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배우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가 지난달103세 나이로 타계했다. 맏아들인 마이클 더글러스가 이제 76세의 노배우가 되었을 만큼, 그는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장수를 누렸다. 1916년 가난한 러시아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터프가이' 이미지의 할리우드 배우 겸 제작자로 100여 편의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1991년에는 헬리콥터 사고로, 1996년에는 뇌졸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연기를 놓지 않았던 그는, 지난 2월 5일 베버리 힐스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배우 커크 더글러스의 영화 출연 장면

194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배우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장편 시대극 <스파르타쿠스(Spartacus)>(1960)다. 당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1959)의 주인공 배역이 라이벌 찰턴 헤스턴에게 낙점되자, 그는 하워드 패스트의 소설 <스파르타쿠스>를 읽고 직접 제작에 나섰다. 당시에는 초대형 예산인 1,200만 달러의 제작비와 1만 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동원한 화제작이었다.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어 박스오피스에서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아카데미 4관왕이 되었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영화 전편을 보면서 이 영화에 따라다닌 논란과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삭제

커크 더글러스는 영화 <벤허>와의 라이벌 의식이 발동하여 제작자로서 영화 제작의 전 과정에 간여했다. 감독으로 발탁되었던 안소니 만(Anthony Mann) 감독은 그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촬영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커크 더글러스는 영화 <Paths of Glory>(1957)에서 인연을 맺은 30대 신예 감독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급히 고용했다. 두 사람 역시 시나리오에 이견을 보였으며,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후일 명장에 올라선 큐브릭 감독은 자신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영화가 아니라며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를 제외하여 눈길을 끌었다.

영화 <스파르타쿠스>(1960) 1부

 

할리우드의 매카시 광풍을 끝낸 영화

영화의 원작을 쓴 작가 하워드 페스트(Howard Fast)나 시나리오를 쓴 돌턴 트럼보(Dalton Trumbo) 모두 할리우드의 매카시즘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던 인물이었다. 가명을 쓰면서 영화 일을 하던 돌턴 트럼보는, 이 영화의 제작 크레딧에 가명을 올리려 했으나, 커크 더글러스의 주장으로 실명을 쓰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할리우드의 해묵은 블랙리스트 파동을 끝내는 원동력이 되었고, 커크 더글러스의 용기는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1991년 미국작가협회상을 받으며 다시 한번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영화 <스파르타쿠스>(1960) 3부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영화 후반부, 포로로 잡힌 노예 병사들에게 스파르타쿠스가 누구인지 고발하면 살려주겠다고 로마 군대가 회유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라며 이를 거부한다. 시나리오를 쓴 달톤 트럼보는 할리우드의 매카시 광풍을 반대하는 이들의 연대감을 표현한 것이라 설명했다. 이 장면은 불의에 항거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고, 후일 영화나 드라마 혹은 광고에서 자주 패러디되는 명장면이 되었다.

영화 <스파르타쿠스>(1960) 3부

커크 더글러스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함께 한 두 작품 <영광의 길(Paths of Glory)>(1957), <스파르타쿠스> 모두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리스트에 포함되었고, 유튜브에서 전편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