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의 결과, 매일 먹는 음식과 똑같이 듣는 음악에 질리고 만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찾고 남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한다고는 말하지만 막상 긴 시간을 투자할 여유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완전히 정반대를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 듣자마자 아릿한 유년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풍금(오르골), 귀를 집중하게 되는 미니멀한 일렉트로니카, 마치 여행을 떠난 듯한 엑조티카와 월드 뮤직의 낭만도 모두 좋다. 그리고 또 하나, 고풍스러운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다룬 팝 음악이다.

하프시코드, 출처 - Unsplash

낯설게 느껴지는 이 악기의 생김새는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노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둘은 애초에 소리를 내는 구조 자체부터 다르고 연주하는 방식과 발현하는 사운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피아노처럼 힘 있게 강약을 나타내기보다는 연약하고 우아하게 울려 퍼지는 음색 덕분에, 이 악기 하나만으로도 곡에 완전히 다른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프시코드는 예스럽고 장엄함이 특징인 장르 바로크 팝(baroque pop)을 대표하는 악기로 사용되고 있다. 비틀스, 롤링스톤즈, 야드버즈의 음악으로 이 악기에 입문했다면 이제는 지금 세대의 음악에서 이 악기를 찾아볼 차례다. 듣는 것만으로도 몇 세기 이전의 유럽에 발을 내디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Vampire Weekend ‘Step’

때 묻지 않은 보컬과 차분한 멜로디. 뉴욕 기반의 록 밴드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는 경쾌함과 멜랑꼴리함을 오가며 특유의 ‘인디 감성’을 최대한으로 발현해낼 줄 아는 뮤지션이다. 밝은 분위기의 초기 작품을 넘어서 진중함으로 무장한 3집 <Modern Vampires of the City>에서 밴드는 곡의 메시지에 설득력을 키우고 보컬 이펙트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곡 ‘Step’에서는 은은한 하프시코드 사운드를 중간중간에 삽입하여 분위기 전환을 꾀하고 가스펠풍 코러스로 신비로움을 덧입혔다. 한편 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는, 힙합 음악을 샘플링하면서 보컬 피치를 내리니 미니멀한 멜로디에도 다이내믹한 전개가 완성되었다. 음악을 의인화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그에 대한 소신을 전하는 이야기 또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니, 두고두고 들어보기에 좋은 트랙이다.

 

twenty one pilots ‘Isle of Flightless Birds’

재기발랄한 사운드와 시적인 내러티브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팝 밴드 트웬티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의 인디 시절 데뷔작. 셀프 타이틀 앨범에 수록된 곡 ‘Isle of Flightless Bird’는 마치 뮤지컬처럼 곡 하나에 여러 장르를 불어넣고 뚜렷하게 파트를 구분하여 입체감을 갖추고 있다. 서정적인 하프시코드 멜로디는 도입에서 멜랑꼴리함을 주고 곡에 규칙적인 비트감을 더하더니, 이후 청아한 피아노 사운드에 대체되어 오히려 이 곡에서는 가볍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자신의 분수와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깨달아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라’는 메시지는 절규하는 도입부의 가창으로 각 벌스의 래핑과 대비되어 더욱 또렷이 들린다.

 

Tame Impala ‘Yes I’m Changing’

호주 출신의 사이키델릭 록 밴드로 매 앨범마다 평단과 리스너의 극찬을 받고 있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의 3집 <Currents> 수록곡 ‘Yes I’m Changning’이다. 꿈결 같은 록 발라드 멜로디는 흡사 80년대의 낭만적인 뉴웨이브를 지향하는 듯하지만 사실 가사는 사랑의 종말과 삶의 변화로 혼란스러워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채워져 있다. 복잡한 이야기만큼이나, 하프시코드도 곡의 적재적소에 삽입되어 분위기를 환기하고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도 곡의 후반부에서 도시 길거리의 소음과 키보드의 멜로디가 서로 오버랩되면서 화자의 복잡하고 고독한 심정을 잘 표현해냈다. 밴드 멤버 케빈 파커조차도 자신이 이 곡을 만들던 당시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해석은 우리의 몫이다.

 

St. Vincent ‘Severed Crossed Fingers’

생동감 있는 사운드와 색채감 뚜렷한 개성으로 매번 리스너들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록 뮤지션,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4집이자 셀프 타이틀 앨범의 엔딩을 맡고 있는 트랙이다. ‘Severed Crossed Fingers’는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분위기에서 무게감을 덜어낸 보컬 진행으로, ‘장례식에서 틀 만한 파티 음악’을 추구했다는 그 앨범의 수록곡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취하고 있다. 아련한 록 발라드 멜로디 위에서 하프시코드가 희미하게 뚱땅거릴 뿐이지만 안정적이고 나긋한 진행으로 앨범에서 단연 빛나는 트랙이다. 더불어 유머러스한 작가 로리 무어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흔치 않은 제목 덕분에 가사는 희망적인 심정과 시대 비판 정신을 모두 표현해낸다.

 

Black Portland ‘Florida Water’

래퍼 블러디 제이(Bloody Jay)와 영 서그(Young Thug)가 함께 발표한 콜라보 테이프 Black Portland의 셀프 타이틀 앨범 수록곡 ‘Florida Water’에서도 하프시코드 샘플링을 찾을 수 있었다. 도입부와 각 벌스에서 신비로움을 조성하는 역할로 쓰이면서 여타 악기가 낼 수 없는 우아함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힙합과 하프시코드의 만남은 사실 꽤 낯설지 않다. 놀랍게도 에미넴의 데뷔작 ‘The Real Slim Shady’를 포함하여 아웃캐스트, 사이프레스 힐의 음악에서 접할 수 있다. 이들 장르에서는 하프시코드가 단순히 곡의 일부 파트에서만 사용되기도 하지만, 악기 자체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멜로디 전체를 비틀면서 오히려 래핑의 재치 있거나 비판적인 가사와 대비되어 더 강렬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메인 이미지 Vampire Weekend ‘Step’ Official Lyrics Video 캡처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