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위대한 감독은 누구인가요?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각각일 거다. 그러나 서로 다른 취향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할 법한 영화사 위대한 감독으로 이름을 남긴 이들이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도 그중 한 명이다. 많은 감독이 존경을 표하는 감독이자, 영화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스스로 증명한 감독이기도 하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게 되는 단어 중 하나는 ‘숭고함’이다. 영화는 어디까지 숭고해질 수 있을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세상에 남긴 장편영화 7편 중 그 어떤 작품을 봐도 삶의 숭고함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숭고한 삶을 지켜보는 기분으로 감상하게 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살펴보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이미지 출처 – ‘sensesofcinema

 

<안드레이 루블료프>

‘안드레이 류블료프’(아나토리 소로니친)는 성화를 그리기 위해 떠나지만, 그가 목격하는 풍경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교도들의 의식은 그가 속한 세계와는 다른 모습이고, 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안드레이 류블료프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실존했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에 대한 작품이지만, 대부분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새롭게 창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내에서는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이유로 1971년까지 상영이 금지됐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트레일러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이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그림 대신 그의 신념에 대해 그려낸다. 신념을 가진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는 모습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종을 만드는 소년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거나 종을 만드는 행위는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걸 넘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기 때문일 거다.

 

<솔라리스>

‘크리스 켈빈’(도나타스 바니오니스)은 솔라리스 혹성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솔라리스로 향한다. 그는 도착 후 이곳에 머무는 세 명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은 이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은 두 사람에게 솔라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크리스 켈빈은 죽은 아내(나탈리아 본다르추크)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걸 보고 혼란을 느낀다.

<솔라리스>(1972)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원작 소설 ‘솔라리스’는 2002년에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을 맡고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아서 다시 영화화되기도 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첫 번째 SF 영화로, 원작 소설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솔라리스> 트레일러 

<솔라리스>의 세계관 속에서는 자신의 기억에 존재하는 인물이 눈앞에 물질화되어 나타난다. 그들은 인간은 아니지만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크리스 켈빈이 죽은 아내가 다시 나타나자 당황스러움과 반가움을 교차로 느끼듯, 기억으로만 간직했던 대상이 눈앞에 나타난다는 건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다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므로, 내 기억의 대상과 같은 존재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들 앞에서 의미와 실체 중 무엇이 중요한지 묻게 된다. 기술은 점점 발전할 거고, <솔라리스>가 던진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순간도 결국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잠입자>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특수한 공간인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인 잠입자(알렉산드르 카이다노프스키). 잠입자는 작가(아나토리 소로니친)와 교수(니콜라이 그린)를 구역으로 안내한다. 소원을 알려주는 곳으로 알려진 구역, 그곳으로 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고 이들은 점점 대립하게 된다.

<잠입자>(1979)는 <솔라리스>(1972)에 이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두 번째 SF 영화로, 러시아의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노변의 피크닉>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잠입자>에는 SF 영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화려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설정은 관객이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잠입자> 트레일러

<잠입자>에 등장하는 작가와 교수는 지식인에 해당하고, 잠입자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함께 구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은 잠입자이다. 구역에 도달하면 소원을 알려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르게 말해서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자신의 깊은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의 속마음과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나의 삶은 떳떳한가. 이 물음 앞에 확신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심연과 마주하기 위해 애쓰는 잠입자일지도 모른다.

 

<희생>

‘알렉산더’(얼랜드 조셉슨)는 은퇴 후 어린 아들과 함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 자신의 생일날 아침, 어린 아들에게 죽은 나무에도 물을 주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렉산더의 아내와 친구 등, 알렉산더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나 이들이 모인 뒤, 전쟁의 소식이 들린다. 알렉산더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

<희생>(1986)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영화다. 스웨덴에서 촬영한 영화로, 배우 얼랜드 조셉슨,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 등 스웨덴 감독인 잉마르 베리만과 자주 호흡을 맞춘 이들이 참여한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영화제 당시 투병 중이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대신해서 아들이 대리 수상을 했다.

<희생> 트레일러

<희생>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할 방법을 행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알렉산더는 마치 순교자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망명으로 인해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몸이 아픈 와중에도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 고난과 상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해내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 속 인물들은, 역경 속에서도 영화로 세상을 말하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자신처럼 보인다. 숭고함을 목격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 풍경으로 남게 될 것이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