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학은 대상을 오롯이 물질적인 특징에 따라 분류하고 분류 결과를 고찰하는 방법론이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이 같은 유형학의 관점에서 여러 산업화의 결과물들을 주제로 한 사진을 찍어 독일 유형학 사진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가 되었다.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개인전에서의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 도미닉 아스바흐 via ‘Whitecube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뒤셀도르프에서 자란 구르스키는, 어릴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사진가였던 덕분이다. 에센 폴크방 예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20대 시절인 1980년대 초,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베허 부부(Bernd & Hilla Becher)를 만나 독일 유형학 사진의 경향을 따르게 된다.

‘Klausen Pass’(1983)
‘Essen’(1984)

구르스키의 초기 작업은 광활한 자연이나 일상의 풍경을 작품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그저 평범한 풍경으로 치부할 수 없는 특징이 있었다. 사진 속의 인간이 철저히 풍경 속 작은 일부로 묘사되는 것. 자연스럽기도 하고 어딘가 이질적이기도 한 그의 사진 경향은 이후 좀 더 정형화되고 현대사회의 문물을 대표하는 공간들의 유형성에 주목하면서 더욱 강조된다.

‘Montparnasse’(1993)
‘Union Rave’(1995)

그가 1992년 이후 작업한 사진들은 철저한 디지털 보정을 통해 기계의 눈으로만 포착 가능한 세계를 담아낸다. 그러기에 이전보다 더욱더 독특한 감상을 준다. 구르스키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입체적 세계를 광대한 평면으로 그리기 위해, 카메라 여러 대로 한 공간을 촬영하여 합성하는 방식을 썼다.

이렇게 확립된 구르스키 사진의 정형에는 일관된 구도가 존재했다. 사물이 배치되는 반듯한 수평과 수직 선상의 구도다. 그는 수평과 수직의 직선적 요소를 강조하는 반듯한 시각 구조 안에 배치된 사람과 사물의 일정한 배치와 반복된 형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Board of Trade 2’(1999)
’99 Cent’(1999)
’99 Cent II Diptych’(2001)

그가 1999년 내놓은 ‘99 Cent’는 숨 막히는 자본주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가로 약 3.3m, 세로 2m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사진에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할인상점 풍경이 담겨있으며, 사진 속 진열대에는 형형색색의 수만 가지 상품들이 빼곡히 정렬돼 들어차 있다. 구르스키는 “대량생산과 소비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를 표현하고자 이 사진을 찍었다.”며, “99센트 마트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99 Cent’와 이 사진의 연작 ‘99 Cent II Diptych’는 각각 한화 약 31억, 36억이라는 가격으로 경매 낙찰됐다.

‘Rhein II’(1999)

이후 2011년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르스키의 다른 작품 ‘Rhein II’가 한화 약 48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사진 경매 사상 최고가를 갱신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라인강의 한 장소가 날 매료시켰고 1년 6개월여의 고민 끝에 사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품을 통해 우리가 한 건물이나 한 장소에서 살고 있다고 이해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우주 속에서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는 한 행성에 살고 있음을 인지하게 만들고 싶었다.” –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라인강 II’ 작품 설명 중에서

‘Nha Thrang’(2004)
‘Pyeongyang I’(2007)

구르스키는, 이케아(IKEA)에서 판매될 대나무 가구를 조립하고 있는 베트남 나 트랑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을 때에도, 일사불란하게 매스게임을 펼치는 북한 주민들의 사진을 찍을 때도 특별한 주제 의식이나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다른 사진들처럼 사진 속 모든 대상이 전체의 기계적이고 공평한 일부가 되고, 동등한 피사체가 될 따름이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가 자신이 본 세상에 어떤 관점과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구르스키의 미학이 던지는 시각적 충격은 별다른 해설 없이도 충분히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지금은 깨졌지만 사진 사상 경매 최고가라는 그의 기록이 이를 증명하는 것 아닐까?

‘Amazon’(2016)
‘Tokyo’(2017)

 

모든 이미지 © Andreas Gursky, 출처 – Andreas Gursky

 

참고자료 이해빈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 가까이또는 멀리서>(2018)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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