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대 화제작은 <미나리>와 <노매드랜드>였다. 배우 윤여정의 수상은 연일 뉴스를 도배했고, 2년 연속으로 아시아 감독이 작품상을 가져가면서 이슈를 독점했다. 그렇게 시상식은 막을 내렸지만 시네필들의 논공행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올해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후보작 중에 눈여겨볼 작품이 숨어있었다. 오늘은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배우 톰 행크스와 <캡틴 필립스>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다시 만나 화제를 모은 서부영화 <뉴스 오드 더 월드>를 소개한다.

* 아래 본문에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뉴스 읽어주는 남자

<뉴스 오브 더 월드>는 남북전쟁이 막 끝난 1860년대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 '키드'(톰 행크스 분)는 남부 이곳저곳을 떠돌며 뉴스를 읽어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미국식 연미복을 입고 신문과 잡지를 든 채 청중 앞에 선 퇴역군인 키드는 단돈 10센트만 받고 문맹이 팽배한 남부 시민들에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사를 말로 전한다. 요즘 유행하는 지식소매상처럼 특유의 능변으로 패전의 아픔에 젖은 농민을 웃게 한다. 방송국이 없던 시절이니 요즘으로 치면 9시 뉴스 앵커를 맡은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키드가 읽어주는 뉴스를 흥미롭게 듣다가도, 정부 얘기만 나오면 죽일 듯 분개한다. 작은 흉문만 들려도 이게 다 북부 놈들 소행이라며 이를 간다. 19세기 후반의 남부는 패전 이후의 분노와 불안이 떠날 줄 몰랐다. 북부군으로 이뤄진 연방정부는 남부 농민의 생계 수단인 노예제를 강제로 폐지했고, 그 결과 농민들의 생활은 곤궁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는 군인들을 파견해서 사사건건 개입했으며, 충성 서약 없이는 어느 곳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 패전에 승복하지 않는 일부 퇴역 군인들이 폭도가 되어 정부 시책에 저항하기도 했다.

키드는 참전하기 전까지는 인쇄소에서 출판업을 하던 남자였다.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던 그는 전쟁에 휘말리면서 모든 걸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갈 곳이 사라진 키드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는지 잘 모른다. 밤이 되면 외로움에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이 되면 초라한 행색으로 방랑길에 나선다. 정처 없이 표류하는 키드가 그나마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건 자그마한 소명 때문이다. 지식인으로서 세상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책무가 그의 긴긴밤을 지탱한다.

 

대배우 '톰 행크스'의 첫 서부극

톰 행크스는 첫 서부영화로 <뉴스 오브 더 월드>를 택했다. 이 경험 많은 배우에게 처음이라는 말이 낯설다. 스크롤의 압박이 느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살펴봐도 서부의 광활한 평야를 질주하는 모습은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초췌한 얼굴로 전투복을 입은 모습, <포레스트 검프>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전국을 뛰어다니던 장면은 오늘날 미국인의 초상으로 불리지만, 카우보이 모자에 롱부츠를 신고 다니는 톰 행크스는 왠지 모르게 낯설다. 지금까지 미국의 개척 정신을 표방하는 서부극에 톰 행크스가 출연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의 이미지가 눈 깜짝할 새 총을 빼드는 무법자와는 거리가 먼 탓일 것이다. 톰 행크스는 거친 매력을 자랑하는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달리 야만의 시대에서도 휴머니즘을 역설하는 수줍은 영웅상에 가깝다. 지금까지 톰 행크스를 대표하는 역할들은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고, 관객은 그 누구도 그에게 괴력을 지닌 영웅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네처럼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소시민일 뿐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에서도 상식에서 벗어난 행위에 분노하던 '키드'는 겨우 도망치는 결정을 한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이 퇴역 군인은 용기를 발휘해서 우리가 지난 30년간 흔히 보아온 '톰 행크스'다운 평화를 구축한다.

 

신비로운 얼굴의 배우 '헬레나 젱겔'

키드가 오갈 데 없는 아이 ‘조해나’(헬레나 젱겔)를 떠맡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발동을 걸기 시작한다. 키드는 인디언의 손에 키워져서 말도 통하지 않는 독일계 백인 소녀를 구해내기 위해 여정을 시작한다. 조해나는 인디언 문명을 받아들인 탓에 막 지구에 막 떨어진 외계인처럼 굴어 키드를 당혹게 한다. 문화와 언어, 인종과 성별, 세대마저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은 좌충우돌 고행을 겪으면서 정이 들어간다. 두 사람의 궁합은 로드무비의 잔재미를 더하고, 관객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납치하려는 무리와 충돌하고, 감독 폴 그린그래스의 장기인 추격전과 총격신을 간간이 삽입되어 재미를 더한다.

아역배우 헬레나 젱겔의 얼굴은 세잔의 사과처럼 입체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조해나는 가만히 멍한 표정을 지어도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매력을 지녔다. 아이의 얼굴이 황량한 남부의 풍광과 어우러지며 바짝바짝 마른 입술을 적셔준다. 얼굴 그 자체로 강력한 드라마를 담아내는 헬레나 젱겔은 우리가 지난 시절에 보아온 대형 아역스타처럼 천진함과 서슬 퍼런 기운을 동시에 품어낸다.

 

스릴러의 거장 '폴 그린그래스'의 변신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우정을 그리는 휴먼 드라마인데, 감독이 액션 스릴러의 장인 폴 그린그래스라는 사실은 다소 의외다. 폴 그린그래스는 관객에게 <본 시리즈>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감독 데뷔도 북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고스란히 재현한 <블러디 선데이>였다. 필모그래피를 쭉 살펴봐도 거대 블록버스터에 재난 상황을 다룬 영화가 대부분이다. 특히 뛰어난 현장감을 보여주는 핸드헬드 촬영과 교차편집의 마술을 통해 추격 액션신과 대형 폭파신 연출에서 거의 롬멜 장군 뺨치는 연출력을 선보여왔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톰 행크스와 마찬가지로 폴 그린그래스의 첫 서부영화인데, 그의 장기를 숨기고 진중한 드라마에 공을 들였다. 그런 와중에도 전쟁 이후의 무자비한 서부 개척 사업을 화면에 담고, 인디언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벌어진 살육을 생생히 그려냈다. 가죽 하나 얻겠다고 버펄로를 집단으로 도륙하는 집단 이기주의와 땅을 소유하기 위해 숲을 태워버리는 인간들의 미개한 면모는 현대 도시가 지닌 폐단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폴 그린그래스는 남북 전쟁의 여파를 재현해서 현재 전 세계가 부딪친 사회적인 의제를 적시하려고 한 것이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빈민 문제와 타인종 혐오, 빈부격차의 문제를 영화에 담아내서 현실과 그렇게 멀지 않은 19세기 남부 땅을 비춘다.

 

감초 배우 엘리자베스 마블

카메오에 가깝게 출연한 감초 배우 '엘리자베스 마블'의 연기를 짚고 넘어간다. 어떻게 그는 몇 안 되는 장면을 죄다 잡아먹는지 놀라울 정도다. 엘리자베스는 1860년대 텍사스주의 어느 선술집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삶에 완전히 찌들어버린 중년의 여관 주인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했다. 키드에게 묵을 방을 안내하고 문을 닫고 서서 미소를 짓는 장면은 아찔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엘리자베스는 한국 관객에게는 수십 편의 영화에 나온 조연으로 익숙하다. 한국 배우 김혜옥, 고두심을 연상시키는 깊이를 지닌 배우로 <뉴스 오브 더 월드>에 부족한 관능과 매혹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온기라고는 사라져 버린 키드의 인생에 한 여름밤의 낭만을 불어넣는 영화의 베드신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록될만하다.

 

Writer

영화산문집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저자.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박민진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