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도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었다. 역병 의사(Plague Doctor)라 불린 이들은 새의 부리처럼 생긴 뾰족하고 기다란 마스크와 온몸을 둘러싸는 검은 망토를 입고 전염병에 걸린 환자를 돌보았다. 이들은 마스크와 지팡이로 환자와의 지나친 접근을 막았고, 마스크 내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약초 냄새로 자신이 감염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 하였다. 오늘날 마스크나 방호복과 유사한 기능을 한 셈이다.

단편 애니메이션 <The Plague Doctor>(2012)

유럽의 첫 판데믹이라 할 수 있는 전염병은 6세기 비잔틴제국 시대의 'Plague of Justinian'으로, 두 세기에 걸쳐 퍼지며 최대 5,000만명이 사망하였다. 가장 심각한 전염병은 14세기의 흑사병으로, 희생자의 시신이 검게 변한다고 하여 'Black Death'로 불렸다. 중세 도시들은 이때부터 전염병 전문 의사를 고용하여 환자의 치료나 유언의 기록, 시신의 부검까지 맡겼다. 처음에는 비교적 전문성이 뒤떨어지는 의사나 일반인들이 이 일을 맡았으나, 갈수록 전염병에 관한 기초 지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1630년에는 프랑스 의사 샤를 드 롬(Charles de Lorme)이 나폴리에서 베네치아 축제를 관람하다가 흑사병 전문 가면과 방호복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중세의 역병 치료와 전문 복장을 시연하는 영상(스미소니언 채널)

역병 의사들은 외롭고 힘든 직업이었다. 혹시 모를 감염의 위험을 막기 위해 일반인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으며, 오늘날과 같이 감염 증상을 보일 경우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하기도 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역병이 창궐하는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일했다. 이들 중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은 예언가로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흑사병으로 아내와 자녀를 잃자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며 역병 전문 의사로 명성을 떨쳤다. 후일 인류에게 대역병의 재앙이 닥칠 것이라 예언하기도 했다.

단편 애니메이션 <Memento M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