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과 1930년대의 미국 뉴욕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성기를 누렸다. 맨해튼의 웨스트 42번가와 53번가에 걸친 브로드웨이에는 수많은 뮤지컬 극장이 들어섰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배운 음악가들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자신의 창작곡을 팔기 위해 앞다투어 작곡을 시작했다. 성공한 뮤지컬은 이내 할리우드의 영화로 제작되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시기에 작곡된 명곡들은 ‘Great American Songbook’ 이라 불렀고, 곧 재즈 클럽에 서는 뮤지션들의 레퍼토리에 올랐다. 당시를 대표하는 작곡가 네 명과 그들의 명곡을 하나씩 들어 보았다.

 

어빙 베를린(Irving Berlin)

‘White Christmas’로 가장 많이 알려진 어빙 베를린은, 다섯 살에 제정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0대에 처음으로 자신의 곡을 33센트에 팔았고, 그의 생애에 작곡한 곡은 1,500여 곡에 이른다. 악보를 쓸 줄 몰랐고 피아노 연주도 서툴렀지만, 특유의 쉽고 간결한 멜로디로 미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브로드웨이의 극장을 소유하면서, 25곡을 음악 차트 1위에 올렸다. ‘God Bless America’ 역시 그의 작품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101년의 장수를 누렸다.

영화 <Top Hat>에 수록한 ‘Cheek to Cheek’. 음악차트 5주간 1위에 오른 곡이다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그의 부모 역시 제정 러시아 출신의 이민자였다. 그는 음악 퍼블리싱 회사에 다니면서 작사가였던 형 이라(Ira)와 함께 브로드웨이 쇼를 위한 작곡을 시작했고, 스물 여섯의 젊은 나이에 <Rhapsody in blue>를 작곡하여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회심의 역작 <Porgy and Bess>(1935)가 상업적으로 실패하면서, 뉴욕 생활을 접고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영화음악을 시작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매진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악성 뇌종양으로 짧은 39년의 생을 마감했다.

뮤지컬 <Porgy and Bess>에 삽입된 ‘Summertime’

 

콜 포터(Cole Porter)

인디아나 주의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투신했다. 젊은 시절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사치스럽게 생활했고, 베니스에서는 월세 7,000만 원의 저택(Ca’ Rezzonico)에서 지냈다. 그는 다른 작곡가와는 달리, 작곡과 작사를 모두 직접 했다. 하지만 1937년 승마 중 심각한 부상을 당해 이후의 뮤지컬은 부진을 면치 못했지만, 1949년 <Kiss Me, Kate>로 재기하며 토미상을 안았다. 재치 있고 도회적인 가사로 유명하여 가장 많은 재즈 스탠더드로 남긴 작곡가였다.

뮤지컬 <Gay Divorce>에 수록한 ‘Night and Day’(1932). 가장 많이 녹음된 재즈 스탠더드 중 하나다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

유명한 브로드웨이 작곡 콤비 로저스-하트

부유한 독일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로렌즈 하트(Lorenz Hart)와 함께 작곡 콤비로 유명하다. 대학 졸업 후 뮤지컬 작곡에 투신하여, 약 60여 년 동안 모두 43편의 뮤지컬을 기획했고 약 900곡을 작곡하였다. 그는 약칭 EGOT라 불리는, TV의 에미(Emmy), 음악의 그래미(Grammy), 영화의 오스카(Oscar), 뮤지컬의 토니(Tony) 상을 모두 수상하였으며, 퓰리처상까지 수상하여 다섯 분야의 상을 모두 수상한 두 명중 한 명으로 남았다. 뮤지컬 원작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에델바이스’나 ‘도레미’ 역시 그의 작곡이다. 현재도 브로드웨이에는 그의 이름을 딴 리처드 로저스 극장이 성업 중이다.

영화 <Pal Joey>(1957)에 수록한 ‘Bewitched, Bothered & Bewilde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