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관심사는 ‘해체’였다. 리얼리즘의 재현 미학과 모더니즘의 엘리트 취향을 부정하고, 자유롭게 해체, 재구성해 한계에 달했다고 평가받는 예술의 창조성과 잠재성을 획득했다. 1990년대 초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가 절정에 달한 시점 태어난 안토니아 그루버(Antonia Gruber)는 2010년대 들어 ‘얼굴’을 해체한다. 중심을 교란하고 부분을 왜곡하는 그의 이미지 편집은 우리의 감각을 뒤흔들고, 얼굴은 오브제로서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획득한다. 

안토니아 그루버 ‘자화상’

 

<T. T. C. Serie>

디지털 흑백 인물 사진에 아날로그적인 조작을 가해, 마치 피카소(Pablo Picasso)의 초상화 같은 효과를 준 이 시리즈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만이 아니라 고전적인 인물 사진과 패션 사진의 경계, 현실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문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만치 짓눌린 이미지는 외부의 압력에 짓이겨진 자아를, 얼굴의 뒤틀린 형체와 불안한 눈빛은 인물의 내적 갈등과 혼란을 드러낸다. 이는 육체적, 정신으로 취약하기 그지없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이기도 하다.

 

<Artvertising>

다른 연작에서도 그의 동일한 탐구 정신과 방법론을 살펴볼 수 있다. 광고와 결합한 아트를 뜻하는 ‘아트버타이징’이라는 명명이 무색하게, 이 시리즈의 이미지들 역시 목표로 삼는 명확한 메시지와 타깃이 훼손되어 있다. 시리즈는 디지털 이미지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변형하며, 사람의 얼굴을 넘어 그 대상을 다양하게 포착함으로써 더욱더 광범위한 주제를 포괄한다. 이틀 테면 한 개인의 내적 취약성만이 아닌 공적, 사적인 삶이 포함된 우리의 일상,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같은 것들 말이다.

 

1993년, 독일 렘샤이트(Remscheid)에서 태어난 안토니아 그루버는 본에 있는 알라누스 대학(Alanus Hochschule für Kunst und Gesellschaft)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베르기슈글라드바흐 아트스쿨에서의 인턴쉽을 거쳤고, 풍경 사진작가로 유명한 마이클 라이쉬(Michael Reisch)와 아동 사진작가 아킴 리포스(Achim Lippoth)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6년 이후 본격적인 프리랜스 작업을 시작하며 그는 독일 전역 여러 결혼식에 참석해 사람들의 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했다. 이후 담아낸 얼굴과 기존 이미지에 변형을 가하는 방식을 통해 그만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에 <Portraits>로 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Portraits>

 

모든 이미지 © Antonia Gruber, 출처 - 안토니아 그루버 홈페이지

 

안토니아 그루버 홈페이지

안토니아 그루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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