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털사(Tulsa)>(1963~1972) 중 <무제>(1963)

‘청춘’의 이미지를 촬영한 사진을 본다고 하자. 푸르고 싱그럽고, 곧 스러질 젊음이 매끄러운 피부로 찰나 속에서 환히 빛나는 모습일 것 같다. 마치, 라이언 맥긴리의 요즘 사진처럼? ‘청춘’이라는 말.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춘인가? 이것은 젊은이를 부르는 말이다. 아마도 10대부터 20대 정도까지. ’청춘’이라는 말로 이들을 규정하는 것은 온당한 일일까. 젊은이들 스스로 자신을 지칭할 때 ‘청춘’이란 말을 서슴없이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니다. ‘청춘’이란 단어 속에 담긴 온갖 고결하고 빛나는 의미들은 결국 상대적으로 쓰인다. ‘청춘’이란 말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정작 청춘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청춘, 어린 사람을 아름답게 부르는 말, 젊은 시절을 추억할 때 쓰는 말. 어쩌면 너무 고약한 말일지도 모른다. 집 없고, 돈 없고, 직장 없고, 애인 없고, 괴롭혀지고 굴욕적인 경험을 하면서 힘들게 사는 건 다 똑같은데 여전히 젊음은 예쁘고 싱그럽기만 해야 하나. 그러니 지금, 2017년 2월의 토요일 밤 서울 홍대 앞으로 나가서,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어떤 젊음을 붙잡고 감히 청춘이라 보기 좋다는 말을 하려는 연장자가 계신다면 한사코 말리겠다. 화난 사람은 무섭다. 하지만 화난 젊은이는 더 무섭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타협과 체념을 배우는 일이라면, 그리로 향하는 길에는 분노와 눈물이 가득할 것이니까. 어떤 운 좋은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사랑을 제일 먼저 배운다. 그 외의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도 금지와 억압을 가장 먼저 배울 것이다. 더 운이 나쁘다면 폭력과 공포, 역겨움도. 어떻게 젊음이 아름답기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랫동안 ‘청춘’으로서의 젊음은 극진히 찬양받아 마땅한 어떤 장르처럼 취급되어 왔다.

사진집 <털사(Tulsa)> 중 <무제>

‘유스컬쳐(Youth Culture)’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작가 래리 클락(Larry Clark, 1943~)은 운이 좋지 못한 쪽에 속했다. 그는 1943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작은 도시 털사(Tulsa)에서 태어났다. 그가 기억하는 고향은, 사람들이 빤히 보는 집 앞마당에서 부모가 아이들을 때리던 곳이다. 학교에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조용한 이웃 중 누구도 그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자신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은 계기도 그는 부정적으로 회고한다. 그의 부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갓 태어난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 래리 클락의 나이는 15세 정도에 불과했지만, 부모의 사업을 도와야만 했다. 이렇게 잡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어느 날, 그는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첫 번째 책 <털사(Tulsa)>는 소도시 10대들의 충격적인 사생활을 담은 사진집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들은 마약을 주사기로 주입하고, 담배를 피우고, 섹스한다. 전문 모델이 아닌 현실적인 이들의 육체와 거기에 담긴 내용, 흑백의 스냅숏으로 10여 년간 기록한 사진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고, 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1977~), 대쉬 스노우(Dash Snow, 1981~2009, 뉴욕을 배경으로 주로 폴라로이드를 사용하여 직설적인 사진을 촬영), 각본가이자 연출가인 하모니 코린(Harmony Korine, 1973~)과 그의 오랜 동반자였던 클로에 세비니(Chloë Sevigny, 1974~), 감독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1952~) 등은 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거나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영화 <키즈(Kids)>(1995) 예고편

다큐멘터리적, 자서전적 형식을 갖춘 스냅숏 미학의 대표적 작가로 사람들은 래리 클락과 또 다른 미국 사진가 낸 골딘(Nan Goldin, 1953~)을 함께 꼽는다. 자기 파괴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자신과 주변의 친구들을 포함한 폐쇄적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자전적 경향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낸 골딘이 오랜 시간 동안 이 공동체를 추적하는 작업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내적인 주제들을 시간에 따라 점차 변화시켜 온 반면, 래리 클락은 자신의 트라우마적 경험을 놓지 않고 젊은이들의 문화와 그룹, 이들의 생태를 재현하는 데 집중해왔다. 때문에 래리 클락의 감독 데뷔작 <키즈(Kids)>(1995)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뉴욕 십대들의 내밀한 이야기이지만, <털사>의 변주이기도 하다. 최근작인 <네이키드 청춘(The Smell of Us)>(2014)까지 그는 지난 20여 년간 9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옴니버스 형식으로 참여한 <디스트릭티드-제한해제(Destricted)>(2006)를 제외하면 모두 10~20대의 소외된 그룹을 다뤘다. <키즈>의 주인공 중 3명은 배경이 된 장소에서 직접 섭외한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래리 클락은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영화 외부에서부터 스케이트 보더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걸고 신뢰 관계를 쌓았다. 이 영화의 각본으로 21세에 영화계에 데뷔한 하모니 코린 또한 스케이트 보더로서 인사이더에 가까웠다(지금은 미국 인디 영화계의 대표적 감독이 된 하모니 코린이 청소년 주변을 배회하며 이들을 관찰하던 래리 클락에게 시나리오 한 편을 건넸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된다. <키즈>의 시나리오는 이후 래리 클락의 요구에 따라 새롭게 쓰인 것이다). <키즈>의 여주인공은 클로에 세비니가 맡았다. 사람들은 영화가 전달하는 구역질 나도록 현실적인 섹스와 약물, 폭력의 묘사에 경악했다. 그러나 래리 클락은 그 모든 묘사에 대해 이것이 현실이라는 말로 담담하게 답변한다.

영화 <불리(Bully)>(2001) 예고편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 영화는 <키즈>와 2001년 작인 <불리(Bully)>, <켄 파크(Ken Park)>(2002)다. 심지어 2013년 <마파 걸(Marfa Girl)>이 개봉했을 때에는, “마치 오래된 래리 클락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문구가 예고편 화면에 등장했다. 이들 영화에서는 젊은이들의 패션, 음악, 공간과 언어까지 섬세하게 되살아나 마치 이들의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같은 느낌마저 선사한다.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키즈>가 특별하고 ‘쿨한’ 경전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폭력의 문화사이기도 하다. <불리>는 실제 미국에서 일어난 10대들의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로, 교외 지역 청소년들의 모습을 담았고 <켄 파크>에서는 특히 어른들이 가하는 학대, 폭력을 주요하게 보여주었다. <털사>가 보여준 젊은이들의 충격적인 문화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상세하게 부연하는 듯한 어른들의 폭력과 유무형의 학대, 청소년들이 겪는 부조리와 억압이 러닝타임 내내 펼쳐진다. 영화가 끝날 즈음, 관객들은 이 충격적인 장면들에 어느새 익숙해져 지루함마저 느끼게 된다는 점에 깜짝 놀란다. 멀찌감치에서 어떤 포즈를 취하고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처음 이런 일을 겪는 사람처럼 매번 당황하거나 충격받지도 않지만, 뜨끔한 고통이 끈적하게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래리 클락은 그런 이상한 호흡법을 우리에게 가르쳤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들은 일반적이기보다 유별난 쪽에 가깝지만, 래리 클락의 호흡 속에서 이 또한 기이한 당위를 얻는다.

최근엔 여러 매체와 페인팅, 조각 같은 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소년과 소녀들의 사진을 촬영한다. 사진은 <무제>(2013)의 2014년 루링어거스틴(Luhring Augustine) 갤러리 <They thought I were but I aren’t anymore> 전 설치 광경.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했다

그러나 영화들이 유사한 주제를 반복하고 미성년자의 성적 행위와 신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늘 논란이 일어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후자의 논란에 대해서 작가는 이것이 현실이며 자신의 예술세계라는 말을 하며 다소 단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트라우마적인 십대의 경험을 지녔음에도, 그 나잇대의 사람들에게 강렬한 매혹을 느끼고 있음은 작가의 약점이자 강점을 만든다. 누구보다도 이들에 대한 이해가 깊지만, 그래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세계에 영원히 갇힌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래리 클락은 별난 사람이고 전문가다. 1990년대의 ‘유스컬쳐’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래리 클락에게 길을 묻는다. 그 역시 헤매고 있는 것 같지만, 적어도 그는 무턱대고 청춘 운운하기보다 같이 욕지거리를 하며 우리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쪽을 택한다.

영화 <키즈> 촬영 사진 <무제>(1995). ⓒLarry Clark and Simon Lee Gallery, London/Hong Kon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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