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영화는 또렷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귓속말을 통해, 쪽지에 적힌 미스터리한 문구를 통해 짙은 잔상을 남기는 영화 두 편을 만나보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 – 귓속말

‘밥 해리스’(빌 머레이)와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도쿄로 여행 온 미국인이다.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낯선 문화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밥 해리스,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왔지만 외로움과 불확실한 앞날에 대해 번민하던 샬롯.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 7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특별한 감정을 쌓는다. 말 안 통하는 낯선 도시의 공간은 소외감을 증폭시키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더욱 깊은 공감과 미묘한 감정의 끌림을 느낀다.

시종 별다른 정점에 다다르지 못하는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닿을 듯 말 듯 끝내 가까워지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 부유하는 조심스러움, 망설임, 애틋함, 연민 등의 흐릿한 정서들은 영화 내내 이어지며 보는 이의 마음을 졸인다.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며 육체가 아닌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것, 두 사람이 보여주는 사랑의 형태는 이런 것에 기운다. 영화의 마지막, 밥과 샬롯은 헤어지면서 포옹과 함께 드러나지 않은 귓속말을 나눈다. 밥이 샬롯에게 무슨 말을 남겼을까 하는 의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픈되지 않은, 이 미스터리한 대화의 내용이 영화의 결정적 퍼즐이 되지 않는 까닭이다. 오히려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떨림, 절제된 감정 묘사 같은 것들이 두고두고 짙은 잔상과 여운을 남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엔딩 장면

 

 

<고스트 스토리>(2017) – 쪽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은 ‘C’(케이시 애플렉)가 유령이 되어 옛 연인 ‘M’(루니 마라)의 집을 배회하는 이야기. 언뜻 뻔하고 상투적인 소재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독창적이고 신선한 방식으로 사랑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그려낸다. 유령이 된 C는 뒤집어쓴 하얀 천이 거뭇거뭇해질 때까지 한 공간을 배회한다. M이 이사를 하고, 다른 가족이 들어와 살고, 또다시 떠나고, 시간이 흘러 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빌딩이 서기까지…. C는 무딘 시간을 견디며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나중에 이르러서는 과거의 기억마저 흐릿해진다). 영화는 시종 고요한 가운데 애잔하고 몽환적이며 아름답다. 무엇보다 특유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연출로 남겨진 자의 상실감과 슬픔을 오롯이 일깨운다.

영화의 엔딩 장면이 화제가 됐다. M은 집을 떠나기 직전 쪽지에 무언가를 써서 벽 틈새에 끼워두는데, C는 문득 쪽지를 꺼내려고 벽을 파기 시작한다. M이 쓴 쪽지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그가 떠난 후에도 줄곧 집을 배회하던 C가 이승을 떠날 수 있게 됐는지 많은 관객이 궁금해했다. 당연히 영화는 이에 대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는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도 답을 모른다고 하며, 촬영 당시 루니 마라에게 아무 내용이나 생각나는 바를 적으라고 했다. 이 서늘하고 미스터리한 결말이 영화의 정서를 다시금 곱씹도록 만든다. 연인이 남기고 간 메시지를 얻기 위해 정처 없이 이승을 헤맨 C의 애잔한 노력이 잔상처럼 남는다. 케이시 애플렉은 러닝타임 대부분을 유령 옷차림으로 등장하는데, 뚫린 눈구멍만으로도 깊은 공허와 상실감을 완벽히 표현해낸다.

<고스트 스토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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