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개봉한 영화 <침입자>(2019)의 손원평 감독은 베스트셀러 소설 <아몬드>를 쓴 소설가 출신 영화감독이다. 손원평 감독 외에도 의사, 코미디언, 교사, 패션 디자이너 등 영화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직업을 거쳐 영화감독이 된 이들이 존재한다. 삶의 어떤 분야에서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온 경험은 결국 영화에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가 아닌 다른 분야의 직업을 거쳐 영화감독이 된 이들의 대표작을 살펴보자.

 

의사에서 감독으로,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2>

조지 밀러 감독(가운데)과 <매드 맥스> 3부작의 ‘맥스’ 멜 깁슨(왼쪽),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맥스’ 톰 하디(오른쪽), 이미지 출처 – 링크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조지 밀러 감독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다친 스턴트맨을 직접 고쳐줬다는 일화까지 있는 의사 출신이다. 의사로 일하면서 쓴 시나리오로 찍은 데뷔작 <매드 맥스>(1979)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면서 <매드 맥스2>(1981), <매드 맥스3>(1985)까지 후속작을 연달아 연출한다. <매드 맥스>가 맥스라는 인물이 어떻게 미쳐가는지에 대한 작품이라면, <매드 맥스2>는 맥스가 세상과 투쟁하는 모습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문명이 무너지고 황폐해진 미래, 살아남은 이들은 한정된 연료를 두고 싸운다. 맥스(멜 깁슨)는 연료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중에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기로(브루스 스펜스)를 붙잡는다. 기로는 맥스에게 연료가 많은 곳을 알려주고, 도착한 곳은 약탈자들의 소굴이다. 맥스는 약탈자들에게 약탈당하고 죽어가는 이를 발견하고, 그에게 연료를 받기로 한다. 연료를 받으러 간 곳은 약탈자들에게 대항하는 세력들의 요새로, 맥스는 연료를 조건으로 그들의 일에 얽히게 된다.

<매드 맥스2> 트레일러

<매드 맥스> 시리즈는 70~80년대 호주 B급 장르영화를 일컫는 ‘오즈플로이테이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 붕괴하고 황폐해진 미래를 그려낸 세계관이 인상적인 시리즈로, 황량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후대의 많은 영화가 <매드 맥스>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 세 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매드 맥스2>는 이러한 세계관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로 조지 밀러 감독을 처음 만난 관객이라면, 80년대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매드 맥스2>의 연출을 보며 만족할 수 있을 거다.

 

코미디언에서 감독으로, 기타노 다케시의 <소나티네>

기타노 다케시 감독, 이미지 출처 – 링크

기타노 다케시는 연기와 연출을 겸하는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다. 일본 최고의 개그맨으로 활동 중이던 기타노 다케시는, 자신이 출연한 작품의 감독직이 공석이 되면서 우연히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그의 감독 데뷔작 <그 남자 흉폭하다>(1989)는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를 잊게 할 만큼, 무표정한 인물을 통해 차가운 폭력을 보여준다. <소나티네>(1993)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세계를 함축하는 작품으로,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부터 유머와 폭력이 모두 담겨있다.

‘무라카와’(기타노 다케시)는 계속된 야쿠자 생활에 지쳐간다. 두목의 명령으로 오키나와로 향한 무라카와는 별 탈 없을 거라는 두목의 말과 달리 계속 습격을 받는다. 무라카와는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인적이 드문 해변 근처로 피한다. 그곳에서 무라카와는 부하들과 함께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낸다.

<소나티네> 트레일러

기타노 다케시에게 바다는 특별하다. <소나티네>에서 오키나와의 바다는 무라카와를 아이처럼 만드는 곳이다. 무라카와는 바다에서 오랜만에 웃으며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만 이것이 일시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폭력이라는 파도에 휩쓸린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 바다가 자주 등장하는 건, 바다가 삶과 죽음의 속성을 모두 품고 있어서일까?

 

교사에서 감독으로, 신수원의 <명왕성>

신수원 감독, 이미지 출처 – 링크

<다섯은 너무 많아>(2005)의 안슬기 감독과 <버닝>(2018)의 이창동 감독 등 국내에는 교사 출신 감독이 몇 명 존재하는데, <레인보우>(2010)로 데뷔하고 <마돈나>(2014), <유리정원>(2017) 등을 연출한 신수원 감독도 교사 출신이다. 신수원 감독의 연출작 중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명왕성>(2012)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을 받은 <명왕성>은 입시와 관련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현실을 그려낸다.

명문 사립고로 불리는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유진’(성준)이 죽은 채 발견된다. 유진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김준’(이다윗)이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풀려난 김준은 유진이 속해있던 스터디 그룹 ‘토끼사냥’의 멤버들을 찾아가고, 직접 만든 사제폭탄으로 인질극을 벌인다. 김준이 인질극을 벌이는 건 스터디 그룹 ‘토끼사냥’과 관련한 진실 때문이다.

<명왕성> 트레일러 

<명왕성> 속 입시를 앞둔 학생들의 성적 경쟁은 영화적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성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학생들에게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성적이 모든 걸 용서하고 결정 짓는 사회적 분위기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명왕성>이 씁쓸한 영화인 이유는 성적을 둘러싼 경쟁이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명왕성>이 그려낸 잔인한 현실이 얼마나 과장 되었는지를 논하기 이전에, 등수가 모든 걸 결정 짓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방안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패션 디자이너에서 감독으로,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

톰 포드 감독, 이미지 출처 – 링크

영화와 패션, 둘 중 하나라도 관심이 있다면 톰 포드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거다. 톰 포드는 구찌를 거쳐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톰 포드’를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두 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싱글 맨>(2009)과 <녹터널 애니멀스>(2016)는 각각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고, <녹터널 애니멀스>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미술관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는 ‘수잔’(에이미 아담스)은 남편 ‘허튼’(아미 해머)과 호화로운 집에 살고 있지만, 재정 상태는 위험하고 남편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수잔에게 전 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가 자신이 쓴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을 보낸다. 수잔은 소설에 몰입한 채 소설 속 인물을 상상하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녹터널 애니멀스> 트레일러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은 ‘야행성 동물’을 뜻한다. 에드워드가 쓴 소설 제목이자,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붙여준 별명이기도 하다. 수잔 입장에서는 에드워드가 지금까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게, 그 소설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게 복잡한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소설을 쓰거나, 그런 소설을 받게 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 순간의 감정은 수잔이 눈여겨보는 어떤 현대미술 작품보다도 복잡하지 않을까?

 

Writer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용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