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열린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화제가 되었다. 주요 부문 수상작을 살펴보자면, 오드리 디완 감독의 <해프닝>이 황금사자상,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더 도그>가 감독상,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신의 손>이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신의 손>은 심사위원대상뿐만 아니라 출연 배우 필리포 스코티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은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주는 신인배우상이다.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이름을 딴 상으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 <달콤한 인생>을 비롯해서 미칼렌젤로 안토니오니, 비토리오 데 시카, 에토레 스콜라 등 명감독의 작품을 호연으로 완성시킨,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배우이다. 낯선 이름의 상이지만, 2002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진출작 <오아시스>(2002)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다. 문소리뿐만 아니라 <이 투 마마>(2001)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디에고 루나, <욕망의 대지>(2008)의 제니퍼 로렌스, <블랙 스완>(2010)의 밀라 쿠니스, <조>(2013)의 타이 셰리던 등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은 배우들은 수상 이후에도 여러 작품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제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배우의 이름을 딴 상을 받는 만큼 신인배우에게 좋은 격려가 있을까? 지금의 좋은 연기만큼이나 미래가 궁금해지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은 배우들의 작품을 살펴보자.

 

<생선 쿠스쿠스>의 합시아 헤지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살고 있는 ‘슬리만’(하비브 보파레스)은 첫 번째 부인 ‘수아드’(보라오이아 마조크)와 이혼 후, 작은 숙소를 운영 중인 ‘라티파’(하티카 카라위)와 ‘림’(합시아 헤지) 모녀와 지내고 있다. 슬리만은 평생을 일한 회사에서 퇴사를 권유받고, 퇴직금으로 고향을 대표하는 음식인 생선 쿠스쿠스를 메인으로 한 식당을 열고자 한다. 식당을 열기 위해 은행과 관공서 등을 가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풍성한 연회를 열기로 한다.

<생선 쿠스쿠스>(2007)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의 압델라티프 케시시가 연출한 작품이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으로, 합시아 헤지는 <생선 쿠스쿠스>로 데뷔와 동시에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고, 이후 <도주왕>(2009), <라폴로니드: 관용의 집>(2011), <인헤리턴스>(2012) 등에 출연하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왔다. 2019년에 <유 디저브 어 러버>(2019)로 감독 데뷔를 해 연출, 각본, 주연을 모두 맡으며 호평받았고, 최근 연출작인 <굿 마더>(2021)로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등 연출 또한 활발히 하고 있다.

합시아 헤지가 연기한 림은 생선 쿠스쿠스를 먹으면서 슬리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생선 쿠스쿠스>에서 생선 쿠스쿠스 요리는 늘 가족과 함께한다. 수아드의 가족들은 다 함께 모여 생선 쿠스쿠스를 먹고, 슬리만은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서 생선 쿠스쿠스 식당을 열고 싶어 한다. 여러 재료가 모여서 하나의 요리가 되듯, 생선 쿠스쿠스 식당을 열기 위해서 슬리만의 가족과 주변인들이 모두 모인다. 식당을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이들의 모든 행동은, 결국 함께 지내며 밥을 먹는 ‘식구’로 더 오래 지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거다. 생선 쿠스쿠스는 국내 관객에게 낯선 음식이지만, 음식이 가진 따뜻함의 힘은 만국 공통이지 않을까?

 

<두더지>의 소메타니 쇼타, 니카이도 후미

‘스미다’(소메타니 쇼타)는 평범한 삶을 꿈꾸는 중학생이다. 그러나 집에 올 때마다 돈을 찾고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미츠이시 켄)와 다른 남자와 노느라 스미다에게 무심한 어머니(와타나베 마키코)로 인해 조용히 하루를 보내기도 쉽지 않다. 보트를 빌려주는 일을 하는 스미다 곁에는 강가에서 지내는 ‘요루노’(와타나베 테츠)를 비롯한 노숙자뿐이다. 아버지의 폭력은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같은 반 소속인 ‘차자와’(니카이도 후미)는 스미다를 따라다닌다.

<두더지>(2011)는 후루야 미노루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러브 익스포져>(2008), <차가운 열대어>(2010), <지옥이 뭐가 나빠>(2013) 등을 연출한 소노 시온의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소메타니 쇼타와 니카이도 후미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공동으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으며, 소메타니 쇼타는 <우드잡>(2014),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 니카이도 후미는 <내 남자>(2014), <리버스 엣지>(2018) 등에 출연하며, 두 배우 모두 이제 신인이 아닌 풍성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로 자리 잡았다.

<두더지>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미다는 아무에게도 마음에 열지 않으려 하지만, 대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요루노와 자신을 멸시하는 집에서 자란 차자와는 계속해서 스미다를 돕고자 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나약하다고 평가받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함께이기에 견디고 나아갈 수 있다. 스미다는 영화의 시작에서도, 영화의 끝에서도 뛰고 있다. 같은 뜀이지만, 처음의 뜀과 마지막 뜀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희망없이 할 수 있는 게 뛰는 것뿐이라 달리는 것과 희망을 품고 뛰는 건 완전하게 다른 뜀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스미다와 차자와를 넘어, 세상 전체에 하는 말처럼 들린다. ‘힘내’, 짧지만 강력한, 반드시 필요한 말.

 

<린 온 피트>의 찰리 플러머

15세의 ‘찰리’(찰리 플러머)는 아버지 ‘레이’(트래비스 핌멜)와 함께 살고 있다. 레이는 다른 여자들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집을 비울 때가 많다. 찰리는 우연히 경주마를 관리하는 ‘델’(스티브 부세미)을 만나서, 그의 밑에서 경주마를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찰리는 단거리 경주마인 ‘린 온 피트’를 훈련시키며 정이 들고, 경마 기수 ‘보니’(클로에 세비니)는 그런 찰리를 보며 말에게 정을 붙이지 말라고 한다.

찰리 플러머가 세상에 자신을 알린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영화 <올 더 머니>(2017)다. <올 더 머니>에는 ‘플러머’라는 성을 가진 배우가 두 명 나오는데, 한 명은 100편도 넘는 영화에 출연한 1929년생 크리스토퍼 플러머이고, 또 한 명은 지금부터 소개할 1999년생 찰리 플러머다. 성도 같고, 영화 속 배역이 할아버지와 손자라서 둘의 관계에 대해 추측할 법하지만 둘은 혈연관계가 아니다. 몇 년 후에는 두 배우의 공통점으로 성보다도 좋은 연기력을 먼저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린 온 피트>(2017)는 <주말>(2011), <45년 후>(2015)를 연출한 앤드류 헤이 감독의 작품으로, 찰리 플러머는 <린 온 피트>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다.

피트는 경주마로서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멕시코에 팔려서 죽을 운명이다.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지만 늘 괜찮은 척하는 게 익숙한 찰리에게, 말없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피트는 마치 자신처럼 보인다. 찰리는 피트를 경주마가 아닌 동반자로 대하며, 아무도 힘들어도 찰리를 타지 않고 함께 걷는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들키느니 괜찮은 척하고 마는 찰리는, 유일하게 피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세상이 돌봐주지 않아서 강제로 아픔 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찰리의 시간을 세상은 모른다. 그저 아무 말이 없는 피트만이 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경주마로 살며 사람들에게 등수로 기억되던 피트와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며 자라난 찰리는, 세상이 알려주지 않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한다.

 

<베이비티스>의 토비 월레스

암으로 투병 중인 고등학생 ‘밀라’(엘리자 스캔런)는 열차 승강장에서 우연히 ‘모지스’(토비 월레스)를 만난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피아니스트 출신 어머니 ‘안나’(에시 데이비스)와 정신과 의사 ‘헨리’(벤 멘델슨)의 보살핌 속에 사는 밀라는, 거리에서 마약을 사고파는 모지스에게 단숨에 끌린다. 안나와 헨리는 딸 밀라가 모지스와 어울려 다니는 걸 원치 않지만, 밀라는 계속해서 모지스를 원한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나이팅게일>(2018)의 베이컬리 거넴바르부터 <베이비티스>(2019)의 토비 월레스까지 2년 연속으로 호주 배우에게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수여했다. 1995년생인 토비 월레스는 13살의 나이로 <럭키 컨츄리>(2009)를 통해 데뷔했다. <갤로어>(2013), <나무 위의 소년들>(2016), <어큐트 미스포춘>(2018) 등 호주 영화 속 가장 눈에 띄는 신인으로 활동하던 토비 월레스는 <베이비티스>로 통해 자신의 재능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토비 월레스의 차기작은 <트레인스포팅>(1996),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 등을 연출한 대니 보일 감독의 TV 시리즈 <피스톨즈>로,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존스를 연기할 예정이다.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 3에 연출로 참여한 섀넌 머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베이비티스>는 전형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소재를 독특한 분위기로 그려내는데, 특히 밀라와 모지스 두 캐릭터의 매력이 크게 작용한다. 밀라는 고등학생이지만 유치를 가지고 있다. 아직 빠지지 않은 유치(乳齒)를 가진 밀라는,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 모지스와의 유치(幼稚)한 사랑을 꿈꾼다. 투병 중인 밀라 입장에서는 남들에게는 유치하게 느껴질 사랑의 순간조차도 누리기 쉽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지스는 매 순간을 강렬하게 만들어준다.

모지스, 안나, 헨리 등 밀라의 주변 이들은 모두 각자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기 좋은 순간이나 어른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유치가 빠지면 그때부터 성숙이 시작되는 걸까? 마음에도 유치가 있다면, 유치가 빠진 뒤에도 아직 단단한 이가 자라지 않은 것처럼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어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른으로 불리지만 어른이라고 믿기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서, 유치를 가지고 열렬하게 사랑하는 이를 바라본다. 있는 힘껏 하는 사랑은 유치한 게 아니라, 가장 단단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