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아이디어는 스파크처럼 번쩍하고 들이닥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보고 또 보다 보면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게 아이디어다. 역사상 모든 크리에이티브한 것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주면서 말이다. 그러니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자신의 부족한 창의력을 탓하지 말자. 아직 영감을 주는 무언가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자.

그런 의미에서 당신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웹사이트들을 모아봤다. 세상에 넘쳐나는 콘텐츠들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모아 놓은 그런 웹사이트들. 크리에이터라면 아마도 즐겨찾기 해두었을 법한 그런 웹사이트들이다. 도저히 아이디어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한 번쯤 들어가 보자. 그저 클릭하고 감상하고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딱딱하게 굳어 있던 머리가 말랑말랑 유연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세상을 바꿀 당신만의 아이디어가 시작될지도.

 

1. Fubiz

Fubiz 화면, 출처 - Encore magazine

2005년, 프랑스 파리의 한 대학생은 자신의 명함으로 쓸 만한 사이트를 만든다. 학생의 이름은 Romain Colin. 당시에는 온라인 이력서도, SNS도, 링크드인(LinkedIn)도 없던 터라 이런 사이트를 만드는 게 나중에 취업할 때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몇 개월 후 이 웹사이트로 수익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6개월의 인턴십을 해야 했을 때 로맹 콜린은 결국 자신이 만든 자신의 회사에서 인턴십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인턴십을 위해 프랑스 특허청에 자신의 사이트를 등록하고 정식 회사로 출범한다. 인턴십을 하는 6개월 동안엔 사업 모델을 연구하고 프로젝트를 개발한다. 결국 자신의 회사에 취업한 셈.

Fubiz 창립자 Romain Colin, 출처 – Encore magazine 

무사히 인턴십을 마치고 여러 회사에서 취업 제의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로맹 콜린은 기왕 시작한 이 플랫폼을 더 키워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4년 후, 파리의 한 대학생이 취업을 위해 만들었던 Fubiz는 46만 명 이상의 트위터 팔로워와 269만 명 이상의 페이스북 팬, 월간 순 방문자 수백만 명 이상, 한 달 누적 도달 범위 1억 3천만 명을 자랑하는 거대 플랫폼 ‘Fubiz media’로 성장하게 된다.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보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 취업해 그 회사를 좋은 회사로 만들자. 이 세상 취준생들에게 참으로 꿈만 같은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Fubiz에 처음 들어가면 검은색 바탕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카테고리가 눈에 띈다. Photography, Design, Pop Culture, Video, Technology, Graphic. 이렇게 여섯 개의 카테고리 안에 또 세부 카테고리가 정렬되어 있다. 몇 년 전, 회원들이 직접 참여해 기사를 쓸 수 있는 User Featured 카테고리도 추가되었다. 이 모든 걸 하나하나 살피기에 너무 방대하다 싶으면 아카이브(Archives)를 통해 월별로 가장 인기 있었던 콘텐츠를 골라 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Fubiz를 즐기든 전적으로 사용자의 선택이다. 분명한 건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은 쉬워도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을 거란 사실.

Fubiz Talks
Fubiz Talks 2018

따끈따끈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플랫폼으로도 이렇게 훌륭한데 Fubiz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Fubiz Talks를 통해 아티스트들의 강연회를 여는가 하면, Fubiz TV를 통해 영상에 특화된 콘텐츠를 따로 모아 제공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콘텐츠를 선별해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와 아티스트들을 연결해주고 프로듀싱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알리고 싶은 아티스트와 그런 아티스트를 찾고 싶은 브랜드 사이에 있을 것이다.”라는 로맹 콜린의 말에서 이러한 Fubiz의 지향점은 잘 드러난다. Fubiz는 결국 인터페이스이자 에이전시라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둘 중 어느 것이라도 Fubiz를 즐기는 우리에겐 환영이지만.

Fubiz Studio Showreel 2018
Happy New Year 2016 from Fubiz

Fubiz 홈페이지 

 

 

2. NOWNESS

루이비통, 디올, 마크 제이콥스, 도나 카란, 펜디 등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 패션 그룹이 있다. 바로, LVMH. 애초에 돈 걱정은 없는 LVMH이기에 그동안 돈을 버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해왔다. 세계 곳곳의 중요 전시회에 스폰서로 참여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LVMH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전시회만으로는 일반 시민들이 예술을 즐기게 하기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2010년, 인터넷 사이트를 하나 만들기로 한다. 예술, 디자인, 패션, 뷰티, 음악, 춤, 요리, 여행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일종의 온라인 매거진 NOWNESS가 그것.

Welcome to NOWNESS

이들은 상업적인 목적성은 지우고 오로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문화, 예술 관련 영상을 포스팅한다. 그래서 NOWNESS를 보다 보면 마치 갤러리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매일 방문객이 50만 명 이상인 것을 고려할 때 참으로 쾌적한 갤러리가 아닐 수 없다. 워낙 LVMH의 재정이 탄탄하다 보니 외부의 콘텐츠를 큐레이팅해서 업로드하는 걸 넘어서 유명한 아티스트나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유명한 아티스트나 브랜드라 함은 Björk, Chloë Sevigny, Florence Welch, Carine Roitfeld, Bella Hadid, David Lynch, David Hockney, Gucci와 Versace 등이다. 이름만 나열해도 황송할 지경이다.

Björk가 ‘Love’ 했던 콘텐츠

NOWNESS 또한 워낙 방대해서 Fubiz처럼 길을 잃기 쉽다. 그럴 땐, 일단 회원가입을 하자. 물론 회원가입 없이도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지만, 로그인하면 각각의 콘텐츠에 ‘Love’ 혹은 ‘Don’t Love’ 평가를 해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를 추천받을 수 있다. 아니면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나중에 따로 모아서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를 훔쳐보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가수 Björk가 ‘Love’ 했던 콘텐츠는? 궁금하다면 검색창에 Björk를 검색해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된다. 이쯤 되니 사이트를 론칭한 첫해 Webby 어워드와 클리오 어워드에서 수상한 데 이어 2014년, 2017년에도 Webby 어워드의 Best Cultural Website로 선정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Define Beauty: Waxing - NOWNESS 제작 영상
5 Years of NOWNESS: Art & Design

NOWNESS 홈페이지 

 

 

3. It’s Nice That

Fubiz만큼 거대하지도, NOWNESS만큼 럭셔리하지도 않다.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러 간다기보다 젊고 참신한 신예 아티스트들의 재기발랄한 프로젝트를 보러 가는 곳. 둘러보고 나면 “It’s Nice that! (이거 참 좋다!)”라고 말하게 되는 곳. 바로 웹사이트 ‘It’s Nice That’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이거 참 좋다”라고 말할 만한 가벼우면서도 재기발랄한 프로젝트들을 주로 다루는 사이트다.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패션, 사진과 같은 것들을 아우르는, 질투 날 만큼 탐나는 크리에이티브들이 가득한 곳이다.

It’s Nice that의 ‘Things’

It’s Nice That에는 이름만큼이나 참으로 좋은 시도들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Things’라는 섹션에서는 매주 ‘It’s Nice That’ 사무실 현관 매트에 도착한 것들이 어떤 건지 특집으로 다룬다. 최근에 올라온 Things를 보면 북아일랜드 출신의 포토그래퍼 Megan Doherty가 찍은 사진부터 밀라노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만든 2019년 달력, 각종 잡지들은 물론 펭귄북스 표지 디자인의 엽서까지 다양하다. 마치 크리에이터들의 우편함을 엿보는 기분이다.

It’s Nice that의 ‘Bookshelf’

‘Bookshelf’라는 코너도 마찬가지다. 이 섹션에서는 격주로 디자이너들의 책꽂이를 보여주고 그들이 좋아하는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한다.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무슨 책이 있나 한 바퀴 둘러보는 느낌으로 부담 없이 친근하게 그들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It’s Nice that의 ‘Friday Mixtape’

‘Friday Mixtape’ 코너도 재미있다. 매주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하나의 주제로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하는 형식인데, 가장 최근 것은 뉴욕 출신의 프로듀서 겸 DJ 앤서니 나폴리 Anthony Naples가 소개하는 파티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플레이리스트였다. ‘The Graduates 2018’에서는 2018년도 졸업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받아 사진, 제품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패션, 애니메이션, 그래픽 디자인 전반에 걸쳐 활발한 개성을 보여주는 개성 강한 15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일종의 온라인 졸업 전시회인 셈.

It’s Nice that의 ‘Nicer Tuesday’, 출처 – It’s Nice that 
It’s Nice that의 ‘Printed Pages AW 2017’

이뿐만이 아니다. 매달 ‘Nicer Tuesday’라는 강연도 개최하고, 2년마다 ‘Printed Pages’라는 잡지도 발행한다. 웹사이트에 매일같이 콘텐츠가 업로드되는데 왜 굳이 오프라인 잡지도 만드는가에 대해 편집장인 Owen Pritchard은 이렇게 말한다. 현장에서 매일 그래픽 디자인과 사진에 대해 글을 쓰는데, 업데이트를 하고 나면 어떨 땐 우리가 쓰는 이야기가 디지털 상공으로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고. 그것들을 모아 잡지로 발행하면 그것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기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머나먼 한국까지 배송은 조금 힘들겠지만. 이 잡지. 참으로 탐난다. 심지어 가격도 10파운드밖에 안 한다니 더욱더.

It’s Nice that의 ‘Printed Pages’, 출처 – Company of parrots 

매달 1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이트를 방문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나만 이 사이트를 재미있게 느끼는 건 아닌 것 같다. 특히 건축학도 출신, 제품디자이너 출신, 작가 출신 등 저마다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편집팀에 모여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아 놓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여 콘텐츠를 선정한다고 하니 이 사이트가 괜히 좋은 게 아닌 듯하다.

It’s Nice that의 ‘The Graduates 2018’

It’s Nice that 홈페이지 

 

 

4. Joe La Pompe

Fubiz를, NOWNESS를, It’s Nice That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 걸 넘어서 은근슬쩍 비슷하게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유혹을 느끼는 사람이 생길까 봐 마지막으로 사이트를 하나 더 추천하고자 한다. 웹사이트의 이름은 Joe La Pompe. 사이트에 들어가면 가면을 쓴 캐릭터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다. 표절작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가면을 썼다고 말하는 이 웹사이트의 주인장은 1999년 이래로 지금껏 표절이 의심되는 광고를 찾아 모으고 있다. 특정 회사를 위해서도 조직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표절작의 가면을 벗기는 것만이 그의 목적. 그 결과 지금까지 업로드된 1644개의 게시물에 3431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5000번 이상 웹상 이곳저곳으로 공유가 되었고, 45번의 살해 협박까지 받았단다. 사이트에 들어가 Original과 Less Original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비교당하는 광고들을 보고 나면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다.

Joe La Pompe 속 광고 비교 화면 일부

물론 그렇다고 이 사이트가 표절이라는 낙인을 찍어주는 곳은 아니다. 표절이 의심되는 광고를 올리면 그 아래에 우연과 표절 사이에 방문자가 점수를 매길 수 있게 되어 있어, 방문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 물론, 대부분 표절 쪽에 더 점수를 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Joe La Pompe 속 광고 비교 화면 일부

실제로 이 사이트의 운영자인 Joe La Pompe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이트에 올라온 80%의 게시물이 표절이 아니라 우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를 진짜 화나게 하는 건 10분이면 자신이 낸 아이디어와 비슷한 아이디어가 어딘가에 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 그 10분조차 할애하지 않고 세상에 광고를 내놓는 크리에이터들의 게으름이라고. 왜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들을 내는 데 몇 주를 보내 놓고, 비슷한 게 있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거냐고 그는 되묻는다.

Joe La Pompe 사진, 출처 – Hartas and Craig 

사이트 운영자인 Joe La Pompe는 복면을 쓴 채로 강연을 하고, 복면을 쓴 채 인터뷰를 한다. 기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20년 가까이 그가 복면을 쓰고 익명으로 남아 있었던 덕분에 광고에 대해 마음껏 비평할 자유와 독립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이 웹사이트를 통해 수익을 내지 않고, 표절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고 광고제에서 수상작의 독창성을 보증해주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세상의 크리에이티브가 더 다양하고 독창적이길 바라는 그의 이러한 노력 앞에 광고인으로서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Joe La Pompe의 책 <COPY PASTE>, 출처 – ARTAZART 

Joe La Pompe 홈페이지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ANSO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