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귀가 즐거운 한 해였다. 장르를 불문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블랙뮤직 아티스트들의 활약은 어느 해보다 뚜렷했다. 일이 년 전, 혹은 그 이전부터 메인스트림에 오른 힙합과 알앤비가 그 위치를 더 공고히 한 해이기도 했다. 그만큼 씬에는 흥미로운 일도 가득했다. 장르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서로 피 튀기는 디스전을 벌이기도 했고, 어느덧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는 프로듀싱한 앨범을 연달아 다섯 장 발매하며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한편, 안타깝게도 몇몇 빛나는 아티스트는 세상을 떠났고 그 자리를 새로운 재능들이 채웠다. 여러모로 다사다난했던 2018년의 블랙뮤직 씬.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즐겁게 했던 일곱 장의 앨범을 꼽으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자.

 

Various Artists <Black Panther The Album Music From And Inspired By>

이번 <블랙 팬서> OST 앨범은 일반적인 영화 OST 앨범들과 차이가 있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지휘봉을 잡아, 영화에서 ‘영감받은’ 블랙 뮤직 앨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공식 OST 앨범이라기보다 분위기를 차용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앨범에서는 켄드릭 라마의 레이블 TDE의 아티스트들이 훌륭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시저(SZA)가 참여한 ‘All The Stars’와 제이 락(Jay Rock)이 참여한 ‘King’s Dead’가 대표적이고, 이미 공개 당시 한차례 찬사를 받은 적 있다. TDE 멤버들의 참여 외에도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아프리카 출신 아티스트들이 힘을 보탰다는 점이다. 유젠 블락록(Yugen Blakrok), 스자바(Sjava) 같은 아티스트의 참여는 영화의 배경과도 어우러지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켄드릭 라마의 조율과 여러 아티스트의 훌륭한 퍼포먼스, 그리고 영화의 성공까지 한데 어우러져 앨범은 한 해 동안 환하게 빛났다.

Kendrick Lamar, SZA ‘All The Stars’

 

Saba <CARE FOR ME>

사바(Saba)의 <CARE FOR ME>는 연초에 듣기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앨범일 수도 있다. 그의 사촌 동생 존 왈트(John Walt)의 죽음에서 비롯된 우울하고 서글픈 분위기가 앨범 전체에 감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슬픈 분위기는 서늘함이 아닌 따뜻함에 가깝다. 더하기보다는 빼는 것에 집중한 듯한 프로덕션과 피아노 사운드를 이용해 만들어낸 따뜻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40분 남짓한 러닝타임 내내 급격하게 변하는 건 오직 사바의 래핑뿐이다. 앨범의 전반부,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아홉 번째 트랙 ‘PROM / KING’이 되어서야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앨범이 잔잔하고 따뜻하기 때문일까, 사바가 분출해내는 격렬한 슬픔은 청자에게 더 큰 전율을 선사한다. 사바는 이제 막 두 번째 정규앨범을 발매한 아티스트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안다. <CARE FOR ME>는 개인의 감정을 절제해 전달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잘 보여주는 앨범이다.

Saba ‘SIRENS (feat. theMIND)’

 

Cardi B <Invasion of Privacy>

카디 비(Cardi B)는 2018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주목받는 여성 래퍼에서 어느덧 힙합 씬의 왕 자리에 올랐고, 그 수식어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뉴욕의 스트리퍼에서 힙합 씬의 거물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이 <Invasion of Privacy>에 담겨있다. 카디 비는 고상한 척하지 않는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한 가사와 이를 전달하는 낮은 톤의 래핑만이 있을 뿐이다. 앨범에서 카디 비의 래핑은 상당히 탄탄하다. 기술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콘셉트에 맞게 공격적이고 때로는 날카롭기까지 하다. 평범한 트랩 앨범이 될 수도 있었던 <Invasion of Privacy>를 훌륭한 앨범으로 만든 건 뛰어난 프로덕션도, 넘치는 피처링진도 아닌 그저 카디 비라는 래퍼다. 틀에 박힌 트랩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그를 더 짙은 자신의 색깔로 덮어버린 이번 앨범은 그가 누구인지 증명해냈다.

Cardi B ‘Bartier Cardi (feat. 21 Savage)’

 

Pusha T <Daytona>

2018년 힙합 씬 최고의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와이오밍 프로젝트였다. 다섯 장의 앨범을 연달아 발매할 거라는 선언은 엄청난 기대를 불러모았고, 그 첫 작품이 바로 <Daytona>였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올해의 앨범이라는 평을 받았다. 일곱 트랙이 담겼을 뿐이지만, 칸예 웨스트의 간결한 프로덕션 위에 얹어진 푸샤 티(Pusha T)의 랩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약상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생생한 가사는 차치하고, 오로지 그의 래핑만으로 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앨범의 마지막 곡 ‘Infrared’를 통해 그간 디스를 주고받던 드레이크(Drake)에게 큰 한 방을 날렸다는 점은 앨범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사운드적으로도 어느 하나 튀는 트랙 없이 유기적으로 앨범이 진행된다는 점은 또 다른 장점. 프로듀싱 장인과 랩 장인이 함께 만든 하나의 걸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Pusha T ‘If You Know You Know’

 

Jay Rock <Redemption>

2016년, 온몸이 부서지는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고 회복한 제이 락의 <Redemption>은 감동적인 앨범이다. 두려움 없이 평생을 살아온 갱스터가, 큰 사고를 계기로 깨달은 삶의 소중함이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저와 함께한 열두 번째 트랙 ‘Redemption’은 곧 앨범의 정수이며, 제이 락만이 할 수 있는 간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기에 곧바로 이어지는 트랙 ‘WIN’에는 그가 느끼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가득하다. 이렇게 후반부에 이어지는 라인은 앨범의 감동을 배가하고, 한 래퍼가 전하고자 하는 서사를 더 돋보이게 해준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간 꾸준히 선보인 묵직한 래핑 역시 여전하며, 제이 콜(J. Cole)과 켄드릭 라마 같은 적절한 피처링진 역시 주요했다. 멈블 앨범으로 가득한 요즘, 제이 락의 <Redemption>은 보물과도 같다.

Jay Rock ‘WIN’

 

Drake <Scorpion>

드레이크의 <Scorpion>은 2 CD로 구성된 앨범이다. 트랙의 수가 무려 스물다섯 개에 달하고, 총 러닝타임은 한 시간 반에 이른다. 작업물의 길이가 짧아져만 가는 힙합 씬의 추세와는 동떨어진 행보지만, 이 역시 드레이크이기 때문에 이해가 간다. 드레이크는 가진 재능이 많고, 그 재능을 이번 앨범에서 충분히 선보였다. 앨범의 A사이드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랩과 날카로운 가사를 뽐낸다. 프로듀싱 역시 철저히 래핑에 어울리게 설계된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앨범의 B사이드에서는 감미로운 분위기의 사랑 노래를 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다소 뻔한 사랑 노래 외에도 여성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나, 뮤직비디오를 통해 보여준 희망찬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Scorpion>은 드레이크가 보일 수 있는 A부터 Z까지를 담은 앨범으로,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차고 넘쳤다.

Drake ‘Nice For What’

 

Travis Scott <Astroworld>

<Astroworld>라는 앨범 명은 휴스턴에 실존했던 유원지의 이름이다. 앨범 명처럼, 수많은 아티스트가 뛰어놀듯 앨범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프랭크 오션(Frank Ocean), 드레이크 같은 블랙 뮤직 아티스트의 참여는 물론이고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테임 임팔라(Tame Impala) 같은 의외의 참여진도 눈에 띈다. 하지만 많은 참여진이 함께했음에도 앨범은 뚜렷한 결을 유지해낸다. 오토튠을 앞세운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 특유의 사운드가 앨범 전반에 걸쳐 짙게 깔려 있는 덕분이다. ‘SICKO MODE’에서 보인 뚜렷한 변주, ‘CAN’T SAY’의 랩 싱잉이나 ‘COFFEE BEAN’에서의 담백한 모습 등은 앨범의 듣는 재미를 더한다. 실험적인 모습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훌륭한 앨범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Travis Scott ‘SICKO MODE (feat. Dr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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