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한다면 결국 서부극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의 역사는 서부극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서부극의 영향력이 크다. 서부극은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말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주를 거듭해 나간다. 존 포드와 하워스 혹스와 같은 거장들이 만든 걸작 서부극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서부극을 만들어왔고, 덕분에 서부극은 가장 수명이 긴 장르가 됐다.

서부극의 시작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21세기 도시의 감독들은 매혹적인 서부극을 만들고 있다. 고전 서부극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2010년 이후 등장한 매력적인 서부극을 살펴보자.

 

<더 브레이브>

열네 살 소녀 ‘매티 로스’(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간 ‘톰 채니’(조쉬 브롤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연방 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제프 브리지스)을 고용한다. 이들에게 톰 채니를 추적하는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맷 데이먼)까지 합류하지만, 셋의 호흡은 썩 좋지 않다. 그러나 이들 모두 각각의 목적이 있기에 동행을 이어나간다.

코엔 형제는 제8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와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카우보이의 노래>(2018) 등 서부극에 대한 애정을 보여온 감독이다. <더 브레이브>는 미국의 작가 찰스 포티스가 1968년에 발표한 소설 <True Grit>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존 웨인이 주연한 두 편의 서부극 <진정한 용기>(1969), <집행자 루스터>(1975)도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더 브레이브> 트레일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차가운 서부극이라면, <더 브레이브>는 좀 더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서부극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세 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진정한 용기를 발휘하는 과정에 대한 작품이다. 세 사람은 서로를 위기에서 구해주며 동행한다. <더 브레이브>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과연 험난한 세상에서 이렇게 따뜻한 이들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냐는 거다. <더 브레이브>는 볼 때는 따뜻하지만 보고 난 뒤에는 퍽퍽한 현실을 떠올리는, 서부를 배경으로 한 동화이자 블랙코미디다.

 

<슬로우 웨스트>

현상금 사냥꾼이 넘쳐나는 19세기, ‘제이’(코디 스밋 맥피)는 아버지와 함께 떠난 여자친구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를 찾아 스코틀랜드에서부터 미국 콜로라도까지 온다. 현상금 사냥꾼 ‘사일러스’(마이클 파스벤더)는 우연히 만난 제이를 로즈에게 데려다주기로 하고 돈을 받는다. 현실감각보다 낭만이 앞서는 제이와 지극히 현실적인 사일러스는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동행을 시작한다.

<슬로우 웨스트>는 제31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감독 존 맥클린은 뮤지션 출신이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2000)에서 레코드 가게에 어떤 곡이 흘러나오자 손님들이 누구의 곡인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곡은 베타밴드(betaband)의 ‘Dry the rain’으로, 베타밴드의 리더가 바로 존 맥클린이다.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던 베타밴드처럼, 존 맥클린은 신선한 지점으로 가득한 서부극을 만들었다.

<슬로우 웨스트> 트레일러

사랑을 찾아 먼 대륙까지 온 제이의 마음은 낭만으로 가득 차 있다. 위험이 넘치는 시대에 사랑과 낭만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결국 제이가 가진 사랑의 무모함이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에서 가장 큰 돌파구가 된다. 그런 제이의 태도는 결국 사일러스에게 큰 영감을 준다. 위험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방법은 마음 안에 아름다움을 키우는 것뿐이다. <슬로우 웨스트>는 죽음이 난무하지만, 끝나고 나면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로데오 카우보이>

로데오 카우보이 ‘브래디’(브래디 잰드로)는 낙마로 인해 머리를 크게 다친다. 평생 말을 조련하고 로데오만을 생각하며 살던 브래디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한다. 동료 카우보이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다시 로데오를 하라고 하고, 가족은 만류하는 등의 상황 속에서 브래디는 결국 어떤 결론을 낸다.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작품으로, 미국 와이오밍주에 있는 카우보이들과 지내며 느낀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비전문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사용한다. 클로이 자오는 마블 스튜디오가 2020년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더 이터널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촬영을 준비 중이다. 어쩌면 마블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가장 시적인 작품이 될 지도 모른다.

아파서 쉬고 있는 브래디에게 동료 카우보이들은 말한다. 아파도 얼른 돌아와야 한다고. 생계유지를 위해 마트에서 일하는 브래디에게 동네 사람은 말한다. 너는 이 일보다 카우보이가 더 어울린다고. 브래디의 친구 레인은 로데오 카우보이로 활동하다 황소에서 떨어져서 전신 마비로 손가락만 간신히 움직이는데, 병문안을 온 브래디에게 손가락으로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로데오 카우보이> 트레일러

나의 쓸모란 무엇인가. 평생 로데오 카우보이를 꿈꿨지만, 그 일이 불가해질 때 나의 쓸모는 사라지는 걸까. 설마 로데오 카우보이를 그만두려고? 넌 말과 함께할 때 최고라고. 어떤 불가항력으로 꿈에 닿기 힘들어진 이에게, 이런 말들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된다. 꿈을 포기하는 것도 꿈을 좇는 것만큼 고귀한 일임을 누군가는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시스터스 브라더스>

골드러시가 붐을 일으키는1851년, ‘찰리’(호아킨 피닉스)와 ‘일라이’(존 C.라일라) 시스터스 형제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고 있다. 동생 찰리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일라이는 동생과 호흡을 맞추고는 있지만 좀 더 안정적인 삶을 꿈꾼다. 시스터스 형제는 금과 관련된 비밀을 아는 ‘허먼 웜’(리즈 아메드)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허먼 웜을 쫓으며 행방을 알려주는 동료 ‘존 모리스’(제이크 질렌할)의 도움을 받아 추격하지만 점점 일이 꼬인다.

<시스터스 브라더스>는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작품으로, <디판>(2017)과 <예언자>(2015)로 칸영화제에서 각각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연출한 서부극이다. 연금술에 대한 환상, 아직 사람들에게 낯선 치약과 칫솔, 고급호텔에만 설치된 최신식 화장실 등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디테일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시스터스 브라더스> 트레일러

<시스터스 브라더스>의 배경에는 금이 있다. 금을 찾아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움직이던 시대였고, 시스터스 형제도 그 영향력 안에 있다. 황금을 만드는 연금술을 믿던 시대에 시스터스 형제가 찾은 건 결국 금이 아니라 서로의 의미이다. 두 사람의 거친 여정은 결국 서로의 진심에 닿기 위한 길이었다. 이들이 찾은 의미와 금을 저울 위에 둔다면, 저울은 망설임 없이 의미에 훨씬 더 큰 무게가 있다고 판단해줄 거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