매료시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지만, 그가 연기자로서 제대로 인정받은 시작점에는 <채플린>이 있다. 출연한 배우 중에는 찰리 채플린의 딸인 배우 제랄린 채플린이 있는데, 찰리 채플린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즉 자신의 친할머니를 연기하게 된 거다.

찰리 채플린은 감독이나 배우로서 영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남겼다. 관객들을 그에게 열광했으나, 영화로 거둔 성과가 반드시 그가 느끼는 행복과 비례하는 건 아니다. 3번의 이혼을 겪고, FBI로부터 사찰당하고, 주 활동 무대였던 미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등 영화인이 아닌 한 개인의 삶으로 보자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가 이뤄낸 대외적인 성취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찰리 채플린의 최고의 작품을 묻는다면 관객마다 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겠지만,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유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따뜻함을 느낄 때면,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어떤 영화의 촬영 현장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과의 평범한 저녁 식사 자리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해본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배우 ‘마릴린 먼로’(미셸 윌리엄스)는 영화 <왕자와 무희> 촬영을 위해 영국에 머문다. 마릴린 먼로는 낯선 환경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기를 하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감독이자 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케네스 브래너)와 충돌한다. 촬영장 안팎으로 마릴린 먼로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로렌스 올리비에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콜린’(에디 레드메인)은 촬영을 진행하면서 마릴린 먼로와 마주할 일이 늘어난다. 콜린은 마릴린 먼로에게 점점 빠지고, 마릴린 먼로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콜린에게 의지한다.

<이브의 모든 것>(1950) 속 마릴린 먼로, 이미지 출처 – imdb

마릴린 먼로의 출연작을 모르는 이들은 있을 수 있지만, 마릴린 먼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마릴린 먼로는 영화계를 넘어, 대중문화 전체에서 가장 큰 상징성을 가진 배우다. 각종 매체에서 마릴린 먼로를 어떻게 묘사하든, 마릴린 먼로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3), <7년만의 외출>(1955),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등 자신이 출연한 작품에서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 훌륭한 배우다.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는 캐스팅 당시만 해도 화려한 이미지의 마릴린 먼로와 맞지 않을 거라는 추측에 시달렸지만,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을 본 이들이라면 미셸 윌리엄스가 아닌 마릴린 먼로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마릴린 먼로의 화려한 면보다 외로움을 그리는데 더 큰 에너지를 쓴 영화인 만큼, 미셸 윌리엄스는 마릴린 먼로의 심연을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마릴린 먼로는 콜린에게 말한다. 다들 자신에게 화려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을 기대하고, 기대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면 도망간다고. 배우는 연기를 하면서 배역으로 관객들에게 기억된다. 배역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날 것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된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배우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실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 버린다. 30대에 세상을 떠난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 여전히 세상은 많은 말을 한다. 확실한 건 마릴린 먼로는 그 어떤 이미지보다도 좋은 배우로서 기억되고 싶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라이프>

사진작가 ‘데니스 스톡’(로버트 패틴슨)의 목표는 유명 잡지 <라이프>에 자신의 사진을 수록하는 거다. 데니스 스톡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배우 ‘제임스 딘’(데인 드한)을 우연히 만나고, 그의 잠재력을 보고 함께 사진 작업을 하자고 권한다. 제임스 딘은 영화 제작사가 자신을 다루는 방식에 불만이 쌓여가는 가운데, 데니스 스톡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이언트>(1956) 속 제임스 딘, 이미지 출처 – imdb

제임스 딘은 주연을 맡은 <에덴의 동쪽>(1955), <이유없는 반항>(1955), <자이언트>(1956), 단 세 편의 영화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가 된다. 20대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새로운 작품을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여전히 젊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제임스 딘이 호명된다. 그의 작품을 볼수록 다른 영화와 배역에 도전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라이프>(2015)는 제임스 딘이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1986년생 동갑내기 배우 데인 드한과 로버트 패틴슨이 각각 배우 제임스 딘과 사진작가 데니스 스톡을 연기한다. 떠오르는 배우들에게 제임스 딘의 이름은 자연스레 따라붙기에, 두 배우에게도 제임스 딘을 다룬 작품에 출연하는 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업일 거다.

데니스 스톡은 잡지 ‘라이프’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기를 바라면서 제임스 딘을 촬영하고, 제임스 딘은 잡지 ‘라이프’의 뜻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사진은 한순간을 담아내고, 많은 의미를 함축하지만 모든 맥락을 다 담을 수는 없다. 제임스 딘의 삶에서 한 장면을 본다고 그에 대해 전부 이해할 수는 없는 것처럼. 누군가의 삶을 보면 사진으로 담고 싶어지는 사진가와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고민하는 배우는 각자의 목적을 품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들이 나눈 게 우정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담아내고 있다.

 

<주디>

<오즈의 마법사>로 알려진 배우이자 가수인 ‘주디 갈란드’(르네 젤위거)는 두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은 집도 없는 신세다. 전 남편이 두 아이의 양육권을 가지기 위해 움직이는 가운데, 주디는 양육권을 지키기 위한 비용을 벌기 위해 런던에서의 공연 제안을 수락한다. 불면과 알코올 의존으로 힘들어하는 주디는 공연을 앞두고 계속해서 어릴 적 <오즈의 마법사> 촬영장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스타탄생>(1954) 속 주디 갈란드, 이미지 출처 – imdb

‘Over the Rainbow’는 <오즈의 마법사>(1939)의 수록곡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다. 이 곡을 부른 이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를 맡은 배우이자 가수 주디 갈란드다. <오즈의 마법사>는 아름다운 영화이지만, 촬영 현장에서 당시 10대였던 주디 갈란드에게 약물 남용과 폭언을 하는 등 학대가 난무했다. 주디 갈란드는 시대를 빛낸 아티스트지만, 어릴 적 스튜디오와 가족으로부터 받은 학대가 평생 주디 갈란드를 괴롭힌다.

<주디>에서 주디 갈란드를 연기한 건 르네 젤위거다. <주디>를 통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그해 주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 만큼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주디 갈란드의 공연이 주요 배경인 만큼, 주디 갈란드의 목소리와 르네 젤위거의 연기가 포개지는 순간에는 두 예술가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듯 경의롭다.

주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촬영하던 어린 시절이나 무대를 앞둔 지금이나 비슷한 의문을 품는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왜 내가 원하는 행복과는 멀어지는 기분일까? 무대에서 노래 부르기 전, 주디 갈란드는 관객들에게 말한다. 무지개 너머 어디로 가든, 그저 하루하루 걸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라고. 어릴 적 상처로 인해 늘 불안에 시달리고, 행복도 있는 그대로 누리지 못하는 주디 갈란드에게 필요한 말은 ‘잘해야 돼’라는 부담스러운 기대보다 ‘못해도 괜찮아’라는 무조건적인 응원이 아니었을까?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