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는 관객이 가장 처음 만나는 영화의 얼굴이다. 그리고 때때로 일러스트는 실사보다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 인상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스토리를 함축하는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일러스트 포스터들을 만나자.

 

노상호 <리빙보이 인 뉴욕>


노상호는 ‘네모난(Nemon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미술가다. 그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과 성실하게 그려온 많은 양의 작품은 일찍이 미술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혁오(hyukoh)’의 두 번째 EP 앨범 <22> (2015) 재킷 그림은 그의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그는 자신의 일상 경험 혹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여 수채화 물감으로 그려낸다. 이는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고, 누군가에게 위로 혹은 영감이 된다.

2017년 개봉한 마크웹 감독의 <리빙보이 인 뉴욕>은 노상호가 처음으로 작업한 영화 일러스트 포스터다. 삶의 활력도, 앞으로 나아질 의욕도 없는 평범한 뉴요커가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노상호의 차분한 그림체와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그는 평소 핑크나 레몬옐로 컬러와 같은 화려한 색채를 즐겨 사용하기로 유명하지만, 이 영화의 포스터에서는 튀는 색감들을 최대한 배제했다. 대신 톤다운된 옐로우, 브라운, 그레이 물감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 풍경을 포스터에 조화롭게 담아냈다.

노상호가 작업한 <디트로이트>(2018) 일러스트 포스터

 

손은경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최근 가장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영화 일러스트 포스터 작가라면 단연 손은경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포스터는 손은경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작업이다.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그림체는 한여름의 꿈 같은 영화의 러브스토리를 그대로 함축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업을 계기로 그는 영화 포스터 및 책 표지 디자인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손은경의 일러스트에는 그만의 시각적 언어와 고유한 분위기가 듬뿍 묻어난다. 얼굴의 그림자와 음영을 통해 인물의 개성을 집어내는 세밀함은 그의 그림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트립 투 스페인>, <햄스테드>, <너와 극장에서>, <라이크 크레이지> 등 영화들의 포스터를 작업했다.

 

오연경 <소공녀>

<일러스트레이터의 물건> 표지

오연경은 과거 <키키>, <쎄씨>와 같은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차노미즈 미술전문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2014년 발간한 <일러스트레이터의 물건>은 그가 15년동안 수집광으로 살면서 수집하고 그렸던 물건들을 496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기록한 컬렉션 북이다. 책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드로잉. 무심하게 슥슥 그려낸 것 같은 선과 몽글몽글한 색감, 라벨 위 문자 하나라도 빼놓지 않는 디테일 등은 오연경의 시그니처다.

이렇듯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을 지켜온 오연경 작가가 영화 <소공녀>의 일러스트 포스터를 작업을 맡은 건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었다. 핑크색 바탕의 포스터에는 영화의 독특한 감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주인공 ‘미소’(이솜)의 상황을 한 눈에 보여주는 오브제인 캐리어를 정중앙에 배치하고, 가계부, 약봉지, 위스키, 앞치마, 담배 등 도시 하루살이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깨알같이 박아 넣어 생동감을 더했다. 극 중 미소는 가진 것 없지만, 자신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다. 오연경 작가 또한 ‘예쁜 것’에 빠져 15년간 수집한 물건들을 그림으로 그려내 컬렉션 북을 완성했다. 섬세하고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이는 오연경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영화의 스토리와 꼭 어울리는 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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