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제작한 인형이나, 빚은 점토 등 피사체의 움직임을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촬영한 뒤 편집을 통해 이어 붙이는 방식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몇 초의 영상을 만드는데도 수 시간이 걸려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촬영 기법이다. 고된 작업량과 상당한 제작 기간에도 불구하고 디테일한 소품과 동작은 물론, 짧은 영상임에도 다채롭고 탄탄한 스토리를 구현해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세 편을 소개한다. 각각 데카당의 ‘병’, 이루펀트의 ‘이사하는 날’, 굿모닝 달리의 ‘Summer Fling’으로, 국내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들로 추렸다.


**최신 앨범 순으로 작성.

 

1. 굿모닝 달리 ‘Summer Fling’ MV

정지영(기타/보컬), 민챙칩(드럼), 김지혜(키보드), 백하형기(퍼커션), 박수종(베이스/객원)으로 구성된 밴드 굿모닝 달리는 애시드 재즈, 펑크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은 팝을 들려준다. 2014년 밴드결성 이후 2년간 멤버들의 여러 음악적 색깔을 정돈해 모은 데뷔 EP <굿모닝달리>(2016)를 발표하고, 여러 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하며 단단한 내공을 쌓아가던 이들이 얼마 전 새로운 싱글 ‘Summer Fling’으로 돌아왔다. 푹푹 찌는 계절에 놓인 앨범인 만큼, 전작보다 한층 산뜻하고 청량한 톤을 머금은 굿모닝 달리표 신스팝 사운드를 느껴볼 수 있다. 운명의 상대를 보고 느낀 설렘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깨닫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랫말을 통통 튀는 아이디어와 재치있는 편집으로 시각화해낸 뮤직비디오도 재미있다. 당시 리더 정지영은 합주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평소 좋아하던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스톱모션 뮤직비디오(‘Les Cailloux’)를 떠올렸고,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은 정지운 작가는 이러한 영감을 영상에 최대한 녹여냈다. 잠깐 반짝이듯 불타오르지만 여름이 지나면 모두 끝나버리는 관계를 의미하는 곡 제목처럼, 달콤쌉싸름한 이야기가 가득 배인 뮤직비디오는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안긴다.

 

2. 데카당 ‘병’ MV

데카당의 음악은 불안정한 듯 단단한 기운을 풍긴다. 지난해 각종 라이브 무대에 서고 첫 EP <ㅔ>를 발표하며 마니아와 평단의 고른 호평을 이끌어낸 이들은 마침내 올해 5월 소원하던 첫 동명의 정규앨범 <데카당>을 발표했다. 13곡의 트랙으로 구성한 이 음반에서 데카당은 전작처럼 소울과 블루스,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포스트 펑크 등 여러 장르를 한계 없이 넘나든다. 이 앨범의 스타트를 끊는 1번 트랙 ‘병’은 편견, 혐오, 차별 등이 만연한 바깥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 화자의 괴로움을 노래한다. 언제나처럼 평범함을 거부한 사운드엔 이유 모를 피곤감과 히스테리, 분노 따위의 불온한 정서가 눅진하게 스며 있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곡의 뮤직비디오는 미국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상감독 라파엘 보닐라가 연출했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빚어진 클레이 인형들과 붉고 푸르게 물들어가는 빛의 효과, 고립과 불안을 주제로 완성한 뮤직비디오는 곡의 기괴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3. 이루펀트 ‘이사하는 날’ MV

이루펀트(Eluphant)는 감성적인 노랫말을 선보이며 한국 감성 힙합의 시작이라 불리는 키비와 편안한 스토리텔링을 지향하는 마이노스가 2006년 결성한 프로젝트팀이다. 이들은 특히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한국 힙합 신의 편견을 깼다는 평을 받았다. 주로 보컬 피처링을 더한 부드러운 힙합 스타일은 대중의 인기도 사로잡았다. 인디 신에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밴드 가을방학의 계피를 피처링으로 기용한 ‘이사하는 날’은 이루펀트가 2015년 발표한 3집 정규 <Man On The Moon>의 7번째 수록곡이다. 자극 없이 담백하게 흘러가는 이루펀트의 랩과 20% 정도 힘과 감정을 빼서 부르는 계피의 창법은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맑은 기운을 자아낸다. 종이 조각, 클레이, 물감으로 구현해낸 3D 스톱모션 영상 또한 흥미롭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보은(Voeun)이 연출한 이 뮤직비디오는 최소한의 프레임 전환으로 낯선 별에 떨어진 우주인과 남겨진 꽃에 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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