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인스타그램 #비주얼맵]은 지금 주목할 만한 젊은 비주얼 아티스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소개하고, 이들의 작업에 접근하는 간단한 가이드를 제시합니다.

 

영화 <셔틀콕>(2014) 포스터가 인상 깊었던 독자라면 표기식(@pyokisik)이라는 사진가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셔틀콕> 포스터는 사진가 표기식과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의 합작품이다. 프로파간다 특유의 서정적인 캘리그래피와 ‘혼자서는 연습도 못 하는 첫사랑’이라는 문구가 세 주인공이 초봄의 풍경을 배경으로 덤덤하게 선 모습 위에 얹혔다.

분홍빛 셔틀콕이 언뜻 벚꽃잎처럼 흩어진 포스터에 이끌려 영화를 선택한 관객이라면, 영화가 끝난 뒤 이 포스터를 조금은 배신당한 심정으로 유심히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분홍빛이 아니다. 우리 모두 겪었듯, 달콤하기만 한 첫사랑이 얼마나 되겠는가. 첫사랑은 시큼함에 가까운 풋내, 당황스러움, 혼란, 배신감, 두려움 같은 달콤하지 않은 감정들도 내포한다. 포스터를 다시 본다. 양 끝의 어두운 옷을 입은 소년과 소녀는 어딘가 지치고 피로해 보인다. 가운데 소년은 웃고 있지만 다른 인물들의 표정으로 미루어 웃을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영화 내내 보이던 삭막한 국도변 풍경, 즉 주변의 마른 나무와 풀들, 송전탑은 이들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어린 소년의 해맑은 웃음은 아이답게 예쁘지만 어딘지 겉돈다.

배신감이라. 어쩌면 우리는 포스터를 보았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지 모른다. 포장하려 해도 포장되지 않고 ‘퉁치려’ 해도 어딘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한 컷의 사진을. 이 사진은 영화에 대한 한 사진가의 감상인 동시에 영화의 전조와 감성 같은 많은 부분을 집약적으로 전달한다. 그러고 보면 사진은 영화 포스터임에도 야외에서, 인공조명이 아닌 특정 시간대(아마도 오후에서 해 질 녘)의 자연광에서 촬영했다. 이 사진을 촬영한 곳은 야외 세트나 영화 속 특정한 장면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가 아닌 제3의 장소다. 송전탑과 갈대밭과 성긴 나무들의 모양까지, 작가가 영화에 대한 감상 혹은 의도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기획 및 목적 속에서 사진이 한 요소로 기능할 때, 그 쓰임에 부합하는 사진을 굳이 수많은 변수가 출몰하는 야외에서 촬영하는 의지는 무엇을 의미할까. 물론 영화 포스터는 사진가 외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므로 사진가의 독단은 아니었겠지만, 작가의 의지가 큰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포스터는 아름답고, 쓸모에 부합하며,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가운데 사진가 표기식의 존재감은 차분하지만 선명하다.

2014년 11월에 열린 표기식의 첫 사진전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는 한강 둔치에서 발견한 나무 한 그루를 1년간 촬영한 기록이다. 작가가 선택한 나무는 사람 키보다 커서, 자란다면 그 속도가 아주 더딜 것 같지만 작가는 ‘자라는 나무’라고 힘주어 말한다. 다양한 계절과 시간 속에 작가가 본 풍경들이 일관적인 나무 프레임 속에 담겨 벽에 기대어 있거나 가볍게 프린트되어 벽에 살포시 붙어있다. 시작은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나무 한 그루였을 것이다. 그 마음을 탐구 혹은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다른 것보다 시간을 선택했다.

시간을 선택하는 태도, 거기에는 얼마간의 겸손과 성실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밀어붙이고자 하는 결단도 필요할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볼 수 있는 표기식의 사진들은 연약한 피사체, 순간적인 감정, 유동적인 시간이나 움직임의 찰나를 전달한다. 이 섬세한 감정들은 사진들을 거실이나 현관보다는 침실에 걸어두고 싶도록 친밀하게 다가온다. 묵직함과 가벼움 사이를 오가는 그 균형을 함께 짐작해보자.

 

*표기식은 사진작가이자 그래픽, 일러스트 디자이너로 2011년 첫 번째 사진집 <흩어지다>를 발간하고 2014년 첫 개인전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를 열었다. 다양한 매체에서 화보를 촬영하고 개인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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