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거울 앞에 선 두 사람. 칫솔에 치약을 묻혀 나란히 양치질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왠지 한 사람은 칫솔을 손에 쥐기만 한 채 가만히 멈춰 있다. 알고 보니 그에게는 옆 사람처럼 양치를 위한 치아도, 입도, 머리도 없다. 손에 들고 있던 칫솔에서 치약이 뚝 떨어져 몸에 묻는다. 이를 본 옆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이를 닦아낸다.

초단편 애니메이션 <AHEAD>(2020)
* 줄거리와 해석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목은 두 사람 중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머리’(a head)를 뜻하기도, 머리 없는 동반자를 위해 늘 앞서가는(ahead) 한 사람의 현실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한발 앞선 배려 뒤에 찾아온 건 두 사람의 뜻하지 않은 이별.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일상을 짊어지지만 때때로 누군가를 돌보고, 누군가와 함께해야만 하는 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대상이 가족이나 연인이든, 다른 누구이든 타인을 향한 헌신적인 도움과 배려는 분명 그것만으로 존경과 존중을 받을만하고, 이를 지켜보는 이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에 관해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고치고 싶지 않은 것을 타인이 고칠 수 있는가?” “그것을 받는 이를 앞서가는 도움을 진정한 도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작 5분가량 되는 이 이야기에는 드문드문 등장하는 독특한 미니멀리즘 음악 및 음향 외에 대사 한 줄 없다. 작품을 만든 알라 누누(Ala Nunu) 역시 이에 관해 굳이 많은 해석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머리가 없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의 짧은 이야기”라는 한 줄 설명을 곁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친숙한 일상과 초현실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세계관, 단순한 색과 선을 통해 각 장면은 무척 강렬한 인상을,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과 오랜 여운을 남긴다.

<AHEAD>는 애니메이터 알라 누누가 그의 런던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 애니메이션 석사 과정 중 첫해에 남긴 작품. ‘ANIMATEKA 2020’ 영탤런트 어워드 학생 부문 베스트 필름, ‘Chilemonos 2020’ 학생 경쟁 부문 3위, ‘O!Pla 2020’ 실버 어워드 등 많은 상을 받았으며 ‘파리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2021’, ‘애니마 페스티벌 2021’ 등 작년과 올해 유수의 영화제에 상영작으로 결정되었다.

 

알라 누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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