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매일매일 소비해야 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익숙한 존재다. 동시에 음식은 지루한 일상에 자그마한 활력을 불어넣는 소소한 행복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사소해 보일지라도 결국 ‘먹는다’는 건 우리가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끼게 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음식이 품은 본연의 맛과 기능을 충실하게 구현한 영화들이 있다. 아래의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은 결코 탐스럽거나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뽐내지 않는다. 오히려 친숙하다 못해 평범한 메뉴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이 음식을 찬찬히 먹는 장면은 ‘먹는다’는 날것 그대로의 감각을 일깨워주기에 오랜 여운을 남긴다. 음식을 먹으며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고, 상대와 온기를 나누는 모습을 아래 영화들을 통해 살펴보자.

 

불쑥 찾아온 손님을 위한 밥상,
<마카담 스토리> 속 쿠스쿠스

영화 <마카담 스토리>(2015)는 프랑스 교외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인물들이 우연한 계기로 낯선 타인과 외로움을 나누는 과정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냈다. 총 3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한 에피소드는 60살 남짓한 할머니 ‘아지자 하미다’와 미국 NASA에서 온 우주비행사 ‘존 맥켄지’의 만남을 다룬다. 재활원에 들어간 아들의 빈자리를 느끼며 집에서 홀로 살던 아지자는 어느 날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우주를 유영하다 NASA 본부로 돌아가려던 존은 실수로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하며 그의 집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아지지의 전화를 빌려 NASA에 구조를 요청하지만 며칠 동안만 그곳에 머물라는 답변을 받고, 아지자는 낯선 청년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그렇게 아지자와 존은 이틀 동안 함께 지내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영어와 불어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 몇 개와 몸짓을 통해 가까스로 소통한다. 그럼에도 둘은 같이 TV를 보고 밥을 먹는 등 소소한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아지자는 자신을 어려워하는 존에게 첫날부터 계속 ‘쿠스쿠스’를 만들어주겠다고 외친다. 우리나라 쌀처럼 주식과도 같은 쿠스쿠스는 평범한 음식이지만 둘에겐 중요한 소통의 창구가 된다. 어느새 경계를 풀고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던 존은 마지막 저녁 식사 밥상 위에 차려진 쿠스쿠스를 알아보곤 음식을 가리키면서 소리를 더듬더듬 따라 한다. 말이 안 통해도 이젠 서로를 이해하는 둘은 밥을 먹으며 우주, 신과 같이 존재를 관통하는 깊은 이야기까지 나눈다. 홀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익숙했던 둘에게 있어 이 식사는 서로의 적적함을 달래고 온기를 나눴던 특별한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완벽한 타인과 엮어줄 도시락통,
<런치박스> 속 인도 가정식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런치박스>(2014) 속 주인공 ‘일라’는 남편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싸서 그의 회사로 배달을 보낸다. 엉뚱하게도 도시락통은 남편 대신 혼자 밥을 먹고 있던 ‘사잔’에게 도착한다. 고맙다는 말 대신 ‘음식이 좀 짜다’고 쪽지를 보낸 그에게 자극받은 일라는 다시 도시락을 보내고 이를 계기로 둘은 매일 도시락통 안에 편지를 넣어 주고받는다. 남편이 외도한 사실까지 알게 되지만 새로운 미래를 꿈꾸지도 못하고 묵묵히 가족에게 헌신하는 일라. 아내와 사별한 후 텅 빈 집에서 홀로 생활하며 곧 정년퇴직까지 앞둔 중년 남성 사잔. 기댈 곳 없이 공허함을 안고 살던 둘은 도시락통을 매개로 소통이 가능한 타인의 존재를 확인한다.

일라가 만든 도시락은 평범하지만 알찬 인도의 가정식이다. 본래 다른 사람과 말 섞기조차 싫어하는 사잔이 관계의 단초를 놓기 시작한 건 분명 일라가 싼 음식을 먹고 따뜻한 포만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엔 일상적이고 소소한 수다를 나누던 둘이 어느샌가 깊은 공감과 이해를 자아내는 내밀한 고백까지 주고받는다. 비록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이지만 둘은 식사 시간의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 서로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방향성까지 찾아준다. 이 모든 변화를 일으킨 건 결국 둘 사이를 오갔던 음식의 온기 덕분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내 삶을 일깨울,
<스트레인저 댄 픽션> 속 초콜릿 칩 쿠키와 우유 한 입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7)은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과 그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작가의 집필 과정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메타픽션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헤럴드’는 그의 일상을 규칙과 숫자 하에 철저하게 통제해 매일 1분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루틴 하에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정체 모를 절대자 같은 존재가 자신의 삶을 비극으로 끝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삶을 희극으로 바꾸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헤롤드가 쿠키와 우유를 먹는 장면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일상을 보내던 헤럴드가 처음으로 삶의 충만함을 느끼는 건 우유에 찍은 쿠키 한입을 베어 먹는 순간이다. 국세청 직원인 그는 세무조사를 하러 간 빵집에서 갓 구워진 쿠키 하나를 얻어먹는다. 첫입을 베어 무는 순간을 카메라는 천천히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관객마저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드는 이 짧은 순간에 헤럴드는 강렬한 행복과 온기를 느낀다. 결국 그에게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준 건 별 대단한 존재가 아닌, 그저 우유를 곁든 쿠키 한입인 것이다.


“때로 우리가 두려움과 절망을 느낄 때
판에 박힌 일상에 빠질 때
희망이 없고 비극에 빠질 때
우린 바베리언 설탕 쿠키를 주신 신에게 감사드린다.”

- <스트레인저 댄 픽션> 에필로그 중

 

Writer

소소한 일상을 만드는 주위의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길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들엔 사람들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공연, 영화, 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소개해,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가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