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 from Ipanema’가 대표하는 보사노바 재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재즈 레전드 스탄 게츠(Stan Getz)는 1991년 3월 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재즈 명소 몽마르트르(Jazzhus Montmartre) 무대에 섰다.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 뮤지션은 오랫동안 함께한 피아니스트 케니 배런(Kenny Barron) 한 사람이었다. 당시 간암 말기로 투병 생활을 하던 스탄 게츠는 마지막 무대가 될 지도 모르는 4일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듀엣 연주를 펼쳤다. 여기서 녹음된 분량이 그의 사망 후 <People Time>이라는 앨범 제목으로 두 장의 CD로 발매했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4일 동안 녹음된 전곡이 일곱 장의 CD에 담아 <People Time: The Complete Recordings>(2010)로 출반되었다.

<People Time>에서 스탄 게츠의 첫 소개 발언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런던의 재즈 명소 로니 스콧츠(Ronnie Scott’s), 1970년대의 어느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로 다른 콤보로 무대에 올라 인사만 나눴다가, 스탄 게츠가 다음 유럽 투어에 칙 코리아 대신 피아니스트로 합류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 유럽 투어에서 친분을 쌓고 10여 년이 지나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에서 쿼텟을 이루면서 다시 만났고, 1987년 여름에 6주 동안의 유럽 투어를 다시 했다. 이 때 덴마크 코펜하겐의 명소 몽마르트르에서 녹음한 실황이 두 장의 앨범 <Anniversary>와 <Serenity>에 담겼다.

<People Time: The Complete Recording>(2010)

비록 16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코드가 맞았던 두 사람은 매년 함께 연주여행을 같이 했다. 스탄 게츠는 테너 색소폰의 대가였지만, 때때로 자신의 연주가 형편없었다고 자책하여 케니 배런을 당황스럽게 하곤 했다. 이 즈음 스탄 게츠의 투병 소식이 알려지며 이때마다 그의 마지막 공연일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스탄 게츠의 방사선이나 약물 치료 대신, 항암 음식과 식이요법으로 공연 일정을 소화했지만 갈수록 병색이 짙어졌다.

앨범<People Time>에 수록한 타이틀곡 ‘People Time’

1991년 3월의 유럽 공연은 스탄 게츠의 제안으로 리듬 섹션 없이 색소폰과 피아노의 듀엣으로만 연주했다. 3월 3일부터 6일까지 나흘 동안에는 코펜하겐의 몽마르트르에서 전체 연주 실황을 녹음하였다. 두 사람 모두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도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케니 배런은 그의 건강이 염려되어 수시로 전화하여 안부를 물었지만,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그해 7월 4일 예정된 프랑스 공연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통화를 마쳤지만, 케니 배런은 어쩌면 거장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앨범 <People Time>에 수록한 ‘First Time’

유럽에서 돌아온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6월 6일 스탄 게츠는 로스앤젤레스 북부의 휴양지 말리부(Malibu)에 있는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수십 년을 끌어온 부인과의 이혼 소송이 거의 끝나가던 참이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하였고 남은 재는 그의 색소폰 가방에 담겨 로스앤젤레스의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 해변에 뿌려졌다. 몽마르트르에서 4일간 녹음한 <People Time>은 스탄 게츠 사망한 이듬해인 1992년에 유작으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을 들은 팬들은 간암 말기로 투병 중이던 환자의 연주란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연주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앨범 <People Time>에 수록한 ‘Autumn Le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