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에 ‘가스라이팅’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1938년 영국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 <가스등>(Gaslight)에서 남편이 교묘한 거짓말과 상황 조작으로 아내의 생각을 조종하고 서서히 정신병자로 몰아간 데서 유래했다. 원래 가스등은 1800년대 중반부터 런던에서 촛불을 대신하여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데, <가스등>의 연극과 영화가 명성을 얻자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조작하여 그 사람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심리학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묘사한 영화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가해자인 남편이 아내를 교묘하게 억압하고 정서적으로 학대하거나 조종하는 장면이 상투적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작품 셋을 소개한다.

 

<가스등>(Gaslight, 1944)

1938년 영국에서 시작하여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인기리에 상연한 극작가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의 동명 연극을 미국 MGM에서 영화로 각색했다. 정체를 숨긴 채 자신과 결혼한 남편(샤를르 보와이에)으로부터 교묘하게 조종당하며 정신적인 학대를 받는 아내를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이 오스카와 골든글러브에서 동시에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이 영화는 1940년대 영화계에서 유행하던 ‘남편을 조심하라’(Don’t Trust Your Husband)는 대표적인 느와르 테마로 부상했고, 남을 교묘하게 조종한다는 심리학 용어 ‘가스라이팅’으로 널리 쓰였다. 2019년에는 영화의 문화적, 사회적, 심미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미국 국회의사당에 영구 보존되었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영화 <가스등>(1944) 예고편

 

<적과의 동침>(1991)

동명의 소설 <Sleeping with the Enemy>(1987)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로,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 제작비의 9배가 넘는 1억 7,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귀여운 여인>(1990)으로 일약 스타로 부상한 줄리아 로버츠(Julia Roberts)가 죽은 것처럼 위장해 강박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주인공 ‘로라’ 역을 맡았다. 화장실의 세면 타월이나 벽장에 둔 통조림의 위치나 방향을 가지런히 맞춰야 하는 남편의 극단적인 결벽증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한동안 TV 패러디가 유행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영화 <적과의 동침>(1991) 하이라이트 영상

 

<인비저블 맨>(2020)

한 여자가 첨단 보안 시스템을 갖춘 거대한 저택에서 탈출하는 장면부터 영화 <인비저블 맨>(The Invisible Man)은 시작한다. 엘리자베스 모스가 연기한 ‘세실리아’는 그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남편 ‘애드리안’(올리버 잭슨 코헨)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하지만, 투명인간 슈트를 개발한 천재 과학자인 그에게 쫓기게 된다. H. G. 웰스의 1897년 고전 소설에서 제목과 모티브를 차용했지만, 제임스 완 감독의 단짝인 리 워넬(Leigh Whannell) 감독과 영화사 블룸하우스(Blumhouse)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완전히 차별화한 공포 스릴러로 탈바꿈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코로나 상황이 시작되던 2020년 초에 개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작비를 크게 상회하는 1억 4,000만 달러를 박스오피스에서 벌어들였다.

영화 <인비저블 맨>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