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웃기는 것은 울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우연히 발생한 돌발적 상황에서의 웃음이 아니라, 작정하고 누군가를 웃기는 일은 더욱더 그렇다. 소재, 상황, 타이밍은 물론 상대의 정서적 상황까지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날 선 감각으로 상대와 주변을 살피지 않으면 식상하거나, 어이없거나, 싱거운 상황이 연출되기 딱 좋다. 그렇다면 사람을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어떨까. 식상하지도, 어이없지도, 싱겁지도 않은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대상을 관찰하고 소재, 상황, 타이밍을 준비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만든 영화가 있다. 그 영화들은 관객들을 착각하게 만들었다가, 긴장과 이완을 오가며 무방비 상태가 된 틈을 타 충격에 빠뜨려 버린다. <빅쇼트>로 관객들의 뒤통수를 친 <SNL> 작가 출신 아담 맥케이 감독과 <겟 아웃>으로 공포 영화의 새 장을 연 코미디언 출신 조던 필 감독. 그들이 올해 나란히 신작 개봉을 앞두고 있다.

 

SNL 작가였던 아담 맥케이 감독

<빅쇼트> 촬영 현장의 아담 맥케이 감독

전 세계에 경제적 재난을 몰고 온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경쾌한 재즈 음악을 연상시키는 프리스타일 연출법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아담 맥케이 감독. 그는 태초에 SNL 크루로 지원했다가 작가로 발탁된 전력이 있다. 심지어 작가 데뷔 1년 만에 수석 작가 제안을 받았다고 하니 그는 떡잎부터 달라도 한참 달랐던 게 분명하다. 그는 좋은 쇼를 위한 두 가지 조건으로 1. 출연진, 2. 영리하고 주제가 있는 유머를 꼽았다. 또한 “수석 작가로서의 첫 해에는 ‘포맷을 망가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빅쇼트>는 어떤가. 이 영화는 1. 크리스찬 베일, 스티브 카렐,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들과 2. 세계 경제 붕괴를 앞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눈 앞의 이익만을 쫓았던 월스트리트를 향한 통쾌한 한 방을 장전해 관객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여기에 마치 한 편의 글에 각주를 달듯, 마고 로비, 셀레나 고메즈와 같은 인물들이 깜짝 등장해 경제 용어와 당시의 ‘상황에 대한 해설을 보태는 기상천외한 구성이 영화에 팝한 느낌을 더한다.

배우들의 연기에 이끌려 독특한 편집으로 유쾌하게 전개되는 극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결말을 눈앞에 두게 되는데, 그제야 관객들은 ‘이거 뭔가 잘못돼가고 있어…’라는 불길한 기운과 함께 충격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빅쇼트>에 대해 쓴 글에서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종류의 수작’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진 주제와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 모두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코미디언이었던 조던 필 감독

2017년 미국의 시상식 시즌, <겟 아웃>을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은 자신의 트위터에 “<겟 아웃>은 다큐멘터리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당시 <겟 아웃>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코미디&뮤지컬 부문 후보에 올라 분란을 겪었고, 조던 필 감독 자신도 <겟 아웃>의 장르에 대해 무수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 이면에는 조던 필 감독이 키건 마이클 키와 함께 ‘키&필’이라는 코미디 듀오로 꽤 오랜 시간 활약했던 사실이 깔려 있다. Mad TV라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해 Comedy Central 채널에서 <키&필>이라는 단독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총 5개의 시즌 동안 53개의 에피소드를 선보였고, Comedy Central의 유튜브 채널에서 60억이 넘는 뷰를 기록한 것은 물론 미국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피버디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키&필’에서 조던 필 감독은 ‘흑인은 먹지 않는 좀비’와 같은 아이디어로 미국 문화, 인종 문제 등을 코미디와 호러를 넘나들며 풍자하는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첫 연출작이자 그에게 아카데미 각본상을 안겨준 <겟 아웃>에 대해 조던 필 감독은 “코미디에서 배운 모든 것을 적용했다”라고 밝혔다. 코미디와 호러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던 필 감독에 의하면 그 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기본으로 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긴장과 이완, 그리고 다음에 뭐가 올지 예측할 수 없는 기대와 두려움. 관객들은 반복되는 패턴에 안심하다가도 그것이 깨지는 순간 박장대소하거나 혹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겟 아웃>을 보며 인종차별 메시지에 집중하던 관객들은 예상과 전혀 다른 장면들과 마주하며 상상의 꼬리를 물게 된다.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친구 집에 초대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간단명료하게 설명되는 야기의 깊숙한 곳에는 조던 필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실마리를 제공하는 복선들이 가득 숨겨져 있다. 한 국내 관객은 영화를 본 후 영화 속 복선을 정리했는데, 이 글과 거기에 달린 430개의 댓글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들이 선보인 올해 신작

조던 필의 <어스>

아담 맥케이 감독과 조던 필 감독은 각각 올 봄 신작을 공개했다. 먼저, 3월 27일에는 조던 필 감독의 <어스>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개봉했다. 당시 이 영화는 ‘그 무엇도 상상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영화’라고 소개되며 최소한의 정보와 함께 충격적인 포스터와 예고편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던 필 감독 또한 “<겟 아웃>과는 전혀 다르고, 인종 차별에 대한 메시지도 약하다. 무섭고, 아름답고, 우아한 이야기다. 상상력을 열어줄 것이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기대와 두려움을 품게 했다. 아직 못 본 이라면, 이 영화가 어떻게 관객들을 긴장, 이완시키고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빠지게 만들지 직접 확인해보자.

<어스> 예고편

 

아담 맥케이의 <바이스>

이어서 4월 11일에 개봉한 <바이스>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이미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화제작이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6개 부문 노미네이트되고, 크리스찬 베일이 남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아담 맥케이 감독과 함께 <빅쇼트>에서 합을 맞춘 크리스찬 베일과 스티브 카렐이 가세했고, 브래드 피트 또한 제작자로 나서 치밀하고 영리하게 설계된 두 번째 판을 선보인다. 이번 판에 소환된 이는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라는 인물로, 아담 맥케이 감독이 왜 대통령도 아닌 부통령을 스크린으로 불러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부터 관객들의 기대는 시작된다. 월스트리트에서 백악관으로 조준점을 맞춘 그의 이야기가 어떤 진실을 그려낼지, 이제 그가 짜 놓은 판에 기분 좋게 걸려드는 것만이 남았다.

<바이스> 예고편

 

Writer

모든 것을 넓고 얕게 좋아하는 영화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