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펜터(John Carpenter) 감독은 초기작 <할로윈>(1978)과 <포그>(1980)를 흥행으로 이끌며 호러 영화의 거장으로 부상했지만, 할리우드가 투자에 나선 대작 영화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가장 정점에 있었던 영화 <빅 트러블>(Big Trouble in Little China, 1986)은 제작비 2,500만 달러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실패작이었지만, 그의 전작 <괴물>(The Thing, 1982)과 마찬가지로 뒤늦게 입소문을 타며 컬트 클래식 영화의 지위에 올라섰다. <괴물>이 비디오 게임으로 제작되고 2011년에는 속편으로 제작된 것처럼, <빅 트러블> 역시 비디오 게임을 출시한 바 있으며 드웨인 존슨의 제작사 ‘세븐 벅스 프로덕션’이 후속 작품 기획에 나섰다.

영화 <Big Trouble in Little China>(1986) 예고편

영화 <빅 트러블>은 모험, 무협, 초자연적인 괴담,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였고, 거기에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기발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재미가 있다. 비록 이들을 연결하는 스토리 라인은 엉성하고 수선스럽지만, 컬트 팬덤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화의 대표적 캐릭터 셋에 대해 알아보았다.

 

영웅답지 않은 영웅, 잭 버튼

원래의 시나리오는 1880년대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총잡이 잭 버튼이 차이나타운에서 벌이는 액션 모험극으로 기획되었으나, 시나리오를 인수한 20세기폭스사가 현재의 시점으로 대폭 바꾸었다. 또한, 당시 비슷한 중국 콘셉트로 경쟁하게 될 영화 <골든 차일드>의 주연 배우 에디 머피(Eddie Murphy)에 맞대응하기 위해, 허풍을 떨다가 실수를 연발하는 B급 영웅 ‘잭 버튼’ 캐릭터를 개발한 것이다. ‘잭 버튼’ 역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잭 니콜슨 같은 스타 캐스팅이 여의치 않자, 영화 <괴물>에 출연하며 스타급으로 떠오른 ‘커트 러셀’을 캐스팅하였다. 하지만 <골든 차일드>와의 경쟁에서 참패했고, 영화 개봉 2주후 <에이리언 2>가 개봉되면서 영화는 박스오피스에서 밀려났다. 존 카펜터 감독은 더 이상 할리우드의 제작비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지자, 저예산 독립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빅 트러블>의 Top 10 ‘잭 버튼’ 순간

 

고대 중국의 빌런, 로판(Lo Pan)

그는 고대 중국 진시황제 시대에 저주를 받아 육신을 잃은 초자연적 존재로, 저주를 풀고 육신을 되찾기 위해 수천년 동안 푸른 눈의 여성을 찾아 헤매는 악의 화신이다. 수천년 동안 살아남은 그는 미국 차이나타운의 지하 동굴에 은신하면서 독보적인 모습과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빌런 캐릭터로 탄생했다. 그는 그 후에도 <닌자 거북이>(2012)의 ‘호찬’이나 <모탈 컴뱃>(2021)의 ‘샹충’ 같은 할리우드판 무협 드라마 캐릭터에 영향을 주었다. 그를 연기한 제임스 홍(James Hong)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약 600여 편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중국인을 연기한 베테랑 배우다.

영화 <Big Trouble in Little China>에서 젊어진 로판이 등장하는 장면

 

3인의 폭풍(Three Storms) 검객

원래 중국 풍의 무술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존 카펜터 감독은 재미있는 콘셉트와 분장의 빌런 검객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들은 로판 수하의 세 명의 무술가로, 각각 천둥과 비, 그리고 번개를 상징하며 자연 현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번개(Thunder) 역의 카터 웡(Carter Wong, 황가달)은 홍콩의 무술교관 출신으로 수백 편의 무술영화에 출연한 홍콩 배우다. 비(Rain) 역의 피터 퀑(Peter Kwong)은 중국계 미국인, 천둥(Lightning) 역의 제임스 팍스(James Pax)는 일본계 배우로, 모두 할리우드의 아시안계 배우들이다. 이들의 밀집 모자와 코스튬, 그리고 독특한 무기는 너무나 유명하여 캐리커처나 피겨 모델로도 인기를 끌었다.

영화 <Big Trouble in Little China>에서 ‘Three Storms’의 등장 장면

드웨인 존슨과 그의 제작사 ‘세븐 벅스 프로덕션’이 두번째 <빅 트러블> 계획을 발표한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화의 구체화된 모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70대로 접어든 커트 러셀이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리메이크가 아니라 시퀄(후속편)이라는 점 외에 밝혀진 사실은 없다. 존 카펜터 감독이 저작권 관련하여 협력할 것이라 밝혔기에 오리지널 영화와 세계관을 공유한 새로운 잭 버튼 모험 이야기가 기획될 것이며, 과거 중국인에 대한 고정관념 논쟁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